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판매 방식은 혁명이었다. 그러나 종교는 아니다”
델의 성공 신화를 이끈 마이클 델이 복귀하면서 내던진 이 한 마디로 그동안 고수하던 직접 판매 방식에서 벗어날 것임을 시사했다. 그리고 며칠 전 델은 미국에 있는 3000개의 월마트에 델 PC 매장을 연다고 발표했다. 시장과 보조를 맞추지 않아 왔던 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예측했었으므로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다.
2005년 이전까지 델은 세계 PC 시장의 20%를 차지했고 미국에서만 34%로 굳건히 1위를 지켰다. 직판을 통한 마진율도 좋아 보고서가 나오기 이전인 2006년 3월 전까지만 해도 30달러 안팎의 높은 주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부터 델의 매출이 예상치를 밑돈다는 전망과 함께 60%에 이르던 직판 마진이 PC 판매 감소로 크게 줄면서 지금 세계 시장 점유율은 15.2%로 떨어졌고, HP는 19.1%까지 증가했다. 델의 주가는 20달러 선까지 곤두박질쳤다. 다행히 최근 소매 판매 병행을 발표하고 델 2.0과 같은 기업 체질 개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노력에 힘입어 25달러 선까지 회복한 상황이다.
델의 직판 시스템은 분명 과거 비싼 PC 시장에서 효율적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많은 양의 부품을 사들여 구입가를 낮췄을 뿐만 아니라 여러 유통 채널을 거치면서 붙는 유통 마진을 걷어내 업계 최저가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 소비자들이나 기업들이 PC를 더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경쟁사의 PC 가격을 낮추는 데도 일조했다.
하지만 PC 부품 제조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다른 업체의 저가 PC와 델 PC의 가격의 차가 이전보다 좁혀진데다, HP와 같은 강력한 경쟁 업체가 다양한 유통 채널을 통해 델에 버금가는 대규모 물량 공세로 델을 따라잡자 지난 수년 동안 지배해 온 ‘직판 체제만이 PC 사업의 유일한 수익 모델’이라는 주장도 힘을 잃게 되었다. 특히 PC 판매량을 초월할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하던 노트북 시장에서 가격적 차이는 더욱 줄어들면서, 직판이 델의 꿀단지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델 직판 체제가 갖는 어려움
시장의 신뢰는 돈 만으로 되지 않는다
문제는 델이 직판 체제를 위해 두 가지를 버렸다는 점이다. 첫 째는 기존 유통 채널 구조에 대한 신뢰를 포기했고, 둘 째는 고가 제품의 이미지를 버렸다는 것이다. 델의 직판 체제는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고 만드는 즉시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되는 시스템이다. 중간 유통을 없앤 것은 금전적으로는 델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지만, 총판을 통해 소매점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생략은 유통 시장에 있어서 보조를 맞춰 줄 파트너를 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유통 시장과 보조를 맞추며 쌓아올린 신뢰가 없다는 뜻이다. 다른 PC 업체들은 수많은 마케팅과 홍보를 통해 전체 시장을 활성화하고, 중간 유통의 파트너들로부터 시장의 문제점과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피드백 받으며 상호협력을 유지해 왔다. 반면 델은 소비자에게 직접 접촉함으로써 유통 시장에서의 신뢰를 쌓아올리지 못했다.
물론 델은 소비자에게 가격적인 신뢰를 주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와 유통 구조는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신뢰의 대상과 범위가 다르다. 개별적인 소비자들과의 신뢰를 무기로 삼아 오프라인 채널들을 끌어모을 수 없다는 말이다. 델이 중간 구조에 있는 채널을 끌어모으기 위한 정책을 펴려면 그 이전에 소비자에게 심어놓은 가격적 신뢰를 어느 정도는 깨야만 한다. 유통 채널을 거침으로써 상승하는 비용만큼 델이 직판 체제의 가격을 맞추지 않으면 오히려 유통 채널의 경쟁력이 직판보다 떨어져 하나마나한 상황이 생기는 탓이다. 여기에 직판 때보다 더많은 마케팅 비용이 증가하는 만큼 매출은 늘지언정 직판때에 거뒀던 순익은 더이상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델은 기존 PC 유통 채널에 대한 접근을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대신 대형 할인 마트로 향했다. 불행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월마트에는 이미 HP와 에이서 같은 강력한 경쟁자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장사할 터를 잡긴 했지만 기존의 강력한 경쟁자들은 오프라인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델보다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이들은 할인마트가 전체 오프라인 유통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반면 지금 델에게는 전부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다른 할인 매장으로 확대하려 할 때 월마트가 그 기준이 될 것임 감안하면 월마트를 위한 무한정 혜택을 주기도 어렵다. 이래저래 꼬인 실타래를 풀기가 쉽지 않은 듯 하다.
