8K TV, 콘텐츠 생태계 도약 이끄는 동력이 되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무작정 반가운 무더위가 살짝 꺾이고 조금씩 노랗게 물든 나무 잎새에 실린 가을의 신호를 보게 될 무렵 나는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하펠강의 어느 양조장에서 갓 따라낸 독일 맥주 한 잔을 들이킬 때의 높아진 청량감은 24만 5천 명이 다녀갔다는 베를린의 초대형 가전 전시회에서 쌓인 피로가 없었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으리라.

그만큼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로 알려진 IFA(9월 6일~11일 개최)를 보는 일은 정말 피곤하다. 해마다 파도 같이 밀려드는 인파를 뚫고 넓디 넓은 베를린 멧세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시간만 따져도 늘 모자라지만, 유럽의 가전 시장의 흐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더구나 소비자 기술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CES로 한 해의 막을 올리면 그 기술의 완성도를 IFA에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왔는데, 올해 진화를 확인해야 할 아이템 중에 8KTV를 빼놓을 수 없다. 흥미로운 점은 IFA 2019의 아시아 가전 업체는 물론 유럽 가전 업체들마저 8K TV에 대한 욕심을 내고 있었다는 것. 물론 ‘본격! 8K TV 시대’를 부르짖기는 아직 이른 때지만, 그렇다고 팔짱 끼고 두고볼 때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8K TV는 필요한가?

아직 4K TV 또는 UHD TV 시대도 자리 잡아가고 있는 마당에 8K TV의 등장은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그러니 ‘8K TV가 필요해?’라는 의문을 갖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게다. 하지만 어쩌나. 이미 TV 업계는 8K 마케팅에 시동을 걸었다. 생각보다 빨리 8K TV 시대가 올 거라 보기 때문이다. IFA 2019도 그런 흐름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8K TV는 왜 필요한지 의문부터 풀어야 한다. 그런데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더 큰 TV의 화질 향상을 위해서다. 물론 풀HD 시대에도 큰 TV가 있었고 4K 시대인 지금도 대형 TV를 만들고 있는데 굳이 8K까지 구현해야만 하느냐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TV에서 색을 내는 빛의 점인 화소라는 최소 단위가 넉넉하지 않으면 TV가 커질 수록 화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4K와 8K를 동일 화면 크기에서 표시할 때 해상력은 큰 차이를 보인다. (이미지 출처 : www.hdmi.org/manufacturer/hdmi_2_1/index.aspx )

예를 들어 같은 공간 안에 각각 40개 화소와 80개 화소로 원을 그렸다고 가정해 보자. 작은 화면에서 두 개 원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화면에서 두 그림을 확대하면 40개 화소보다 80개 화소에서 그린 원은 세밀함의 차이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둥글게 휘어지는 부분을 볼 때 40개 화소의 원은 섬세하게 다듬지 못해 각진 것처럼 보이는 반면, 80개 화소 그림으로 볼 땐 그보다 훨씬 정교한 곡선으로 보인다.

이를 그대로 TV로 옮겨 보자. 작은 화면에서 적은 화소의 원 그림은 그리 이상하지 않지만, 화소가 적은 그림을 큰 화면으로 옮기면 화소의 크기와 간격으로 인해 또렷한 느낌이 줄어든다. 이를 해결하려면 더 많은 화소를 채워 넣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물론 각진 부분을 부드럽게 만드는 효과를 주는 나름의 해결책도 있기는 하나 물리적인 개선만큼 효과적이라 하긴 어렵다. 결국 더 큰 TV의 몰입감을 방해하는 화질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유가 8K TV의 존재 이유인데, IFA 전시장에 있던 대부분의 8KTV가 60인치 이상 대형 제품에 몰려 있었고 그보다 작은 크기는 4K TV들이 자리를 잡는 모양새였다.

8K TV가 업그레이드시키는 것

8K TV는 가로 7,680, 세로 4,320개의 물리적 화소를 가진 디스플레이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영상이 다 또렷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4K TV에 4K 콘텐츠가 필요했듯이 8K TV도 8K TV에 맞는 콘텐츠를 띄워야 하는 것이다. 물론 기계 학습까지 더해 낮은 화질의 콘텐츠를 고화질로 변환하는 업스케일링 기술을 활용하면 4K 콘텐츠라도 8K TV에서 볼 수는 있다. 단지 4K에 맞춰진 콘텐츠에 아무리 기술을 더해 8K TV에 필요한 충분한 데이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결국 때가 되면 8K로 제작된 콘텐츠를 찾을 수밖에 없다.

