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롤라는 어쩌면 지금의 어린 세대에게 전혀 기억이 없는 브랜드일 수도 있다. 모토롤라가 스마트폰 이전 휴대폰 시대의 애플이었고 삼성이었다고 한들, 추억의 잔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모토롤라는 그저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할까 말까 한 브랜드에 지나지 않을 수 있어서다.
휴대폰 시대의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모토롤라는 그래도 스마트폰 시대에도 살아 남아 브랜드 생명력을 끈질기게 이어왔다. 지난 10여전 사이에 모토롤라 모바일 사업부는 구글에서 레노버로 두 번의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고 ‘모토’라는 스마트폰 시대의 브랜드마저 생존을 위해 버려야 했다. 그래도 플래그십 시장에서 출혈 경쟁 대신 중급형 스마트폰 부문의 고급 브랜드 전략으로 버티면서 역사의 기록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같은 모토롤라의 인내가 없었더라면 그들의 신제품에 찬사를 보낼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그 인내 덕분에 가장 전성기 때의 휴대폰이었던 레이저를 오늘 날의 최신 디스플레이 기술로 버무려 재해석한 폴더블 스마트폰, 모토롤라 레이저 폴더블(Motorola Razr Foldable)을 볼 수 있게 됐으니까.
CES 2020에서 모토롤라 레이저 폴더블을 손에 쥐어 볼 수 있던 곳은 베네시안 호텔에 마련된 레노버 쇼룸 안쪽 깊숙한 곳이었다. 마치 팩트 화장품처럼 덮개를 닫은 채 벽에 착 달라붙어 있던 레이저 폴더블은 처음부터 익숙한 스마트폰의 느낌은 아니었다. 누구 얼굴이 더 큰지 자랑하든 널찍한 화면을 드러내는 다른 스마트폰과 달리 레이저 폴더블은 안쪽의 얼굴을 완전히 감추고 있었다.
얼굴을 열기 전 먼제 손에 쥐어 보았다. 훔쳐갈 마음이 들고도 남는 이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시건 장치를 뒤에 붙인 탓에 뒷면을 잡을 때 그 느낌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대신 시건 장치가 없는 앞쪽 덮개를 뒤집어 잡으니 그제야 감이 온다. 폭은 조금 넓은 편이다. 물론 내 손이 조금 작은 편에 속하는 터라 폭이 넓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긴 화면을 가진 스마트폰에 비하면 접은 상태에서도 손바닥 안에 들어올 만큼 전체 면적이 적고 바지에 넣었을 때도 옷에 부담을 줄 것 같지 않다.
옆을 둘러보니 화면을 완전히 접었음에도 경첩 부분의 틈이 조금도 없다. 갤럭시 폴드처럼 접히는 가운데 부분에 공간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난 해 발표 때 경첩 부분이 정말 신기했는데, 완벽하게 접힌 실물을 보니 더욱 흥미롭다.
접힌 부분에 대한 감탄은 빨리 접고, 서서히 레이저 폴더블의 덮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안쪽에 숨겨진 작은 화면이 늘어나면서 덮개를 완전히 펼치자 굽은 허리를 펴고 긴 화면을 온전히 보여준다. 일반적인 스마트폰 화면을 절반으로 자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길어서 놀랐고, 또한 폭이 좁을 거라는 예상과 달라서 일반 스마트폰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또한 레이저 폴더블의 pOLED로 디스플레이를 완전히 폈을 때 접히는 부분이 울퉁불퉁한 흔적이 거의 없어 매끈해 화면이 불량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틈새 없이 접혀 있던 덮개를 열었을 때 가운데 부분에 접힌 느낌이나 울퉁불퉁한 낌새가 거의 없는 비밀은 디스플레이아 경첩 안쪽의 공간으로 둥글게 말려들어가도록 설계한 덕분이다. pOLED 디스플레이를 종이 접듯 꾹 눌렀다가 펴는 게 아니라 폴더를 닫을 때 둥글게 말리는 부분을 경첩 안쪽의 빈 공간에 밀어 넣고, 폴더를 열면 그 공간에서 나와 화면을 펼치는 방식이어서 가운데 접힌 흔적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 방식을 갤럭시 폴드에 먼저 적용했다면 레이저 폴드를 칭찬할 일은 아마도 없었을 지 모른다.
