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어제 오전 양재동 엘타워 5층 메리골드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아톰 Z3000 시리즈를 공식 발표했지만, 이미 외국에서 관련 제품이 출시된 데다 국내에서 벤치마크 행사를 통해 아톰 Z3000에 대한 성능이나 특징을 여러 차례 전한 터라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기술적 내용 측면에서 새로운 것을 찾기는 힘들었다. 단지 이 간담회는 국내 시장에서 이제 아톰 Z3000이 탑재된 제품들을 볼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행사장의 분위기는 이전 인텔의 제품 발표회와 다른 조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인텔 코리아의 기자 간담회는 단순히 칩셋이나 기술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판매 가능한 제품을 함께 공개하는 게 특징이다. 물론 이날도 아톰 Z3000을 쓴 몇 개의 제품이 함께 전시되었다. 하지만 기존과 한 가지 다른 점은 국내 제조사가 관련 제품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HP, 에이수스, 에이서, 레노버 등 모두 외산 제품만이 한쪽에 전시되어 있을 뿐, 삼성과 LG의 제품은 찾아볼 수 없던 것이다.
이것은 보기 드문 현상 중 하나다. 국내 업체의 제품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현지에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할 능력을 가진 업체의 참여는 제품의 분위기를 다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터라 국내 제조사 제품은 의외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아톰 Z3000이 출시된지 벌써 두 달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국내 기자 간담회를 개최한 것도 늦은 데다 우리나라 제조사의 제품마저 없는 상황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점이 우려스럽다.
실제 국내 제조사의 제품 준비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 인텔 코리아 지용호 마케팅 이사는 “현재 국내 제조사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으며, LG가 머지 않아 제품을 내놓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지만, 출시 일정이나 제원에 대해선 제조사에 문의해 보라고 하는 부분에선 여전히 국내 제조사의 참여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임을 슬쩍 내비치기도 했다.
한편으로 국내 제조사의 참여가 미친한 데에 내년도 국내 태블릿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으로 보는 견해도 작용하고 있다. 인텔 코리아는 2014년도 국내 태블릿 시장 규모를 고작 200만 대도 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윈도와 안드로이드를 포함한 소규모의 태블릿 시장에 맞는 아톰 제품을 적극적으로 밀어 줄 국내 제조사가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는 셈이다.
아톰은 개당 단가가 매우 싼 SoC로 그만큼 제품 단가를 낮춰야 하지만, 값싼 제품을 소규모 시장에 내놓는 제조사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품질이 좋으면서 값싼 제품을 요구하는 소비 성향을 가진 소규모 시장에 맞는 아톰 제품을 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이날 인텔 코리아 이희성 대표는 “아톰 SoC는 100달러 미만 저가 태블릿의 성장세가 빠른 시장에 먼저 진입해 태블릿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고 하이엔드 프리미엄 시장에 대한 노력도 계속 기울 것”이라는 인텔 태블릿의 방향성을 언급했다. 이는 시장 성장세가 낙관적이지 않은 국내 시장에 당장 집중할 이유가 없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한 데다 제조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도 납득이 갈만한 부분이다.
물론 인텔 코리아 아톰 Z3000의 성능이 다른 ARM 기반 태블릿과 경쟁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미 아톰 Z3000 시리즈는 ARM에 못지 않은 처리 성능을 지녔고 윈도 계열에선 더 뛰어난 호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제품을 통해서 능력을 확인한 상황이다. 배터리 절약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 정도는 너끈히 쓸 정도는 되므로 칩 자체가 걸림돌로 보이지 않으며, 인텔 코리아 측에선 사실 의외로 성능이 잘 나와서 걱정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성능만 따지면 태블릿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은 있지만, 시장 여건이 쉽게 성숙되지 않을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인텔 코리아가 꼽은 또 다른 문제는 소형 태블릿이 패블릿에 잠식 당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5인치 이상의 패블릿이 7~8인치의 수요를 억제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하면서 8인치 이하 태블릿까지 제품군을 확대하려는 아톰 Z3000 시리즈에겐 너무 큰 장벽이라고 보고 있다. 때문에 인텔 코리아는 성장폭이 낮은 아톰 Z3000 시리즈에 대해 집중하기보다 차기 스마트폰 칩셋을 통해 국내 패블릿 시장에 들어가는 것에 더 욕심을 내고 있는 터라 2014년 2분기에 출시할 차기 22nm 쿼드코어 메리필드를 이용한 제품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서다.
이처럼 아톰 Z3000을 대하는 인텔 코리아의 속내는 좀 복잡한 상황이다. 모바일 시장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고 있으나 모바일 시장을 위해 아톰 Z3000 시리즈가 힘을 발휘할 수도 없는 여건이라서다. 더구나 국내 태블릿 시장 상황만 보면 크게 집중할 수도 없으면서 거하게 생일상까지 받은 아톰 Z3000을 천덕꾸러기 마냥 취급할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복잡한 마음일 게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제품을 볼 수 없어 가장 답답한 사람은 다양성의 실종을 걱정하는 소비자라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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