그나마 월마트 점포만 미 전역에 3천개라는 것은 델이 미국에서 비빌 언덕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할인마트 상황을 보면 암울하다. 우리나라 할인마트의 수는 다 더해도 월마트의 1/10 수준 밖에 되지 않는 331개 뿐인데다 이마트를 비롯한 상위 4개사의 점포수는 161개 뿐이다(2007년 2월 기준, http://www.xchart.net/P000000388). 문제는 이들 매장에서 얻는 매출 비율이 높지 않다는 데 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에 진출한 HP, 삼성 등 PC 업체들의 할인마트 매출은 전체 매출의 10~15%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적은 비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비율이라고 할 수 없는 낮은 수준이다. 때문에 델 코리아가 미국처럼 우리나라 할인 마트를 거쳐 유통한다면 예상하는 만큼의 매출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 할인마트에서 삼성과 LG 같은 강력한 토종 브랜드와 맞붙어야 하는데, 종전 델 브랜드가 온라인에 비해 오프라인의 인지도가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출 상승 효과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아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할인마트 정책이 아니라 다른 시도가 필요하다.
‘델=싸구려 PC 업체?’
그들은 소비자에게 무엇을 심어 놓았는지 모른다
델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델이 직판을 통해 소비자에게 심어 놓은 인식에 대한 것이다. 간단히 “당신은 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십중팔구 PC를 싸게 파는 업체 정도일 것이다.(그렇다고 HP에 대해 물었을 때 ‘프린터 업체’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걸 위안으로 삼지 마라.)
PC를 싸게 파는 것 이상의 인식은 델을 아는 소비자가 갖고 있지 않다. 이는 델이 직판을 통해 값을 계속 낮춤으로써 고가의 이미지가 아닌 저가 이미지를 심었다는 데 있다. 저가라는 사실은 값이 싸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한편으로 속된 말로 ‘싸구려’의 인식이기도 하다. 이미 싸구려 PC 제조 업체로 이미지가 고착된 상황에서는 제품의 질에 대해 ‘그저그럴 것’ 정도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물론 델 PC는 부품대비 가격면에서는 뛰어난 편이다)
이러한 인식은 수많은 PC와 노트북들을 갖고 오프라인에서 경쟁을 해야 할 델에게는 정말 불리하다. 물건을 직접 보고 살 수 있는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싼 가격만큼 제품의 질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델이 직판에 오프라인 판매를 병행하는 데에는 자신들의 값싼 PC를 좀더 많이 팔아보자는 심산이기에, ‘아무 문제 없이 쓸 수 있는 PC입니다’라는 진솔한 마케팅보다 옆집에 있는 HP나 에이서보다 싸고 강력한 PC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할 것이 뻔하다.
그런 식의 마케팅은 온라인에 퍼진 델의 싸구려 이미지를 오프라인으로 확장할 뿐, 정작 소비자가 원하는 질 좋은 제품을 파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되지는 못한다. 아무리 좋은 부품을 쓰더라도 소비자가 값이 싸다고 느끼게 되면 보이지 않는 필터가 작용한다. 부품은 싼 걸 쓰지는 않았는지, 디자인은 나쁘지 않은 지 등 소비자가 좀더 꼼꼼하게 제품을 따져 보도록 만든다. 특히 오프라인에서 제품을 늘여놓았을 때에는 디자인과 재질, 무게, 모양 등에서 외형적인 면에서 좀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델은 이제까지 소비자의 가치를 높이는 부분에 대해서 주력해오지 않았다. 특히 노트북이나 PC에서는 거의 디자인 이슈를 발생시키지 않는 업체다. 모니터나 PDA에서는 조금 있지만, 주요 시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중요하지는 않다. 값이 아닌 제품의 퀄리티에서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전시된 델 제품을 보고 그만한 가치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온라인에서 팔던 제품 그대로 전시하는 것이라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어려울 뿐더러 싸구려 이미지만 더 강하게 남길 수도 있다.
델이 값싼 이미지가 아니라 값 대비 성능에서, 값 대비 디자인에서 좋은 제품을 팔아왔다면 이러한 인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델은 지난 수년 동안 그 가치를 부여하는 데 실패했다. 명품 브랜드가 만들면 아무리 하찮아도 명품으로 보는 세태가 좀 우습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소비자를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조금 비싸기는 해도 성능 좋고 디자인이 뛰어난 노트북 업체가 그 품질을 인정 받은 뒤 좀더 싼 제품을 내놓는 것과 초저가를 위해서 뭔가를 포기한 제품을 내놓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결국 싸구려는 싸구려로만 보이는 것이 지금의 델 제품이다. 인스피론과 디멘션 같은 업체의 인수를 통해 얻으려 했던 고급 이미지도 사실 델이 갖는 이미지에 묻혀 전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델에게는 또다른 딜레마일지 모른다.
