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전 제품과 비슷한 성격, 기능의 제품이 나오면 이를 놔두고 전 제품을 단종하는 일은 흔하게 봐왔던 일이다. 이전 제품에서 지적된 단점을 개선하거나 성능을 올리거나 기능을 더해 전 제품과 차별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후속기의 특징 중 하나는 단종되는 전 제품의 자리를 대체함으로써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목적도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후속 시리즈는 어지간하면 적당한 선에서 신제품의 느낌이 들도록 조정하고, 좋은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이전의 제품들은 가격을 내려 서둘러 재고처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어제 국내에 공식 발표한 소니 DSC-RX1R(이하 RX1R)과 DSC-RX100 II(이하 RX100 II)는 이전처럼 새로운 제품으로 기존 제품을 대체하던 공식을 버렸다. 종전 RX1과 RX100은 하이엔드 컴팩트 디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제품이면서 어제 발표한 제품은 이 두 제품의 연장선에 있는 시리즈물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전작들을 배제하는 후속기종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어제 내놓은 제품들은 그 이전의 제품과 비교했을 때 RX100 II과 RX1R의 입장이 조금 다르긴 하다. RX1R는 대체제의 제품은 아닌 반면, RX100 II는 업그레이드된 후속 제품으로 볼 수 있어서다. 각각 다른 제품과 대체제로 비쳐지지만, 소니는 기존의 제품과 신제품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다른 속내가 있다.
일단 기존 제품과 어제 공개한 제품의 차이를 둘러볼 필요는 있다. RX1과 RX1R은 방향성이 다른 제품인 것은 맞다. RX1과 RX1R은 똑같이 생겼고 둘다 풀프레임 이미지 센서와 F2 칼자이즈 조나 T 코팅 35mm 렌즈를 붙인 하이엔드 카메라지만, 종전에 나온 RX1의 이미지 센서가 2430만 화소이고 나중에 나온 RX1R이 2020만 화소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하지만 RX1R의 이미지 화소가 줄었어도 센서 앞에 있는 광학식 로우패스(OLPF) 필터를 제거한 터라 해상력이 더 살아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두 제품에서 찍는 사진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고, 이는 어떤 사진을 더 선호하느냐에 따라 다른 제품으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RX100 II는 RX100의 진화형이다. RX100에 비하면 훨씬 많은 기능이 들었다. 회전형 화면으로 바꾼 터라 화면쪽만 아주 조금 두꺼워진 것과 전자식 뷰파인더나 스테레오 마이크, 플래시 같은 다양한 액세서리를 꽂을 수 있는 핫슈가 포함되는 등 외형적인 변화도 많아졌다. 더구나 엑스모어가 아닌 엑스모어 R 센서로 바꿔 고감도의 노이즈 억제력을 강화한 데다, NFC와 무선 랜으로 스마트폰을 연결해 원격 촬영과 사진을 공유하는 원터치 쉐어링 기능에 컨트롤링을 돌릴 때마다 정해진 화각으로 조정해 주는 스텝줌, 그리고 영화 느낌이 나는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1080/24P 모드까지 빠짐없이 챙겨넣었다.
소니는 기존 제품인 RX100과 RX1은 물론 이처럼 다른 방향성, 다른 기능을 가진 RX100 II와 RX1R까지 모두 유지한다. RX100은 최초 공개한 그 가격대로 판매하며 RX100 II는 전작보다 고작 5만 원 더 비싸다. RX1과 RX1R는 똑같은 가격으로 판매한다. 종전 제품의 값을 내리지 않고 유지하면서도 같은 값에 신제품을 팔거나 더 비싼 상위 모델을 내놓는 건은 의외의 상황이다.
이러한 시도는 나름 자신감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이미 소니는 RX100과 RX1을 통해 현재 하이엔드 디카 시장을 주도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시장 점유율 목표를 50% 늘려 잡을 정도로 이 시장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다른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 소니 RX100과 RX1에 대항할 만한 마땅한 경쟁 제품이 없는 상황에 대한 소니의 시장 굳히기라는 것이다. 소니 코리아는 기존 모델의 유지를 두고 RX 시리즈의 제품 라인업을 늘리는 것이라고 하나 사실 그것은 핑계일 뿐, 고가 컴팩트 카메라 시장의 수익성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기 위해 배짱을 부리는 것으로 보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RX 시리즈에 버금가는 경쟁 하이엔드 컴팩트 디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니만큼의 대중화를 일궈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장의 쏠림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소니가 이 같은 라인업을 구성할 수 있도록 방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만하다. 이 같은 소니의 배짱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RX1R과 RX100 II라는 제품만 보면 당분간 유지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좀처럼 후속이 나오지 않는 것에 안도하며 지난 1년여간 저와 참 절친이었던 이녀석.. 바로 RX100 입니다. 행운처럼 국내 1호 유저가 된 특별한 인연이라서인지 이녀석과는 별다른 다툼도 없이 아주 편안한 동거를 해왔죠. 일상적으로 찍는 사진들의 80%가 이녀석 차지가 될 정도로 콤팩트함이 주는 밸류는 컸죠. 단순히 작기만 하면 뭐 대안이 많겠지만 DSLR에 준하는 품질을 무엇보다 중요한게 ‘쉽게’ 찍도록 해준다는 점이 이 RX100의 가장 큰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