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마다 새로운 안드로이드의 모습을 미리 맛볼 수 있다는 건 아마 픽셀 시리즈를 가진 이용자들의 소소한 즐거움일 게다. 올해도 그 즐거움의 시간은 어김 없이 찾아 왔다. 구글 I/O 21의 시작과 함께 안드로이드 12 베타 1의 배포가 시작된 것이다.
안드로이드 12 베타 1이 공개됐다는 소식을 듣자마다 어디에서 내려 받는 지 찾아 보지도 않고 곧바로 픽셀 4에서 브라우저를 열어 안드로이드 베타 사이트에 접속하는 주소를 입력했다. 픽셀을 전전하며 이 짓을 몇 년 반복하다보니 이제는 베타를 받으러 가는 길 정도는 눈감고도 가는 수준이 된 모양이다.
그런데 올해 한 가지 달라진 풍경이 있다. 픽셀 시리즈만 베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던 예전과 달리 올해는 제법 많은 제조사 중 극히 일부 모델도 공개 베타에 함께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작은 아쉬움이라면 이번 베타 프로그램에 (그래봤자 하나 뿐이지만) 한국 제조사의 스마트폰이 없다는 정도일 게다.
베타 프로그램에 등록 후 픽셀4의 운영체제 업데이트에서 확인을 누르니 곧바로 안드로이드 12 베타 안내가 떴고 설치 최적화 등을 거쳐 업데이트를 끝냈다. 사실 첫 모습은 얼핏 큰 변화는 없어 보였으나, 잠금을 풀기 위해 화면을 위로 쓸어올리자 나타난 숫자판을 시작으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아 채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장 직관적인 변화는 빠른 설정이다. 아이콘이 가득했던 빠른 설정의 각 항목들을 큼지막한 타일 구조로 바꿨다. 타일 구조는 바꿀 수 없지만, 타일 색상은 이용자가 홈 화면 설정에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그렇게 설정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보조색을 맞춰 적용한다. 밝기 조절용 바도 달라졌고, 배터리 잔량도 퍼센테이지 대신 쓸 수 있는 시간으로 변경했다. 또한 아이콘의 모양을 변경할 수 있고, 설정 화면의 아이콘도 좀더 세련된 형태로 바꿨다. 긴 메뉴를 스크롤 한 뒤 맨 끝에 다다를 때 살짝 튕겨 오르는 애니메이션과 메뉴를 선택할 때 노이즈가 섞인 듯한 터치 애니메이션을 새로 적용했다.
사실 이러한 그래픽 인터페이스 가운데 일부는 어쩌면서 다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 안드로이드 위에 픽셀 런처를 실행하고 있던 픽셀 스마트폰에선 매우 큰 진전이다. 픽셀폰은 순정 맛으로 쓰는 탓에 멋대가리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이용자 인터페이스를 참고 썼던 이용자들에겐 선물 같은 변화인 셈이다.
이번 UI의 변화는 머티리얼 디자인을 시스템에 적용한 결과다. 머티리얼 디자인은 구글이 안드로이드에 도입한 디자인 언어로 지금까지 앱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나 조작성 등 이용자 경험에 제안되었다. 하지만 머티리얼 디자인에 기반에 이용자가 원하는 환경으로 꾸미는 기능이 늘어난 것은 안드로이드 12가 처음이다. 구글은 이용자가 구성하는 머리티얼 디자인에 대해 머티리얼 유(Material You)라고 부른다.
또한 위젯 화면과 위젯 모양을 재설계했다. 종전 위젯 설정 화면은 앱이나 위젯을 타일 형태로 여러 페이지에 표시했으나 안드로이드 12는 모든 위젯을 하나의 페이지로 묶고 스크롤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위젯은 모두 모서리가 둥근 라운드 형태나 원형으로 통일 했다. 더 이상 각진 사각형 위젯은 없고 주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모양과 형태로 통일 됐다.
사실 이번 업그레이드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개인정보 대시보드(Privacy Dashboard)였다. iOS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기능이 돋보이는 데 비해 안드로이드는 한발 뒤쳐진 느낌이었지만, 개인정보 대시보드는 iOS보다 한발 더 나아가 앱내 개인정보를 통합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능이다. 하지만 이번 베타 1에는 이 기능을 포함하지 않았다.
개인정보 대시보드를 좀더 이야기해 보면 앱이 어떤 권한을 갖고 실행 중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앱이 어떤 데이터에 접근하고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지 한눈에 파악하고, 위치나 카메라 같은 각 권한 별 앱 정보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이용자가 실행 중인 앱에서 권한을 중단 시키고 싶다면 이 대시 보드에서 처리할 수 있고, 부여된 권한을 받은 앱을 실행하면 이 앱에 어떤 권한이 부여됐는지 실행 초기 화면 오른쪽 상단에 표시한다.
위치도 아주 세부적으로 보여주지 않을 수 있다. 지도처럼 아주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하는 상황이 아닌 앱이 위치 정보를 원할 경우 위치 권한은 부여하되 대략적인 위치만 알도록 지정할 수 있다. 날씨를 알려주는 앱처럼 정확한 위치보다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앱에 이 권한을 지정할 수 있다.
앱 최대 절전 모드도 흥미롭다. 지난 해 안드로이드 11은 자주 쓰지 않는 앱에 대한 권한을 없애는 기능을 담았는데, 올해 앱 최대 절전 모드는 한발 더 나간 기능이다. 자주 쓰지 않는 앱의 권한 설정은 물론 강제 종료 및 메모리와 저장소, 임시 자원들을 모두 제거한다. 앱을 삭제하진 않으나 앱에 저장된 캐시 및 일부 데이터를 삭제해 저장 공간을 확보한다.
이처럼 안드로이드 12 베타 1은 디자인과 개인정보보호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를 담고 있다. 비록 안드로이드 12의 모든 기능을 다 담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방향성을 읽는 데 필요한 정보는 모두 담고 있는 셈이다. 다만 후면을 두 번 탭하면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두 번 탭’ 같은 기능은 베타 1에 적용됐지만, 안타깝게도 픽셀 4에선 작동하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 안드로이드 12는 AV1 기반 이미지 압축 형식인 AVIF 지원을 예고했지만 아직 이를 활성화하는 옵션은 찾아내지 못했고, 스피커 소리에 따라 진동을 살리는 오디오 결합 햅틱 효과도 베타 1 단계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한손 모드는 엄지로 조작할 수 있도록 화면을 절반 크기로 줄이는 기능으로 이제 안드로이드 12를 채택하는 제조사 손쉽게 해당 모드를 쓸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안드로이드 12 베타 1은 픽셀은 머티리얼 유 디자인을 올바르게 적용했을 때 얼마나 더 예뻐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표본이다. 아마도 픽셀 소유자들은 안드로이드 12의 머티리얼 디자인이 얼마나 픽셀 스마트폰을 더 예쁘고 경쟁력 있게 만들었는지 확인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다른 제조사가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안드로이드 제조사가 만드는 자체 UI를 이에 맞게 변경해야 하는데, 기존 디자인과 다른 점이 많아서 얼마나 이를 수용할지 지켜봐야 해서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12를 얹은 픽셀을 보면서 구글이 미학적으로 뛰어난 제품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을 다른 제조사들이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비록 화려하지 않으나 가장 손쉽고 직관적으로 다룰 수 있으면서 덜 복잡한 안드로이드 12의 픽셀 런처는 앞으로 픽셀 시리즈가 경쟁자 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듯한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덧붙임 #
- 스킨 오류로 이 곳에 공개된 모든 글의 작성일이 동일하게 표시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21년 5월 29일에 공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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