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대의 깃발을 꽂은 군함을 ‘기함'(Flagship)이라고 한다. 다양한 정보수집체계가 없던 과거 함대전의 기함은 선두에 서서 적의 동태를 살피며 함대에 명령을 내려야 했기에 언제나 최강의 전투력을 갖고 전장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전장의 선두에 서는 최강의 기함처럼 기업을 대표하는 최고의 제품을 일컬을 때 ‘플래그십 제품’이라 한다. 기함이 함대의 위용을 뽐내듯이 플래그십 제품은 그 기업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의미로도 통한다.
그래서 각 제조사는 사활을 걸고 플래그십 제품을 준비한다. 스마트폰처럼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선 더욱 그렇다. 개발 기간은 2년 가까이 되지만 1년에 1, 2개 제품만 내놓기 때문에 개발팀은 물론 여러 핵심 협력사까지 각별하게 관리하고 그만큼 보안도 한겹 더 친채 신중하게 움직인다. 경쟁자들보다 더 멋진 만듦새와 더 좋은 성능, 새로운 기능을 최고 기술을 담은 최신 부품으로 즐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한 터라 소비자들도 언제나 각 제조사가 새로운 플래그십 제품을 내놓을 때가 되면 어떤 제품을 내놓을 지 눈을 크게 열고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린다.
LG도 해마다 봄이 되면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잡을 플래그십을 내놓는다. 어제가 바로 올해의 ‘그 날’이었다. 지난 몇 년동안 LG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스마트폰 이름으로 한 자리를 굳힌 G시리즈의 최신판, LG G4를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공개한 것이다. 하지만 LG G4는 한달 전 제품 이미지를 몽땅 공개해 새로운 스마트폰에서 느끼고 싶은 신비감을 날려버린 채, 이날 그 실체를 직접 보면 몇몇 논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은 아쉬움 그 이상이다.
그렇더라도 사진으로만 보던 것에 비하면 LG가 G4에 쏟은 정성은 적지 않다. 이용자들이 많이 쓰고 보는 기능과 부품과 기술에 나름 공을 들인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약간 휘었다지만 G플렉스2를 좀더 평평하게 펴놓은 것 같은 화면과 가죽으로 덧댄 배터리 덮개의 느낌도 나쁘진 않다. 한복판을 세로로 가로지른 바느질 자국이 적잖이 거슬리나 그런대로 넘어갈 정도는 된다. 소가죽 품질에 대한 걱정과 필요에 따라 이용자가 사야 하는 것은 불편한 사실이지만, 제조사가 직접 만든 덕분에 본체와 제법 잘 어울린다.
G4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카메라다. 다른 것은 다 무시해도 카메라 하나 만큼은 철저하게 때려잡아 넣으려 한 의지가 강하게 읽힌다. 뒤쪽 카메라의 1600만 화소 이미지 센서는 평범할지 몰라도 그 앞에 붙여 놓은 F1.8의 밝은 렌즈의 구성은 좋다. Z축을 포함한 손떨림 방지도 그렇다. 무엇보다 수동 기능은 압권이다. 2700까지 올릴 수 있는 ISO, 1/6000초의 셔터 속도, 1/3 단계씩 가능한 노출 조절, 색온도로 잡는 화이트밸런스, 피사체의 거리에 따른 초점 조절을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 적외선과 RGB 센서로 피사체의 색깔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컬러 스펙트럼 센서 능력도 좋아 보이고 포토샵에서 찍은 사진을 정교하게 다룰 수 있도록 압축을 전혀 하지 않은 로우(RAW) 이미지로 저장하는 것도 자랑할 만하다. 음량 조절 버튼을 두번 빨리 누르면 곧바로 촬영하는 퀵샷이나 카메라를 여는 시간도 0.6초로 상당히 개선했다.
그런데 그 이외의 것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해상도를 QHD(2560×1440)로 올린 5.5인치 화면 때문이 아니다. LG가 이 화면에 ‘IPS 퀀텀 디스플레이’라고 이름을 붙인 때문이다. 퀀텀 디스플레이가 퀀텀닷TV에서 쓰는 양자점(Quantum Dot)으로 오해를 사기 쉬운 말이라서다. 이에 대해 LG는 백라이트 패널에 컬러 필터 대신 빨강, 초록의 혼합 형광 물질을 바른 양자 화학(Quantum Chemical) 소재를 적용한 터라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 당연하다는 투다. 이를 통해 색재현율을 27% 더 올리고 DCI 표준 색공간을 충족해 좀더 붉은 색이 돋보이게 하는 화면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이날 LG는 빨간 색을 더 돋보이는 여러 소재들을 깔아 그것을 더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도 했다.
가장 큰 논란은 바로 AP다. 이미 알려진 대로 LG G4는 퀄컴 스냅드래곤 808을 썼다. 64비트 듀얼코어 코어텍스 A57(1.8GHz)과 쿼드코어 A53(1.44GHz)을 섞은 프로세서다. 고성능이 필요할 땐 A57, 저전력 환경에서 작업할 땐 A53으로 스위칭하거나 필요한 경우 이를 모두 쓰는 멀티코어 AP다. 이미 LG는 G플렉스2에서 스냅드래곤 810의 발열 문제로 홍역을 앓았던 터라 스냅드래곤 808의 채택은 문제 있는 AP를 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LG는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스냅드래곤 808이 스냅드래곤 810보다 하위 AP는 맞으나 퀄컴과 함께 몇 가지 기능을 손본, LG와 합작에 가까운 AP라는 것이다. 자이로 센서를 결합해 더 정확해진 GPS나 녹음 기능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여기에 G4의 벤치마크 결과에 대해서도 의식한 듯 이 AP에 최적화를 했기 때문에 다른 스마트폰에 견줘도 사용상 불편은 전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경쟁사와 각 기능의 실행 시간을 소수점 단위까지 비교해가며 더 낫다고 주장한다. 논란이 된 벤치마크 결과도 “가장 가혹한 테스트 환경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 들었다.
그러나 스냅드래곤 808을 채택한 LG의 해명은 궁색하게 들린다. 발열 문제가 없다면 스냅드래곤 810을 채택하고 여기에 최적화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대답이라서다. 스냅드래곤 810에 없는 엄청난 능력을 808에서 찾을 수 있고 그것이 플래그십의 가치를 좌우할 그 무엇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스냅드래곤 808이 플래그십에 얹을 만한 엔진이라고 주장하기엔 객관적 지표에서 떨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서다.
이처럼 화면에 쓰는 용어 하나, 들어가는 부품 하나까지 신경 쓰는 것은 플래그십 제품을 중요하게 바라보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는 말이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바라는 기대감을 충족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도 된다. 단순히 더 좋은 성능만을 바라는 것도, 새로운 기능이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그냥 멋진 만듦새를 바라는 것도 아닌 정말 다른 무엇인가를 바라기 때문에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 거는 기대감이 크지만 LG G4가 새로운 플래그십으로 그 기대를 채웠는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다만 여러 논란에도 아마 G4는 생각보다 잘 팔릴 지도 모른다. 마이크로SD로 저장공간을 확장하고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 플래그십은 G4가 유일한 데다 배터리를 하나 더 얹었으면서도 출고가를 낮추고 적극적인 영업으로 이통사가 최대의 보조금을 싣기로 결정한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은 미칠 것으로 보여서다. 굳이 플래그십이라는 것을 따지지 않는 시장으로 나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정도갖고선 아이폰 못넘는다!
현상금백억걸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