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지난 9월 16일 온라인으로 개최한 XR 개발자 이벤트의 이름을 여섯 번이나 썼던 오큘러스 커넥트 대신 페이스북 커넥트(Facebook Connect)로 바꿔서 치렀다. 행사 명칭의 변경은 오큘러스를 소유한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가 의미를 설명할 만큼 적지 않은 변화를 의미한다.
이번 페이스북 커넥트는 가상 현실과 함께 증강 현실, 혼합 현실 등 XR 컴퓨팅 기업으로 페이스북을 중심에 세우는 첫 시도다.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을 구축하고, 존재감과 몰입감을 제공하며, 관심 있는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한 최고의 플랫폼으로써 오큘러스를 넘어서 확장해야 하는 작업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마크 주커버그의 짧은 설명에 그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때문에 페이스북은 커넥트 이벤트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현재에 충실하게 준비된 가상 현실 하드웨어와 서비스, 그리고 몇 년 뒤를 내다 보고 준비해야 할 증강 현실의 기술 과제와 고민에 대해 페이스북 리서치 랩(Facebook Research Labs)의 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커넥트의 전체 메시지 가운데 오큘러스 퀘스트2에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전작인 오큘러스 퀘스트의 판매량이 썩 나쁘지 않은 상태에서 수많은 개선과 획기적 가격을 가진 후속 제품의 출현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으니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긴 하다.
실제 오큘러스 퀘스트2는 흥미로운 제품이다. 오큘러스 퀘스트보다 10% 더 가벼워진 본체와 50% 더 많은 픽셀에 90Hz의 높은 주사율을 가진 4K급 싱글 디스플레이, XR 환경에 맞춰 설계된 스냅드래곤 XR2 프로세서 등 전작보다 좋은 제원을 갖췄다. 그러면서도 299달러라는 가격 친화성까지 갖추는 등 6자유도의 독립형 VR 헤드셋으로는 이상적인 조건을 모두 담았다.
이처럼 오큘러스 퀘스트2는 가상 현실을 경험하고픈 이들에게 큰 매력을 발산하는 가상 현실 헤드셋이지만, 또한 몇몇 새로운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첫 째는 가상 현실과 소셜 미디어의 데이터로 인한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문제이고, 둘 째는 컴퓨팅 플랫폼으로써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것이다.
사실 오큘러스 퀘스트2의 개인정보보호 문제는 페이스북 커넥트 이전에 불거진 문제다. 오큘러스 퀘스트2 발표 전 페이스북이 신규 헤드셋에서 무조건 페이스북 계정을 연동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부정적 의견이 일부에서 제기되면서다. 기존 오큘러스 VR 헤드셋은 오큘러스 계정을 별도로 관리하고 필요에 따라 페이스북을 연동했지만, 페이스북은 이러한 정책을 신규 헤드셋부터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오큘러스 퀘스트2의 계정 정책 변경은 가상 현실 환경에서 페이스북의 친구들과 손쉽게 연결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페이스북의 설명이다. 이미 기본 홈 화면 및 수많은 VR 앱에서 페이스북 친구와 연동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 데다 페이스북 호라이즌(Horizon)이라는 페이스북 계정을 이용한 가상 현실 소셜 서비스의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결국 페이스북 계정을 연동하는 서비스와 기능이 많은 만큼 이러한 경험을 통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단순히 계정만 연동한다면 별 문제는 아니지만, 페이스북은 이미 계정 통합 FAQ에서 그 목적이 이용자 데이터의 활용에 있음을 밝힌 상황이다.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제품 경험 제공 및 개선, 서비스의 안전 및 무결성 향상, 페이스북 제품에 맞춤화된 콘텐츠 표시(광고 포함) 등을 명시한 것이다. 단지 지금 시점에서 VR 내에 광고를 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결국 시기의 문제일 뿐 광고에 활용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비록 모든 퀘스트 2 이후의 데이터를 페이스북으로 전송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시간이 지날 수록 그 구분이 애매해 질 수밖에 없어 사실상 두 환경의 통합을 의도한다고 볼 수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페이스북이 가상 현실 내의 행동 데이터를 추적하는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라는 점이다. 마우스 클릭이나 모바일 앱의 스크롤 및 작동 시간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용자를 좇았던 이전과 달리 이제 페이스북는 가상 현실 내에서 이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직접 수집해 분석할 수 있는 오큘러스 무브(Oculus Move)라는 기능을 예고했다.
