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영화가 끝나면 많은 이들이 곧바로 극장을 떠나지 않는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엔딩 크레딧 전후로 상영되는 짤막한 쿠키 영상을 보기 위해서다. 영화에 담지 못한 이후의 이야기나 또는 연결되는 후속작의 힌트를 보여주는 등 영화의 아쉬움을 달래준 덕분에 쿠키 영상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긴 시간을 기다린다.
그런데 쿠키 영상처럼 설렘을 갖고 기다리던 제품 발표회가 있었다. 애플 CEO였던 고 스티브 잡스가 애플 신제품 발표회에서 모든 발표를 끝낸 직후 “원 모어 씽”을 말하던 바로 그 때다. 그가 생각지 않았던 제품을 꺼내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애플 이벤트는 언제나 스티브 잡스의 원 모어 씽이 나와야 진짜 시작이었고 또한 끝이었다.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의 원 모어 씽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지만, 비슷한 시도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원 모어 씽이 얼마 전에 일어났다.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 책임자인 파노스 파나이가 10월 2일 서피스 이벤트에서 안드로이드 장치인 서피스 듀오를 꺼냈을 때다. 사실 서피스 네오의 소개를 마치고 행사가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무대 뒤로 들어가려던 그가 다시 발표회장으로 나와 서피스 듀오를 꺼낸 것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꺼내 든 서피스 듀오가 남긴 인상은 그만큼 더 강렬했다.
서피스 듀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드는 두 개 화면을 탑재한 안드로이드 장치다. 윈도(Windows)라는 운영체제를 소유한 마이크로소프트가 다른 운영체제의 장치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자기 운영체제 대신 다른 운영체제를 선택할 수 있던 이유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와 서피스 책임자 파노스 파나이는 와이어드의 인터뷰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계층은 운영체제가 아닌 앱 모델과 경험”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는 여러 서비스와 장치를 연결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발자 플랫폼인 ‘마이크로소프트 그래프'(Microsoft Graph)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고 이러한 개발자 플랫폼의 서비스와 앱은 클라우드를 통해 연결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서피스 듀오를 클라우드와 연결되는 모바일 장치로 기획했다. 모바일 앱은 안드로이드를 통해 경험할 수 있으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서비스와 앱은 클라우드와 연동되어 경험할 수 있는 모바일 장치로 설계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서피스 듀오를 절대로 ‘전화’로 말하지 않는다. 서피스 듀오를 공개한 파노스 파나이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의 마이크로소프트 홍보 담당자가 발송한 보도자료에서 서피스 듀오에 대해 안드로이드 장치라고 표현할 뿐, ‘스마트폰’이라는 범주에서 말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전화’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단지 스마트폰이라는 범주에 제한되는 것을 피하고 그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을 때 새로운 식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뿐이다. 스마트폰에서 패블릿이나 폴더블로, 태블릿에서 투인원이라는 새로운 식별자가 나온 것처럼 듀얼 스크린 장치도 새로운 식별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서피스 책임자 파노스 파나이가 처음부터 단일 화면을 포기하고 두 화면의 모바일 장치를 기획한 것도 생산성에 더 나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앞으로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이크로소프트는 처음부터 두 개 화면의 생산성과 새로운 제품의 범주를 고민하고 있는 반면, 이미 두 개 화면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있다. V50, V50s와 함께 쓰는 듀얼 스크린을 내놓고 있는 LG다. LG가 V50과 함께 첫 듀얼 스크린 주변 장치를 공개했을 때 폴더블 스마트폰에 가려져 비판도 많았다. 제품에 대한 충분한 서사를 만들지 못했던 탓이다. 하지만 오히려 두 화면을 활용하는 쓰임새나 내구성 등 여러 면에서 듀얼 스크린에 대한 좋은 반응을 얻은 때문에 지난 9월 초 V50s와 함께 개선된 듀얼 스크린을 선보였고 곧 출시를 앞두고 있다.(참고로 LG보다 앞서 ZTE와 에이수스가 듀얼 스크린 스마트폰이나 듀얼 스크린 어댑터를 먼저 출시했다. LG만큼 안착시키는 결과는 얻지 못했을 뿐, LG가 최초는 아니다.)
LG가 V50s와 함께 내놓은 신형 듀얼 스크린은 하드웨어 측면에서 여러 개선이 이뤄진 것은 맞다. 화면의 크기와 해상도, 연결 방식, 듀얼 스크린의 화면 각도 조절, 시계나 알림을 표시하는 외부 디스플레이 등 이전 듀얼 스크린에서 불편했던 여러 문제를 개선하고 편의성도 높였다.
그러나 개선된 듀얼 스크린에도 불구하고 LG 듀얼 스크린의 미래는 불안하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어쩌면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V50이나 V50s을 결합하는 착탈식은 본체와 두 번째 화면 사이에 생기는 제품의 무게 균형을 유지할 수 없고, 경첩 구조에 따른 화면간 거리로 인한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 한계가 있다. 두 화면이 완전히 분리된 개념으로만 접근한 터라 쓸 수 있는 이용 환경도 제한된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앱을 쓰는 데 효율적일 수 있지만, 두 화면을 합쳐 넓은 화면으로 써야 할 때나 여러 앱을 동시에 실행한 뒤 분할 면을 조절하고 위치를 이동하는 등 복잡한 사용 환경에 대한 해결책을 덜 담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서피스 듀오는 LG가 앞으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이제 치열해지게 될 듀얼 스크린 폼팩터 시장에서 LG는 어떤 제품을 만들고 전략을 가져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는 지금, 서피스 듀오는 좋은 참고 자료라서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의 단일 화면 환경에서 확장하는 환경이 아니라 두 개의 화면을 합쳤을 때 판형과 하나의 화면을 쓸 때 판형 및 접이식 작동 구조, 기능성을 다시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더 많은 화면 또는 더 넓은 화면의 폼팩터를 위한 미디어 환경을 바꿀 변수인 5G에서 LG 듀얼 스크린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는 것처럼 너무 늦지 않게 제대로 된 일체형 듀얼 스크린 스마트폰과 그에 따른 브랜드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처럼 분리형 제품으로 재미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갈지 미지수인 상황이라면 일체형 듀얼 스크린 폼팩터 스마트폰에 대한 도전은 불가피한 LG가 아닌가. 비록 마이크로소프트처럼 클라우드에 최적화된 안드로이드 장치라는 서사를 따라하지 않더라도, 5G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일체형 듀얼 스크린 스마트폰에 대한 결단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는 신호를 서피스 듀오에서 읽어 내지 못하면 듀얼 스크린으로 간신히 찾은 영광의 빛을 또 잃어 버릴 수도 있다. 새로운 범주를 만들겠다는 마이크로소프트만큼 야심은 가져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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