8K TV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프로세서를 IFA에서 공개한 삼성전자.

다만 지금 시점에서 8K 콘텐츠는 만드는 것도, 보는 것도 녹록하지 않다. 4K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한 촬영과 편집, 인코딩, 전송 등 여러 환경을 두루 갖춰온 덕분에 값비싼 스마트폰 한 대만 있어도 4K 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인터넷으로 손쉽게 전송 받아 볼 수 있을 만큼 환경이 성숙됐지만, 8K 콘텐츠는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이를 촬영하고 편집할 장비나, 이를 재생할 플레이어 같은 기본 여건마저 미비하다.

그런데 바뀌어야 하는 것은 콘텐츠 제작 여건 만은 아니다. 8K 콘텐츠가 4K 콘텐츠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담아야 하는 점에서 콘텐츠를 보는 환경도 업그레이드를 해야 해서다. 풀HD보다 가로로 2배, 세로로 2배 더 많은 화소의 이미지로 채워진 4K 콘텐츠 때도 그랬다. 더 커진 이미지 크기에 더 많은 색상 정보를 담고 있던 어마어마한 4K 콘텐츠의 압축을 풀어 내는 HEVC 디코더나, HDR 정보를 포함한 콘텐츠를 재생 장치에서 4K TV로 전송하는 고속 HDMI 2.0 규격, 여기에 4K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기 위한 20Mbps 급의 인터넷 등 시간을 두고 4K 시청을 위한 조건을 채워왔다.

앞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될 8K 콘텐츠 공급자들.

때문에 4K 대비 가로 2배, 세로 2배로 넓인 이미지와 더 깊은 색 정보로 가득 채워진 8K 콘텐츠를 보려면 또 업그레이드를 해야만 한다. 영상 압축 방식은 종전 4K 때와 같으나 더 커진 이미지로 인해 데이터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다. 결국 더 많은 용량을 전송할 수 있는 케이블과 이를 처리할 프로세서 성능, 더 넓은 인터넷 대역폭이 뒤따라야 한다. 아직 8K TV에 대한 공식 표준은 정해진 게 아니지만, 8K TV는 거의 모두 HDMI 2.1 케이블을 지원한다. HDMI 2.1은 초당 60장의 8K 또는 초당 120장의 4K 영상을 전송할 수 있는 케이블 규격이다. 8K 콘텐츠를 재생하는 장치가 있더라도 그 신호를 TV에 제대로 보낼 수 있는 케이블을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8K TV 생태계를 가속할 초고속 망

콘텐츠 스트리밍 시장도 8K에 대비하는 중이다. 유튜브 같은 인터넷 서비스는 일찍이 8K 영상 스트리밍을 시험하며 더 높은 대역폭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유튜브는 2015년 이미 영국에서 8K 비디오 스트리밍을 테스트를 시작하면서 50Mbps의 대역폭을 요구했다. 그 때 평균 인터넷 속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지만, 100Mbps 인터넷 망을 기준으로 대역폭의 절반을 쓸 만큼 많은 데이터를 전송했던 것이다. 이는 온라인 게임이나 다양한 인터넷 스트리밍을 동시에 처리하려면 SK브로드밴드 같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의 기가비트급 인터넷이 아닐 경우 매우 버거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벌써 유튜브에 업로드된 수천 개가 넘는 8K 영상은 8K TV의 가치를 확인하는 중요한 영상 소스로 활용되고 있는 데다, 위성이나 공중파로 간간히 시험 중인 8K 방송에 대한 규격이 확정해지기 전까지 인터넷 망은 8K 콘텐츠의 주요 전송 통로로 활용할 수밖에 없어서다.

높은 대역폭은 콘텐츠를 현장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올림픽이나 프로 스포츠 생중계처럼 8K로 촬영된 고화질 영상을 곧바로 8K TV에서 보려면 넓은 대역폭을 가진 유무선 망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 때문에 5G의 역할을 더 눈 여겨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또한 5G를 이용하면 8K TV까지 무선으로 영상 신호를 보낼 수 있는데, 이를 위한 어댑터를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이 개발하기로 했다.

이처럼 8K TV는 콘텐츠를 만들고 보는 환경을 한 번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동력이다. 물론 대중화까지 거리가 있어 보이는 터라 동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뿐이다. 그럼에도 IFA에서 본 수많은 8K TV에서 이미 그 동력이 전달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4K가 그랬던 것처럼.

덧붙임 #

이 글은 SK브로드밴드 블로그에 기고한 글의 원본으로 일부 내용이 다를 수 있음.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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