오큘러스 무브는 외형적으로는 피트니스 트래커처럼 보인다. 가상 현실에서 이용자가 운동 목표를 설정하고 유산소 운동에 도움이 되는 앱을 실행한 뒤 그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해 보여주는 기능이다. 코로나19로 집에서 VR 피트니스를 즐기는 이들을 위해 퀘스트2 출시 후에 내놓을 기능이지만, 단순히 이용 시간 수준이 아니라 설정된 운동 목표를 위해 가상 현실 내에서 행동을 추적하는 데이터를 만드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행동 추적 데이터를 페이스북이 악용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기업의 활동을 선의로 해석하는 것 역시 경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계정 통합 논란과 별개로 오큘러스 퀘스트2에서 눈에 띄는 새로운 방향성이 있다. 가상 현실을 업무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준비하고 있는 점이다. 페이스북 커넥트에서 마크 주커버그는 코로나19 이후 오큘러스 관리팀이 VR로 회의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영상 통화는 해결할 수 없는 공간 안에서 시각과 청각 등 감각을 유지하고 공유하면서 그 차이를 확인하면서, 앞으로 가상 현실을 원격 업무에 도입하려는 기업이나 이용자를 위한 도구도 공개했다.
페이스북 커넥트에서 공개한 것이 바로 인피니트 오피스(Infinite Office)다. 새로운 개인용 업무 솔루션인 인피니티 오피스는 이용자가 매우 하루 종일 일을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어디든 생산성과 유연성을 높일 수 있는 작업 환경을 의미한다. 인피니트 오피스는 가상과 실제 현실을 아우르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가상 현실은 모니터를 대응하고 실제 현실은 이와 연동하는 키보드 같은 작업 도구를 연결한다. 즉, 가상 공간의 대부분을 모니터로 활용하면서 손 추적으로 다양한 개체를 다루는 작업을 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실제 키보드로 글자 입력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피니트 오피스는 물리 키보드를 연동할 수 있지만, 물리 키보드를 이용하기 위해 VR 헤드셋을 벗을 필요가 없다. 가상 공간을 분할해 하단부에 외부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가상 공간에 표시하도록 해서다. 더구나 실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가상 공간을 자연스럽게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실제 공간과 가상 공간을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인피티니 오피스는 페이스북 내부 직원들은 이미 쓰고 있으며, 초기 기능의 실험 버전을 퀘스트2에 올해 말 배포할 예정이다.
인피니트 오피스는 VR을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던 이들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는 기능일 뿐아니라, VR 헤드셋을 소비의 도구가 아닌 창작과 업무를 위한 올인원 컴퓨팅 도구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중요한 변곡점이다. 디스플레이와 처리 시스템, 저장 장치와 배터리, 네트워크까지 모두 통합된 컴퓨팅 하드웨어인 VR 헤드셋과 무한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가상 현실의 특성을 결합함으로써 전천후 컴퓨팅 도구로써 VR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물론 이 기능을 퀘스트2에 적용한다고 당장 많은 이들이 VR을 컴퓨팅 도구로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하긴 어렵다. 그저 작은 도전에 공감하는 이용자가 등장한다면 인식의 변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은 충분할 것이다. 오큘러스 퀘스트2를 쓰게 될 이용자들은 변화를 위한 첫 기회를 갖게 되는 셈이다.
덧붙임 #
- 스킨 오류로 이 곳에 공개된 모든 글의 작성일이 동일하게 표시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20년 9월 24일에 공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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