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 들렀던 독일 베를린의 IFA 전시장은 어느 홀을 막론하고 시끌시끌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수많은 참관객이 쉴새 없이 들고 나며 화려한 소리를 뿜어내는 사방에 전시된 제품을 둘러보고 기술을 물어 보는 이들로 넘쳐나는 이 곳이 조용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온갖 소리라는 소리는 다 들리는 것 같은 이 곳에서도 아주 잠시나마 평온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MDR-1000X라는 소니 부스에 있던 헤드폰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맞이한 일상도 세상의 소리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웃고 화내고 슬퍼하는 온갖 인생사들로 시끌벅적한 카페, 옆사람의 이야기 조차 알아 듣지 못할 굉음을 내며 땅 속을 내달리는 지하철, 심지어 아파트 옆 놀이터에서 큰 목소리로 신나게 뛰어 노는 아이들까지, 이것이 세상사는 소리라며 위로하면서도 때론 그 소리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가 있다. 이렇게 세상의 소리를 끌 수 있는 스위치가 필요한 순간 MDR-1000X가 답을 준다.
소니 MDR-1000X는 헤드폰이다. 음악을 들을 때 쓰는 그 헤드폰이 맞다. 하지만 세상의 소리를 무음으로 바꾸는 스위치기도 하다. 잡음을 걸러내는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의 스위치를 켜는 동안 MDR-1000X를 쓰는 동안 내가 보는 세상은 언제나 고요하다.
하지만 잡음 감쇄 효과가 지나치게 좋아서 탈이다. 개발자가 그랬다. MDR-1000X의 프로토타입을 쓴 채 거리를 걸어가는데, 너무 조용해서 공포를 느꼈다고. 나도 그랬다. 양산형으로 나온 MDR-1000X를 작동시킨 채 길을 걷다가 아슬아슬하게 내 곁을 지나치는 차를 가까스로 피한 일이 있었다. 이것은 분명 공포다. 사실 나처럼 안경을 쓰고 있으면 이어패드 사이로 잡음이 들어와 노이즈 캔슬링 효과가 조금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적화를 한번 마친 MDR-1000X는 그 약점까지 덮어 버린다.
때문에 외부의 소리를 좀더 잘 들을 수 있는 설정을 여럿 둔 것은 개발자의 탁월한 결정이다. 특히 ‘퀵 어탠션’은 매우 쓸모 있다. MDR-1000X은 오른쪽 패드에 손바닥을 살짝 대면 외부의 소리가 여과 없이 귀로 전달된다. 어쩌면 헤드폰을 벗고 있을 때보다 바깥 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이 헤드폰을 쓰고 있는 누군가 오른쪽 패드에 손을 대고 있을 땐 말을 삼가하시라. 그가 모든 것을 다 듣고 있을 수 있으니…
퀵 어탠션 외에도 잡음 감쇄를 켠 채 목소리만 좀더 잘 들리는 모드도 있다. 개발자가 지하철이나 공항의 안내 방송을 잘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단다. 음성 모드는 상황에 따라서 쓸모 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지하철 소음이 너무 싫어 음량을 높여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 보니 음성 모드를 켜도 안내 방송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때문에 9호선 급행처럼 몇 안되는 정거장을 이동할 때는 내리는 곳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헤드폰을 쓰지 않기도 한다.
이는 음량을 올려서 음악을 듣는 나같은 이들의 문제다. 음량을 낮추어 음악을 들는 이들에게는 문제 되지 않는다. 어쨌든 이처럼 잡은 수준을 조절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노이즈 캔슬링 대신 노이즈 컨트롤이라는 소니의 언어 유희도 직접 써보면 이해되는 부분이다.
MDR-1000X는 유무선 모두 쓸 수 있지만, 난 대부분의 시간을 블루투스로 연동해 무선으로 들었다. 그렇다고 이 헤드폰과 최상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오디오 코덱 LDAC을 내장한 소니 워크맨이나 엑스페리아 스마트폰에 물려서 들은 것도 아니다. 소니가 아닌 국내 S사 스마트폰에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음질을 두고 이래저래 잔소리를 늘어 놓을 게 별로 없다. 진동판에 고급 알루미늄 소재를 쓴 커다란 드라이버 유닛에 aptX와 음질 개선 엔진(DSEE HX)의 소리 보정은 기대치를 뛰어 넘는다. 굳이 값비싼 LDAC 플레이어를 곁들이지 않아도 무선에서도 다른 블투 스피커보다 훨씬 나은 소리를 낸다. 물론 MDR-1000X를 유선으로 연결하면 LDAC을 갖춘 플레이어 수준으로 들을 수는 있다. 케이블이 불편하지 않다면 이것도 방법이지만, 내 경험상 이것은 권하고 싶진 않다.
오른쪽 하우징 전체를 터치 패드도 만든 것은 좋은 아이디어다. 덕분에 곡을 넘기고, 음량을 조절하는 일이 쉬워졌다. 더구나 손바닥을 대는 것만으로 외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퀵 어탠션은 MDR-1000X만 찾을 수 있는 장점이다. 지금까지 써본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에서 외부 소리를 듣기 위해 스위치를 끄거나 버튼을 찾아 누르는 게 여간 번거롭지 않았으나 이 헤드폰에서는 정말 간단하다.
하지만 잡음 감쇄와 무선 음질의 두 가지 목표를 제대로 잡은 제품이라고 해도 흠이 전혀 없진 않다. 일단 나는 배터리 잔량을 확인할 수 없는 무선 헤드폰이 매우 불편하다. MDR-1000X가 그 나쁜 조건을 갖고 있다. 블루투스로 연결한 뒤 장치의 배터리 잔량을 표시하는 흔한 블루투스 제품에서 MDR-1000X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혹시나 전용 앱이 있나 싶어 찾아봤으나 없다. 배터리 잔량 확인도 없고, 기능 설정을 위한 앱도 없다. 그래서 개발자에게 물어봤다. 이 제품을 제어할 앱을 만들 계획이 있냐고. 다음 제품에서 고려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소니 MDR-1000X는 전용 케이스가 있다. 쓰지 않을 때 이 케이스에 넣고 다니면 드러나지 않을 문제가 있다. 잠시 손에 들고 움직일 때다. 헤드폰을 들고 걸을 때의 흔들림 정도로도 양쪽 헤드폰 부분이 아래로 흘러 내린다. 조절 부분이 너무 부드러워서 생기는 문제다. 두 개의 장치에 동시에 연결하는 멀티 페어링도 되지 않는다. 아마 노트북과 스마트폰에 동시에 물려 쓰려는 이들 사이에서는 단점으로 통하기 쉽다. 높은 만듦새에 비해 밖으로 노출한 USB 단자도 먼지나 외관을 고려할 때 조금은 무성의해 보인다.
완벽한 제품은 아니기에 몇 가지 단점은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다만 MDR-1000X는 잡음 감쇄와 무선 연결의 음질이라는 두 가지 목표에 확실히 도달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이 헤드폰을 만든 이유가 그것이니까.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를 꺼둘 수 있는 스위치 같은 헤드폰… 내게는 그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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