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눈길을 끄는 노트북은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부러운 시선으로 보게 되는 그런 노트북은 어느 한 곳 흠잡을 곳도 없고 참 깔끔하다. 독특한 소재에 은은한 때깔로 입혀 놓으니 한번 정도는 힐끗 보게쯤 만든 노트북들. 정갈한 만듦새에 크기야 어찌됐든 왠지 두께도 얇은 것처럼 보여서 들고 다니기 좋고 그래서 들고 다니고 싶은 그런 노트북은 눈에 쉽게 들어온다.
하지만 그런 얇고 가벼우면서 세련미 넘치는 노트북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로 보이는 다소 투박하고 시커먼, 평범한 모양새의 노트북들을 볼 때 더 반갑다. 멋진 모양새를 위해 단자의 수를 줄이는 희생보다 오히려 모든 것을 품는 것을 선택한 노트북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두께나 무게, 성능을 양보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돋보이는 노트북 대신 이런 노트북을 선택하는 이유일 것이다.
‘씽크패드'(Thinkpad)는 그 이유를 보여주는 노트북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물론 씽크패드의 주인이 IBM에서 레노버로 바뀐 뒤에 그 느낌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노트북 구매 목록에 한번쯤 올려본 기억이 있는 이들에겐 여전히 잊지 못하는 이름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최신 기술을 먼저 담는 속도가 조금 느려지기는 했지만, 씽크패드 X1을 봤을 때 적어도 전통을 쉽게 버리지 않은 채 더 채우려는 욕심은 지금도 변함 없는 듯하다.
씽크패드의 전통에는 ‘빨콩이’라 부르는 포인트 스틱이 자리 잡고 있다. 빨콩이는 오래 된 조작 수단일 뿐이지만, 씽크패드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쉽게 지울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은 것이다. 마우스나 터치패드 없이 노트북을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해준 고마움 때문이다. 하지만 포인트 스틱을 대체할 새로운 트랙 패드와 터치 스크린의 시대에서 빨콩이는 가끔 쓰는 보조 수단일 뿐이다. 그럼에도 빨콩이는 오늘날의 씽크패드에 여전히 남아 있다. 트랙 패드와 터치 스크린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전통을 더한다는 상징적인 존재로 말이다.
빨콩이가 싱크패드의 기능적 전통을 대표하는 상징일 지도 모르지만, 사실 씽크패드를 대표하는 색깔은 검정 하나 뿐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팔기 위해서 좀더 눈에 자극적인 색깔을 쓸 수도 있을 텐데, 어차피 모든 이들이 쓸 노트북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색의 변화를 주지 않는다. 언제나 업무 현장에서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아야 하기에 지나치게 멋진 만듦새와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다 절제된 형태와 색으로 그 태도를 대신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씽크패드 X1 같은 노트북은 점잖은 모습을 되도록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단단한 탄소 섬유로 둘러 흠집과 충격에 강하고 무게는 덤으로 잡는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점잖은 모습과 다르게 씽크패드의 성능이나 품질까지 얌전하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씽크패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업무 현장에서 쓰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는 성능과 기능, 만듦새를 추구한다. 맵시를 위해서 단자를 생략하기보다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되도록 많이 담는다. D-Sub처럼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일부 단자는 어쩔 수 없어도 되도록 젠더를 챙겨다니지 않도록 원래의 단자들은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누르기 편한 키보드, 부드럽게 쓸리는 넓은 트랙 패드도 씽크패드의 생산성을 높이는 보이지 않는 특징들이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씽크노트 성능은 업무용으로 쓰기에 별다른 지장을 주진 않는다. 제품마다 성능 격차는 있긴 해도 모든 제품이 고성능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라서다. X1처럼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하는 제품처럼 고성능 프로세서와 SSD 같은 저장 장치를 담고 있을 땐 성능의 맛이 왜 다른지 느껴질 때도 있지만, 씽크패드를 업무용으로 선택하는 이유는 성능과 함께 안정성이다. 여기에 데이터를 보호하고 외부 침입을 막는 다양한 보안은 덤이 아니라 필수다. 물론 오늘날 씽크패드에 못지 않은 안정성을 유지하는 노트북이 없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씽크패드의 안정성에 던지는 질문들도 적지 않지만, 브랜드에 녹인 지향점 만큼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이처럼 과거와 비교해 씽크패드는 크게 변하지 않는 듯하다. 여전히 그들 만의 전통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같은 고집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최신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진 않는다. 시대가 씽크패드의 변화를 요구해도 이들은 가치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부분에 대한 타협을 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업무용으로 절제미를 가진 노트북이 필요해 씽크패드를 찾는 고정된 이용자 층을 잡으려는 계산이 이미 서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 많은 이용자가 쓰는 노트북이 되기 위해 변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길을 택한 때문에 씽크패드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올초 1억대 판매를 돌파하며 결국 IBM에서 씽크패드를 넘겨 받은 레노버가 오늘날 10배 이상의 성장(2005년 30억 달러에서 2015년 390억 달러)하는 밑거름으로 여전히 통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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