다만 스타텍이나 레이저처럼 한 손가락으로 덮개를 들어올려보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경첩이 지탱하는 힘이 세다. 엄지 손가락을 쑤셔 넣어서 위로 올리려고 몇번이나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또한 개인적 바람 중 하나는 스타텍을 들어올 릴때 ‘딸각’하던 소리였다. 레이저에서 이 느낌은 사라졌지만, 복잡한 경첩의 레이저 폴더블에서 이를 살렸으면 하는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화면을 펼쳐 옆으로 돌려보니 예전 휴대폰 시절의 레이저만큼 얇다고 말하긴 어렵다. 마치 면도날을 떠올릴 만큼 얇았던 레이저에 비하면 확실히 두껍다. 그래도 요즘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훨씬 얇다. 레이저 폴더블을 접었을 때 아주 두껍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전체적으로 부품을 넓게 분산하는 폴더블 스마트폰의 장점을 잘 살린 측면도 있다.
레이저 폴더블이 플립형 스마트폰이라 덮개를 열었을 때 긴 스마트폰으로 변신한다. 넓은 화면을 가진 태블릿보다 일반적인 스마트폰과 거의 비슷한 느낌이다. 화면은 상단 끝까지 이어져 있으나 상단 카메라와 스피커 부분이 화면의 일부를 가리는 노치 디자인을 적용했다. 돌아가기와 홈, 최근 앱을 여는 액션 버튼이 디스플레이 아래에 표시되고 그 아래에 돌출된 손잡이에 지문 센서를 넣었다.
레이저 폴더블을 완전히 펼친 이후의 사용성은 거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비슷하다. 앱이나 설정, 기능은 모두 터치로 하기 때문에 크게 다른 점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통화를 위해 레이저 폴더블을 귀에 댈 때 느낌이 다르다. 다른 스마트폰보다 더 길다보니 송화부가 입 위치까지 내려오고 훨씬 귀에 댈 때의 느낌도 훨씬 가볍다. 바 형태의 스마트폰에서 사라진 통화의 느낄을 레이저 폴더블은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매우 강하다.
레이저 폴더블을 접었을 때 외부 디스플레이로 간단한 문자를 확인하고 음량이나 무선 랜 같은 몇몇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이 디스플레이도 터치 스크린이지만, 안쪽 터치 스크린에 비하면 상당히 제한적인 기능만 지원한다. 카메라는 안쪽과 바깥쪽에 하나씩 있다. 전반적으로 만듦새에 비하면 프로세서나 배터리, 카메라 등 제원에서 조금 아쉽긴 하다.
그래도 아주 훌륭한 만듦새의 스마트폰이라는 점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 여러 사람을 통해 레이저 폴더블에 대해 기대 이상의 제품이었다는 평가를 듣기는 했어도 나 조차 그 의견에 동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충분히 플립형 폴더블 스마트폰의 레퍼런스가 될만한 자격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토롤라 레이저 폴더블은 한국에서 쓰기 어려운 스마트폰이다. 심카드는 꽂을 수 없고 e심만 지원하는 데 미국에서 버라이존 전용으로 출시될 예정이라서다. 아마도 이 제품을 수입하더라도 e심 개통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버라이존을 통해 이통사 잠금도 풀어야 하는 등 여러 난관을 넘어야 할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토롤라 레이저 폴더블은 소유 욕구를 자극하는 폴더블 폰이다. 모토롤라를 잘 모르던 세대도 이제 기억 속에 새로운 레이저 폴더블 폰 하나 만으로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 덧붙임
스킨 오류로 이 곳에 공개된 모든 글의 작성일이 동일하게 표시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20년 1월 17일에 공개되었습니다.
스펙대비 가격이 어느 정도일지가 관건 이겠죠
스펙만 보며 5-60 만원 대도 비싼 느낌이던데요 현재 출시된 폰들과 비교하면 ㅎㅎ
다만 퍼포먼스보다 디자인이다 하면 레이저 만한건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