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IDF 2007에서 뽑아 본 나만의 관심사 세 가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마감으로 정신 없던 2주 전에 인텔과 AMD의 움직임을 참으로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인텔이 마련한 초대형 잔치판의 흥을 깨는 AMD 폭탄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에 신경쓰는 것 마저 귀찮은 듯 세계의 개발자들 앞에서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는 인텔의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 또 펼쳐졌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봄과 가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인텔 개발자 포럼(이하 IDF) 시즌만 되면 늘 이런 식의 그림들이 그려져 왔는데, 지겹기는 커녕 오히려 흥미를 돋우는 소식들이 많이 쏟아져 흐뭇하기만 하다.


이번 가을 IDF에서 나의 관심사를 많이 이끌어 낸 것은 역시 인텔 쪽이다. AMD가 트리플 코어라는 제법 재미있는 발상을 내놓기는 했으나 그것에 양념을 더할 가십들이 부족한 탓에 한 순간의 관심사에만 머물고 말았다. 무엇보다 AMD가 고전적인 코어 기술로 인텔에 싸움을 걸었음에도, 이에 대한 맞대응을 자제한 인텔의 모습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대응이 적잖은 재미를 주는 이 싸움판에서 인텔이 한 발을 슬쩍 빼는 듯한 인상에 다소 재미를 잃은 것이다. 분명 인텔이 45nm 이하 미세 공정의 새 코어에 대한 설명을 빠뜨린 것이 아님에도, 이번 IDF에서는 적어도 머릿수(코어) 싸움은 더 이상 하지 않는 이상한 의지는 보여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 서버와 데스크탑, 모바일 CPU 시장을 통틀어 절대 강자라 할 수 있는 인텔이 코어의 수싸움에서 AMD에 밀린다는 억측을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인텔이 IDF를 통해서 공개한 몇몇 기술들은 지금까지 코어나 트랜지스터의 수, 미세 공정처럼 기술적 리더십을 보여주려는 것보다 소비자의 컴퓨팅 환경에 어울리는 ‘쓰임새’ 좋은 프로세서와 기술 접목을 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던 것을 세 가지만  꼽는다면 다음과 같다. 하나, 모바일 통합 그래픽 칩셋에 차세대 영상 코덱을 포함, , 인텔판 멀티 코어 하이엔드 그래픽 칩셋 인정, , MID를 겨냥한 초소형 휴대 단말기를 겨냥한 칩셋. 이미 발표된 내용이거나, 이전에 실체가 공개됐거나, 많은 이들을 통해 회자된 것이라 특별한 게 아닐지는 몰라도 이것들이 CPU의 코어 수를 늘리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 거라 생각을 갖고 있다. 아래 세 가지를 꼽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글을 끝맺고자 한다.


1.
먼저 인텔이 블루레이 디스크와 HD DVD 재생에 필요한 모든 코덱을 통합 그래픽 칩셋 차원에서 접목하는 것부터 짚어 보자. 내년에 나올 산타로사 후속 몬테비나 플랫폼에 들어가는 45nm 펜린과 빌트인되는 와이맥스에 가려져 이에 대한 인텔의 결정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은 이야기다. 현재 인텔의 통합 내장형 칩셋은 MPEG-2와 VC-1만이 포함되어 있지만, 다음 통합 칩셋에는 H.264와 VC9까지 넣는다고 밝혔다(물론 이 대목은 AMD의 경쟁 플랫폼인 퓨마를 따라한 면이 없잖아 있다. 퓨마는 일찍이 두 차세대 코덱을 지원한다고 밝혔던 터였다).


