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MWC가 열리기에 앞서 차세대 모바일 운영체제(이하 OS)와 관련한 정보가 쏟아져 나올 것마냥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땐 아직 뜨겁게 달궈진 상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차세대 모바일 OS를 가리고 있던 수많은 장막들이 걷히면서 실체를 드러낸 것은 이번 MWC에서 내세울 만한 소득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OS가 단순한 차세대 모바일 OS 시장을 겨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아직 불확실한 제3의 모바일 생태계를 넘본다는 데 있다. 이제 그 탐색전이 막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질서의 갈망
지금 모바일 시장은 크게 iOS 진영과 안드로이드 진영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 있다. 물론 규모 면에서는 안드로이드 진영이 압도적지만, 생태계의 집중도 면에선 iOS 진영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두 생태계의 안정적이라는 의미는 모두에게 좋은 뜻은 아니다. 질서가 변하지 않는 생태계는 먹이 사슬을 이루는 힘의 분배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으며, 이는 다른 말로 시장을 지배하는 권력과 수익 구조가 고착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안정적인 질서를 흐트러뜨려야 하는 쪽과 그것을 막는 쪽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언제나 새 질서의 태동을 막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물론 새 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이 순환적 가치 구조를 갖는 생태계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차피 종전 생태계에서 힘을 얻지 못한 입장이면 다른 생태계를 지원하는 편이 이들에게 생존의 기회가 열린다. 이번 차세대 모바일 OS들이 MWC에 등장한 것 역시 그 기회를 만들려는 여러 시도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차세대 모바일 OS로 불리는 것은 파이어폭스 OS와 타이젠, 그리고 우분투 터치다. 이들 셋은 OS를 주관하는 단체나 지향점이 모두 다르지만, 흥미롭게도 모두 HTML5 기반의 운영체제라는 점이다. 이들 운영체제의 정책에 따라 개방적이기도 하고 라이센스를 통해서 배포되는 형태를 띄지만, HTML5 표준 중심의 모바일 환경에 대비하고 있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플랫폼에 독립적이고, 소비와 개발 도구가 동일하며, 풍부한 개발자 생태계를 확보하고, 다양한 환경에 적응 가능한 HTML5의 특징을 운영체제에 녹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운영체제들이 HTML5에 적임인지는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연합군 전략과 역할론
이번 MWC에서 제3의 모바일 생태계의 대표 주자가 되어 버린 차세대 모바일 OS들은 단순히 운영체제의 특징 만을 내세우지 않고 있다. OS 자체의 특징도 있지만, 그보다 과거의 모바일 생태계가 성공했던 방정식을 기꺼이 도입하고 있다. 단순히 OS만 공개하고 가져다 쓰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이 OS를 기반의 상품을 만들어 팔 동업자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앞서 가장 좋은 역할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의 생태계 구성 과정을 볼 필요가 있다. 알려진대로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개방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배후에서 OHA(Open Handset Alliance)라는 제조사 연합을 통해 하나의 세력을 만들었고, 안드로이드 마켓의 분배 정책을 통해 지역 또는 국가별 이통사를 참여를 유도해 소프트웨어 지원부터 하드웨어 제조와 유통까지 연합 체계를 갖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태계 관점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이통사 등 각 동업자들의 역할을 명확하게 나눠 각자가 같은 부문을 충실하고 신속하게 실행함으로써 생태계의 발전 속도를 가속시켰다는 점이다. 덕분에 생태계의 질서도 빠르게 잡아 나가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구글과 삼성 같은 일부만이 생태계의 절대 권력이 된 것도 무시하긴 힘들다.
