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IFA2013을 마무리해야 할 때다. 사실 CES나 IFA 같은 큰 소비자가전 전시회를 찾는 이유는 특정 산업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여서다. 세계 여러 IT 가전 기업이 모여 신제품을 공개하는 덕분에 어느 정도는 공통점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많이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해 IFA를 건너뛴 게 실수가 있기는 하지만, TV 부문의 방향은 다양한 기능보다 화질을 중요시하던 예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스마트의 작별과 화질의 회기
TV는 꽤 오랫동안 대형 전시회의 흐름을 이끌어 온 산업 가운데 하나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TV가 없는 대형 전시회는 상상하기 어렵다. 단지 TV의 흐름은 지난 몇년 동안 풀HDTV 이후 새로운 방향성을 잡는 과정에서 엇갈린 접근으로 인해 혼란을 겪은 것은 분명하다. 방송 화질의 개선과 아울러 풀HD 화질 경쟁이 마무리될 때쯤 시작된 3D 시청과 모바일 산업으로부터 촉발된 스마트 경쟁이 TV 시장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3D와 스마트는 화질과 동떨어진 방향성은 아니지만, 방송과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보기 위한 TV에 기능을 더한 점에서 조금 다른 방향성으로 나아갔다. 아바타처럼 성공했던 3D 영화 컨텐츠의 특수성으로 인해 3DTV에 대한 관심도를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시청 가능한 컨텐츠의 부족과 장시간 3D 시청의 피로감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 그리고 기술 구현의 논쟁 등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3DTV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3D가 한계에 부딪칠 때쯤 대신했던 키워드가 ‘스마트’였다. 불과 2년 전만해도 TV에도 스마트가 아주 중요한 코드로 자리를 잡았던 터였다. 모바일에서 시작된 스마트의 변화는 TV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저마다 스마트한 TV를 내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각 업체마다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온갖 기능과 복잡한 UI을 뒤섞은 스마트TV는 이용자에게 스마트폰을 통해 달라진 모바일의 경험처럼 더 나은 TV의 경험을 선사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스마트TV에 대한 정의가 불문명하고 기준점이 될만한 모델이 없었으며 갑작스러운 흐름으로 인해 이에 대한 대응이 늦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UHD와 OLED는 지난 몇년 동안 TV 업계에 나타난 혼란을 잠재우기에 접근하기 쉬운 키워드다. TV 업계가 의존하는 방송 업계의 흐름과 맥을 함께 하는 데다, TV 업계 스스로 이용자가 해석하기 쉬운 메시지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이해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3D나 스마트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UHD와 OLED TV의 기능으로 여전히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당분간 UHD와 OELD를 앞세운 TV 업계의 움직임 속에서 두 키워드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올초 CES에서 이번 IFA까지 이어지는 동안 상당수 영상 가전 기업들이 UHD 또는 OLED TV를 준비했고, 다양한 크기와 표시 방식, 곡면 처리된 TV를 이번 IFA에서 선보였다. 삼성, LG,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필립스, 하이얼 등 거의 모든 영상가전 부스마다 UHD 또는 4K TV 표시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곡면(Curved) 처리한 LED TV와 OLED TV도 경쟁적으로 전시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비하면 스마트와 3D에 대한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아졌거나 일부러 드러내지 않은 곳들도 많다고 보일 정도였는데, 불과 1년 만에 너무 달라진 분위기였다.
TV의 미래는 무엇인가?
이번 IFA를 보며 TV에 대한 메시지는 화질로 돌아오고 있는 것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도 느낀다. 사실 지난 몇년간 TV는 특정 환경에 종속된 장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장치가 되기 위한 좋은 기회를 맞았었다. 화질 경쟁과 다른 측면에서 TV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기회였다. 3D와 스마트는 기존 방송 환경과 다른 새로운 TV의 가치를 세우는 데 있어 중요한 키워드였던 것이다.
하지만 TV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가치를 벗어날 만큼 두 키워드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한 채 다시 화질을 앞세운 TV의 뒤로 물러선 느낌이다. 물론 앞서 말한대로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기능이 특별히 강조된 인상도 아니다. 부가 기능으로서 작은 공간에서 소개되곤 했지만, 대부분의 자리는 UHD에 내줬기 때문이다.
결국 TV는 돌고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느낌이다. 더 높은 화질의 방송을 보기 위해 기술적으로 발전했을지 몰라도 방송을 수신해 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TV의 모습 그대로 돌아온 셈이다. 방송 시청 환경이 더 나아졌으니 TV도 진화한 것이라면 할말은 없지만, 수십년 전 만들어져 지금까지 쌓아왔던 TV의 인식을 바꾸기엔 그 시간이 턱없이 짧았고 이용자의 저항이 거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물러나는 모습을 보니 TV는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는 바보 상자에 머물러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보인다. 화질을 빼 놓고 말할 수는 없어도, 화질에만 함몰된 듯한 전시회의 흐름에서 TV의 미래를 보여주는 화질은 어두워 보였을 뿐이다.
덧붙임 #
2014년 CES의 풍경도 비슷한 듯.
http://donghyungshin.blogspot.kr/2014/01/ces-2014-tv-back-to-basic.html
공감합니다! ㅠ_ㅠ
오히려 새로운 기술이라는 부분의 강조는 없었고, 화질과 사이즈 경쟁이 주가 되었던 느낌이었는데,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시네요! +_+
아마도 돌고 돌아서 조금 지나면 또 기능으로 승부할 날이 오겠죠. 그 때는 지금보다 더 접근하기 쉬운 제품으로 나올거라고 믿고 싶네요. ^^
아직 만족스런 3D영상을 구연하기엔 많은 기술력이 필요할것 같네요.
일단 무안경 시대가 와야겠지요. 그러려면 해상도가 8K까지 높아져야 하는데, 이런 제품의 대중적 상용화는 기다려야 할 듯합니다. 이제 막 4K 시대에 들어섰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