인텔이 두 차세대 영상 매체의 코덱을 전력대비 성능의 효율성 좋은 모바일 칩셋에 넣음으로써 강화되는 것은 단순히 노트북의 멀티미디어 기능만이 아니라, 슬림하고 강력한 초소형 PC와 HD 셋톱 박스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블루레이 디스크와 HD DVD를 재생하기 위해서 덧붙여야 했던 엔비디아나 ATi의 값비싼 그래픽 칩셋을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곧 부품의 수를 줄여 더 간소한 보드를 만들 수 있어 더 많은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인텔에게는 싸고 강력한 모바일 칩셋의 판로를 더 확장하는 기회로, OEM 업체에게는 완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로, 소비자는 더욱 강력한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열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코어의 규격 통합 움직임은 다른 하드웨어의 통합 역시 부채질할 것이냐는 점이다. 이를 테면 차세대 영상을 재생하는 시스템의 말단에 놓인 광학 드라이브의 하이브리드(블루레이 디스크+HD DVD)화 같은 것 말이다. 지금 하이브리드 드라이브가 나오고는 있지만 수가 너무 적고 비싼 탓에, 결과적으로 코덱을 포함하더라도 하이브리드 드라이브가 없는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인텔로서도 이에 대한 직접적인 촉구는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이제 몬테비나 출시 이후의 하이브리드 드라이브 업체 동향을 팔짱끼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재미있는 것은 모바일 통합 그래픽 칩셋의 성능 강화와 반대로 인텔이 엔비디아와 ATi에 대적할 그래픽 칩을 만들 것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Larrabee’라고 알려진 인텔의 새 GPU는 이미 인텔의 사내 블로그를 통해서 언급되었고 지난 4월에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멀티코어 그래픽 칩 정도라고 알려졌을 뿐 독립형 GPU라는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폴 오텔리니 인텔 CEO가 Larrabee의 존재를 IDF에서 인정함으로써 향후 3D 게임이나 고성능 PC 시장을 겨냥한 그래픽 칩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ATi가 인텔의 도전을 받을 것임을 시사했다. 무엇보다 Larrabee가 눈길을 끄는 것은 IDF 직전에 인수한 하복(HAVOK) 때문이기도 한데, 이 회사가 갖고 있던 그래픽 물리 연산 기술을 Larrabee와 접목했을 때 어떤 효과가 나오게 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물리 법칙이 적용된 현실감 있는 진보된 게임을 만들 가능성이 높아짐으로써 하복과 Larrabee의 융합은 단순히 PC 게임뿐 아니라 PS3와 XBOX 360 이후 차세대 게임 콘솔 시장에서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3.
인텔이 멘로와 무어스타운에 거는 기대는 의외로 크다고 보고 있다. 이는 모바일 컴퓨팅 시장을 겨냥한 인텔의 욕심을 보여주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번 IDF에서는 2010년에 선보일 무어스타운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내년에 나올 멘로보다 1/10으로 유휴 전력을 줄일 수 있는 초초저전력 모바일 SoC(System on Chip)로 아직 긴 말을 늘어놓을 만큼 정보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인텔이 IDF에서 선보인 길죽한 무어스타운의 시제품을 보고 이를 완제품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인텔에게는 그 안에 들어있는 칩셋이라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그 하드웨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왜냐하면 인텔은 완성품 자체를 만들지 않는 회사니까 말이다. 무어스타운은 ARM 천하라고 할 수 있는 초소형 모바일 장치, 이를테면 스마트폰이나 휴대폰 시장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x86을  초초저전력 상태에서 가동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 지금으로서는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때문에 지금 당장은 무어스타운보다는 좀더 가까운 현재라 할 수 있는 MID에 쏟는 인텔의 노력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공룡과 손을 잡고 내놓은 UMPC와 달리 MID는 인텔이 나홀로 추진하는 휴대 장치 개념으로, 이를 위해 야심하게 멘로 플랫폼을 준비해왔다. 멘로 플랫폼은 초저전력 펜티엄 M의 1/10에 불과한 전력에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45nm 실버손 프로세서를 포함했을 뿐 아니라 역시 저전력 설계된 그래픽 칩셋을 박아 놓은, 포커 카드보다 좀더 큰 칩셋 뭉치다. 하지만 최초 UMPC를 위한 칩셋과 비교하면 엄청 작게 설계되어 있어 휴대 단말 장치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문제는 MID가 UMPC와 다른 개념이 아니라 경쟁 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이다. MID와 UMPC 모두 노트북이 갖지 못한 초소형 휴대 장치 시장을 겨냥하고 있는데다 두 장치를 쓰는 환경도 비슷하고 그 역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동하면서 인터넷에 접속하고 e-메일 확인과 웹 브라우징, 멀티미디어 등을 즐기는 건 같다는 소리다. 둘의 차이는 단지 MID가 더 작고 리눅스를 기본 운영체제로 쓴다면 UMPC는 더 크고 인텔 칩셋을 쓰지 않아도 상관없는 데다 윈도를 쓴다는 정도일 것이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은 둘 중 하나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UMPC보다는 MID에 집중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조심스레 추측한다. MID는 애초부터 인터넷 접속을 위해 칩셋과 운영체제가 최적화되어 있어 노트북의 일부를 대체하려 했다가 변화된 환경에 맞춰 기능을 더한 UMPC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노트북은 여전히 업무용으로서 가치를 갖는 반면, 그 영역을 일부 나눠가지려 했던 UMPC는 어느 쪽에도 포지셔닝이 되지 못한 성능과 기능을 갖고 있어 입지 자체가 애매하다. 크기와 가격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다. 이에 비해 MID는 휴대하기 좋은 크기와 가격, 배터리 성능에다 MIDIA 같은 하드웨어 연합체가 적극적으로 MID 제품 개발을 주도하고 있어 UMPC보다는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이고 결국 시장의 규모와 이를 키우는 속도에서도 UMPC와 차이를 보일 것이다(만약 2008년 봄 IDF에서 인텔이 맥카슬린의 뒤를 잇는 UMPC 플랫폼을 내놓지 않는다면 인텔은 더 이상 UMPC 시장에 대한 큰 미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고 당장 맥카슬린의 제조 중단 같은 조치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인텔이 MID의 성공을 바라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다고 해도 모든 일이 인텔 뜻대로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값싸게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거의 없는 것과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가장 어렵고 풀기 힘든 변수가 남아 있으니까.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4 Comments