파이어폭스 OS나 타이젠도 안드로이드와 같은 협력자들과 함께 한다. 하지만 형태는 조금 다르다. 일단 OHA 같은 제조사 연합은 없다. 단지 운영체제에 협력 의사를 나타낸 하드웨어 업체와 이통사가 뭉치고 역할을 나눠 맡는 것으로 그림을 그렸다. 파이어폭스 OS는 모질라 재단이 운영체제와 개발자 지원을 맡고, ZTE와 알카텔, 소니, LG가, 타이젠은 삼성과 화웨이, 후지쯔가 참여한다.파이어폭스 진영에는 퀄컴 같은 칩셋 제조사도 함께 하며, 텔레포니카, KDDI, KT, 차이나 유니콤 같은 이통사가 파트너로 참여할 예정이다. 타이젠 연합은 삼성,화웨이 이외에 프랑스 오렌지, 일본 NTT 도코모 같은 이통사가 참여하고 강제적이진 않지만 퀄컴과 인텔이 칩셋 공급자로서 역할을 맡는다. 개발자 지원은 겉으로는 리눅스 재단이지만, 사실상 삼성의 MSC가 책임진다. 우분투 터치는 아직 함께 할 장치 제조사와 이통사를 구하지 못했는데, 파이어폭스 OS와 타이젠에 협력하는 모바일 업체를 뺀 나머지 중에서 협력자를 구하는 일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 일단 연합군의 모양새만 보면 파이어폭스 OS가 가장 우세하고 타이젠은 실속, 우분투 진영은 허세에 가깝다.
전세계 모든 이통사와 제조사를 아우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연합군 구축은 진입 시장을 확보하는 데 있어 효과적인 전략인 것은 맞다.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든 기존 시장의 질서를 흔들든 간에 생태계에 있어서 역할 분담은 꼭 필요한 그 생태계의 빠른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역할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된 경우에 한해서 발전 모델이 성립하는 것인데, 언제나 생태계가 시작되는 초반에는 자기 역할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힘의 견제가 일어나므로 이 모바일 OS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그럭저럭 모양새는 갖춰졌지만, 그 기능이 얼마나 제대로 작동할 지 판단은 보류할 수밖에 없다.
각 OS가 노리는 시장
파이어폭스 OS와 우분투 터치가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타이젠은 비공식적인 데뷔였으므로 이번 MWC에서 모두 본 운 좋은 이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이 셋을 모두 봤다면 제품이 지향하는 관점을 이해하는 데 적잖은 힌트를 얻었을 것이다. 단순히 특정 시스템에서 이 운영체제들을 에뮬레이션하는 게 아니라 실제 하드웨어에 얹었을 때 이용자에게 줄 수 있는 가치가 드러나기 마련이어서 출시 제품이든 테스트 시료든 실제 제품과 함께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드웨어가 이 운영체제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느냐는 것은 이용자에게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일단 상용화에 가까운 것은 파이어폭스 OS다. ZTE와 알카텔에서 스마트폰을 공개했는데, 일단 테스트 제품은 아니다. 이 제품의 제원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 3인치대 화면, 320×240의 낮은 해상도, 1GHz의 처리 속도 등 최신 제품의 제원과 조금 동떨어진 모양새다. 만족스러운 제원과 외형은 아니지만, 파이어폭스 OS가 바라는 시장에 접근하기 편하게 구성되어 있다. 파이어폭스 OS는 열악한 통신 환경에서 인터넷 접근성을 높이려는 목적이 강하므로 누구나 쉽게 스마트폰을 쓸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시장은 일반 휴대폰이 차지하고 있는 이머징 마켓을 겨냥하고 있어 범위는 매우 넓다. 더불어 HTML5만 한정하고 있으므로 다른 지원은 최소화한다.
타이젠과 우분투 터치는 입장이 다르다. 타이젠과 우분투의 시료 단말로 제원이 높다. 타이젠은 지난 해 공개한 갤럭시S3의 데모 모델로 알려진 제품을 시료 단말로 쓰고 있으며 우분투 터치는 넥서스4와 넥서스10을 이용했다. 타이젠의 시료 단말 제원을 정확하게 알기는 힘드나 일단 고성능 단말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성능은 HTML5만 위한 것이 아니라 그래픽 품질이 뛰어난 게임을 만들고 실행하기 위한 환경까지 아우른 것이다. 우분투 터치 역시 화려한 움직임, 제스쳐를 볼 때 단순히 HTML5만을 위한 운영체제로 여길 수는 없다. 이러한 모든 것을 볼 때 타이젠이나 우분투 터치는 지금 가장 스마트폰을 적극 소비하는 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저가 제품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1차적인 시장은 파이어폭스가 바라는 저가 시장은 아닌 상태다.
