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잘못 만난 모토롤라 89507N 블루투스 키보드

얼마 전 외국 쇼핑몰을 둘러 보다가 모토롤라의 블루투스 키보드가 30달러라는 싼 값에 나와 곧바로 주문을 했다. 정식 명칭은 모토롤라 89507N 블루투스 키보드(Motorola 89507N Bluetooth Keyboard with Trackpad)로 안드로이드 전용 키보드였다. 이 키보드를 주문했던 이유는 단순히 블루투스로 연결되는 키보드의 기능만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특하게도 이 키보드는 필요한 때 트랙패드를 꺼내 쓸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마우스를 따로 연결하지 않고 한번의 블루투스 연결 만으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동시에 쓸 수 있던 것이다.(참고로 키보드만 있는 모델은 따로 있다)

사실 다른 블루투스 키보드를 놔두고 이 키보드를 산 것은 엄청난 할인가에 판매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키보드와 트랙패드가 함께 있었던 이유가 컸다. 왜냐하면 안드로이드 장치에 연결가능한 키보드와 마우스를 함께 써야 하는 필요성을 절감하던 차에 이 키보드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연결해야 했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지금 갖고 있는 여러 안드로이드 장치 중 하나를 TV에 연결한 뒤 먼거리에서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는데, 이 장치가 가장 이상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췄던 것이다. 물론 동영상을 보는 용도로는 블루투스 마우스면 충분하지만, 전체 기능을 모두 제어하려면 결국 키보드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단순히 키 입력할 수 있는 키보드가 아니라 터치스크린이 아니어도 안드로이드 장치를 조작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키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안드로이드 전용 키보드는 바로 그 기능을 갖추고 있다. 돌아가기, 홈, 메뉴 호출 버튼이 키보드에 따로 들어있다. 안드로이드 조작에 꼭 필요한 세 가지 버튼이 있기 때문에 조작은 훨씬 쉽다. 페이지 전환이나 아이콘 선택은 방향 버튼과 엔터키 조합으로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음악을 재생하고 멈추는 버튼, 검색 또는 주소창 입력이나 볼륨 조절을 하는 버튼도 이 키보드에 있다. 키로 조작하기 힘든 세세한 옵션은 트랙 패드에 손가락을 올렸을 때 나타나는 커서를 이용해 조작하면 된다.
(트랙패드는 멀티 터치를 지원하지만, 안드로이드가 외부 트랙패드의 멀티 터치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탓에 작동하지 않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 멀티 터치는 모토롤라 스마트폰을 데스크탑 독에 꽂았을 때 실행되는 웹탑에서만 작동한다.)

키보드와 트랙패드를 결합한 이 블루투스 키보드 덕분에 TV에 연결한 안드로이드 장치를 멀리 떨어져 앉아 조작하는 것이 쉬운 일이 되었다. TV에서 안드로이드 장치를 통해 영화를 보거나 유투브 동영상을 감상할 때 이용해 보니 직접 터치 스크린을 조작하는 것보다는 약간 어렵긴 해도 터치를 못하면서 겪는 불편함을 확실히 줄어들었다. 키보드나 터치패드의 조작성과 마감 품질이 좋아 제품에 대한 만족도도 덩달아 높아진 셈이다.

이 키보드는 모토롤라의 액세서리지만 분명 격이 다른 주변기기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 제품을 보는 일은 어려울 것 같다. 단순한 블루투스 키보드나 마우스는 계속 볼 수 있어도 이렇게 일체형으로 된 제품은 보기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지금 단종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지 않은 탓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처음 판매가가 10만 원에 이르는 비싼 제품이었지만, 이렇게 완성도 높은 주변기기를 더 많이 볼 수 없는 것은 역시 안타까운 일이다. 키보드와 트랙패드를 함께 쓰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제품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용자가 적었던 게 가장 성공하지 못한 이유일 게다. 애석하게도 이 제품을 써야 하는 환경이 이제야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 제품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구글에 인수되어 희미해지는 모토롤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