  1. 2007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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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rrabee는 현재 인텔에서 개발 중에 있고 이것은 말씀대로 GPGPU (general purpose GPU) 형태로 나옵니다. 이미 nVidia에서도 8×00 급에서는 새로운 칩을 추가하여 단순히 그래픽 전용이 아닌 GPGPU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CUDA라는 라이브러리도 나왔습니다. 보다 로우레벨에서 GPU 자원을 이용하여 여러 과학 계산 (행렬 곱셈 등)을 가능케 해줍니다. 그 외에도 인텔에서 GPGPU를 어떻게 하면 잘 돌릴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죠.

    • 2007년 10월 1일
      Reply

      아.. 엔비디아보다 Larrabee가 유리한 부분은 별도 라이브러리인 CUDA와 다르게 x86 코드를 그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더군요. 뭐, 이에 대해서는 결과만 좋으면 좋다는 쪽에 붙고 싶습니다만..

      CPU 부담을 줄이고 더 효과적인 데이터 처리를 위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GPGPU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인텔의 가세로 더 커진 게 아닐까 합니다. 이 혜택을 일반 소비자가 누리려면 앞으로 몇 년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요? ^^

  2. 2007년 10월 15일
    Reply

    아, 학교에서 읽어보고 집에 오면서 댓글 달고 싶어서 간지러웠습니다..ㅎㅎ”
    이 재미있는 글에 댓글이 하나뿐이라니..킁;;
    (조금 기술적인 내용이어서 그럴까요?)

    인텔의 통합칩이 점점 거대해지는 것 같습니다.
    엔비디아와 ATI가 긴장하지 않아도 될까요?
    아무래도 통합칩의 성능이 점점 커지면(물론 단일칩보다는 성능이 부족하더라도..) 말씀하신 것처럼 통합칩을 이용하는 제조사들이 많아질텐데, 그럼 GPU 제조사들이..@@;;

    게다가 통합칩 외의 GPU도 따로 만들다니..
    인텔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MID..
    정말 기대되는 것 중에 하나네요..
    사실, UMPC 시장을 계속 바라보면서 언제쯤에야 HPC만한 x86 이 나올 수 있을까? 라면서 조용히 기대중인데..
    x86에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고..(OQO를 보면 기대를 계속 하게 되면서도..)
    MID는 그보다 작아질 수 있다고 하니 정말 기대가 안될 수 없네요..^^;;
    근데, 왜 좀처럼 보이지 않는건지..(-_ㅜ;; )

    지식이 부족해 댓글의 한계가 보이네요..훗..
    컴퓨터 개론이라도 혼자 파봐야겠습니다..^^;;

    • 2007년 10월 16일
      Reply

      대신 GPU 제조사들이 메인보드 칩셋을 만들고 있다죠? ^^
      MID는 내년 쯤에 볼 수 있을 듯 한데, 우리나라 제품이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네요. -.ㅡ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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