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컴팩트 디카, 소니 사이버샷 RX100

개인적으로 컴팩트 디카에 대해선 몇 가지 고정 관념이 있습니다. 일단 작고 가벼워야 하고, 쉽게 찍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작고 가볍다는 건 어떤 상태로든 쉽게 들고 다니기 편해야 한다는 것이고, 쉽게 찍는다는 건 촬영 환경에 알아서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 조건만 만족하는 수준의 컴팩트 디카라면 저라면 안 삽니다. 그냥 스마트폰을 들고다니는 게 더 낫죠.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도 워낙 좋아진 데다 네트워크를 통한 사진의 활용 범위가 넓어서 컴팩트 디카 시장에 적잖이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때문에 컴팩트 디카는 스마트폰이 갖지 못한 것을 넣어야 그 경쟁력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경쟁력이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역시 사진에 관한 것이 가장 큰 부분일 겁니다. DSLR과 미러리스가 그랬듯, 아직은 스마트폰이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지난 6월 말 소니가 발표한 사이버샷 DSC-RX100(이하 RX100)은 기본에만 충실해도 컴팩트 디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 합니다. 물론 그 다름을 내세우느라 스마트폰 한 대 값을 매긴 사실을 깜빡해선 안 되지만.

사실 제품 발표회에서 RX100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만 해도 작은 크기의 컴팩트 디카가 가진 느낌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많이 단순해진 외형이고 단순미도 있지만, 그것은 역시 컴팩트 디카답다는 정도였지 그 이상은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제원에 대한 기대감도 어느 정도 작용한 건 부정할 수는 없었는데,

1. 일반적인 컴팩트 카메라보다 훨씬 큰 1인치 엑스모어 이미지 센서(2020만 화소),
2. 난반사가 적다는 칼자이스 바리오 조나 T* 렌즈,
3. 비욘즈 프로세서를 썼다고 하니 은근히 그 결과가 궁금할 수밖에요.

실제 행사 중간 RX100으로 찍었던 사진들은 생각 이상으로 더 잘 나오더군요. 특히 이 카메라 발표한 곳이 남산 케이블카 전망대였고 해가 땅밑으로 가라앉은 시간이라 자연스럽게 야경 촬영 성능을 시험해 볼 수 있었는데, 아주 만족스럽게 찍힌 듯 합니다. 컬러 노이즈를 없앨 때 뭉개지는 전혀 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ISO를 높이더라도 그 정도가 아주 심하지 않고 디테일이 살아 있어 빛이 적은 야경이나 실내 촬영에서 제법 쓸만할 듯 싶더군요. 고감도 디테일을 유지하고 노이즈 억제력이 좋은 건 확실한 장점 중 하나입니다. 비록 ‘하이엔드’라는 접두사를 붙이더라도 컴팩트 디카가 이만한 실력을 뽐내는 건 좀 드문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사진을 찍으면서 솔직히 마음에 든 것은 i 모드나 i 모드+ 에만 놓고 별다른 설정 없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카메라를 잘 조작할 줄 몰라도 알아서 피사체의 상황에 맞춰 설정을 끝내고 멋진 결과를 남기는 능력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죠. 물론 수동, 조리개, 셔터 속도를 조절해 찍을 수도 있지만, 이런 복잡한 조작을 잊고 장면 선택 같은 조작법 정도만 알아도 되는 편의성 대비 결과를 함께 놓고 보면 지금까지 컴팩트 디카 답지 않다고 밖에 달리 할말이 없을 듯 합니다.

RX100은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가볍게 들고 다니며, 광각에서 망원(28~100mm, 디지털 줌을 쓰면 200mm)까지 고품질 스냅샷을 찍는 카메라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만합니다. 초당 10연사 이미지를 저장할 때의 랙이나 렌즈 앞쪽 다이얼의 일관성 없는 UI 같은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냥 사진 잘 찍는 컴팩트 디카라는 조건에서 보면 그다지 트집 잡을 만한 게 보이지 않는군요.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일반적인 컴팩트 디카보다 훨씬 비쌉니다. 미러리스 카메라나 입문용 DSLR과 맞먹거나 더 비쌀 수도 있습니다. 성능이 아니라 가격을 놓고 고민하게 만들 것 같군요. 가격만 아니면 이 카메라에 대한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사기유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