비록 파이어폭스 OS의 하드웨어가 제원이나 하드웨어의 힘이 약하기는 하나 생태계의 기회를 만들 가능성은 높다.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대체할 시장의 범위는 넓기 때문이다. 다만 통신 환경이 잘 갖춰진 시장에서 힘을 발휘할 단말기가 언제쯤 출현할지 모르는 만큼 이 시장에 대한 도전이 통할지 미지수다. 상대적으로 타이젠이나 우분투 터치는 기존 스마트폰 생태계와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이용자들이 스마트폰을 구입하려는 목적에서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서 자칫 차별성을 만들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어 보인다. 특히 이들 단말기에 나타난 UI가 이전에 나왔던 스마트폰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 차별성을 부각시키긴 힘들 수도 있다.
제3의 모바일 생태계와 구글
이처럼 이번 MWC를 통해 제3 모바일 생태계의 막이 올랐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것이 OS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문제인지 재고해 봐야 할 부분은 있다. 모바일 OS를 통한 생태계 구축의 장점은 각 사업자들이 생태계 내의 역할을 나누고 기술 개발, 마케팅, 개발자 지원 같은 수많은 자원을 분담해 투입함으로써 비용을 줄이고 빠르게 분위기를 끌어 올릴 수 있는 동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할론에 대한 인식은 이통 산업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있는 부분이고 모바일 OS가 그들을 뭉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제3 모바일 생태계가 운영체제 차원에서만 이뤄질 것이냐면 현 시점에서는 그것 또한 아니다. 생태계의 마지막 조건은 이용자를 통해 충족해야 하는데, 어느 정도 이용자를 확보한 서비스도 가능성은 열려 있다. 사실 HTML5를 중심으로 보면 페이스북 같은 SNS 기반 플랫폼도 그 대열에 참여할 수 있고, 꼭 HTML5가 아니라면 라인 같은 메시징 기반 서비스들도 제3의 모바일 생태계에 도전할 만하다. 다만 현재의 흐름이 HTML5로 몰리고 있기 때문에 앱 중심의 메시싱 플랫폼보다 기술적으로 좀더 열린 SNS가 더 효과적인 생태계 구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토양 자체가 다른 까닭에 이통사나 제조사라는 협력적 구조를 갖추는 게 쉽지 않고 무엇보다 의지가 있는지 여부가 중요함에도 그 점에선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라 다닌다.
또한 안드로이드를 이끄는 구글의 움직임도 지켜봐야 할 때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로 가장 강력한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했지만, 그렇다고 시대 흐름을 외면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구글은 이미 2009년 구글 I/O에서 차세대 웹 표준으로 HTML5를 적극 추천하고 크롬 OS라는 HTML5 기반 운영체제를 상용 제품으로 배포하고 있다. 크롬 OS는 크롬북이나 크롬박스에서만 볼 수 있는, 지금은 그다지 재미가 없는 운영체제지만, 언제쯤 안드로이드와 통합해 모바일로 넘어올 것인지도 관심 거리다. 모바일에서 크롬 브라우저의 보급에 주력하고 있지만, 구글 임원들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두 OS의 통합을 암시했던 터라 분위기가 좀더 달아오를 때 강력한 무기를 꺼낸 든 구글을 다른 연합이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처럼 HTML5라는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제3의 모바일 OS로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이들 앞에는 이미 강력한 경쟁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아직은 어느 쪽도 확고한 터전을 잡지 못한 상황이므로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뚫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답을 내리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제3의 모바일 생태계까지 기회를 열어줄지, 새로운 시장과 제품에 대한 피로감으로 거부할지 그 마음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번 MWC가 제3의 모바일 OS로 후끈했지만, 그것은 자욱한 안개 속에서 피운 모닥불과 같은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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