델은 지금 하다 안되면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 무조건 해야만 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느냐에 대한 고민은 안보인다. 그렇기에 1위를 빼앗은 HP와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래에서는 북미 시장의 다크호스인 에이서가 델을 끌어내리고 2위로 올라서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의 성장에서 문제의 본질과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델이 1위를 탈환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글쎄…”
아무래도… 비즈니스 모델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는 조직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같다. 자기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의 과거와 현재를 잘 트랙하고 미래고..
저는 이미 델과 HP는 싸구려기업으로 생각하고있습니다.
특히나 델은요
실제로 미국에서는 델컴퓨터를 많이들 쓴다지만..
전부터 배터리 난리에다가…
영..신뢰를 주지못하는 기업이죠…
얼리어답터님 말씀처럼 델, 사고 많이 쳤지요. 그만큼 델은 사실 제품 신뢰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배터리 사고뿐 아니라, 디자인이나 재질도 많이 떨어집니다. 솔직히 값 이외의 외적 요소에서는 추천 대상은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HP가 조금 나은 이유는 값이 싸도 디자인과 기술적 이슈를 충분히 만들어낼 뿐 아니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제품 영역이 넓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아직 배터리 사고도 없고요. ^^
칫솔님의 해당 포스트가 5/28일 버즈블로그 메인 탑 헤드라인으로 링크되었습니다.
^^;
이틀전 PC World 에 올라온 글이다. 바로 Dell 이 지금까지 판매하던 직접 판매 방식을 바꾸고 Dell 이 아닌 다른 유통 채널을 고민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아직까지 Dell 이 새로운 유통 방식..
지난 24일 발표된 내용입니다. 직판(직접판매)방식을 시장에 선보였던 글로벌 컴퓨터 제조사인 델(Dell)이 월마트에게 자사가 만들 컴퓨터를 공급하기로 합의 했다고 전합니다. 15여년 이라는 ..
비슷한 의견입니다. 과연 Retail 을 갖는다는게 결국 Dell에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동안 델이 갖는 컴퓨터 업계에서의 의미, 그리고 월마트라는 잔인한 유통과의 결합, 그 뒤에 숨어있는 쟁쟁한 경쟁..뭐 이런식의 구도속에서 그동안 직접판매라는 그들만의 보호막에서 자란 델이 과연 제대로 비지니스를 이룰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되기도 합니다. 트랙백 걸고 갑니다.
전 사실 많이 걱정됩니다. 위에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 델은 북미 시장 이외의 지역에서 거의 성장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델의 입지는 점점 약화되는 반면, 다른 기업들은 이 시장을 발판으로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델은 지금 북미 지역의 썩은 동앗줄을 잡은 게 아닐까 합니다.
그나저나 월마트가 얼마나 잔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델도 부품 업체들에게는 꽤 잔인했던 걸로 압니다. 잔인한 두 업체가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월마트보단, 개인적으로 타겟에 가면 좋았을 텐데,
컴퓨터는 델, 서비스는 Hell 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다는 구나..
오.. 멋진 표현.. Dell? Hell! 이렇게 하면 되나? -.ㅡㅋ
타켓도 한 방법이 될 듯합니다. 그러나 미국내에서 타켓의 유통이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디지털제품에 있어서 타켓의 위치는 좀..
TARGET괜찮을듯하네요..
유통만이 잔인한지는 모르겠지만..월마트보다는 나을듯…
타겟은 월마트의 절반 정도의 매장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또한 디지털 장치도 취급은 하는데, 아무래도 이쪽이 주력으로 보이지는 않는군요. 아무래도 마트 숫자과 그 성격이 타겟보다는 월마트를 선택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만.. 혹 미국에 계신분(inthemars님 포함)께서 자세히 비교해주시면 좋을 듯 하네요.
델…정말 싸구려라는 느낌이 강한 업체지요..
브랜드를 잘 못 키웠다는 생각이 드네요…
브랜드를 잘못 인지시켰다는 사실을 델만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통혁신이라는 한가지만 가지고는 당연히 한계에 부딪치게 되있죠. 어떤 혁신도 따라할수 있으니
제조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외주화하고, 개발까지 ODM 으로 외주화해버렸던 모토롤라 휴대폰이
절고 있는 모습과 함께 교훈을 얻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함
네.. 저도 동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