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예약판매가 일상화되가고 있다. 예약 판매는 업체가 곧 출시할 제품을 미리 사겠다는 소비자의 의사 표시이자 구매 계약이다. 소비자는 아직 나오지 않은 제품 정보를 매체나 전시회, 온갖 소문을 통해 얻은 뒤 예약 구매를 한다. 물론 남들보다 먼저 써보겠다는 욕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대개는 지름신의 신내림을 받아 예약 구매를 한 이들도 적잖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두푼 하는 제품이 아닌데도 예약 판매는 언제나 매진이라는 거다. 그것도 수백 대가 아니라 수천대 규모다. 오늘도 메일함에 접수된 예약 구매 잘 됐다라는 보도 자료를 보고 나서 “쩝~”하고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물론 난 이걸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내 주변 기자들도 대부분은 나와 비슷하다. 기자가 직접 눈으로 본 게 아니니까. 그래서 난 이런 보도자료는 되도록 조용히 무시해 주시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예약 판매 자체가 구매자의 대기 심리를 이용한 상술이기는 해도 한번이라면 그럴만 하다. 처음 나오는 제품들은 대부분 물량이 달리기 마련이라 꼭 사려했던 구매자들에게 예약구매는 제 때에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 좋게 말하면 혜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예약 구매가 관행으로 굳어지다 못해 이제는 두 번 세 번으로 늘려 나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예약 구매가 업체에 주는 혜택은 소비자가 얻는 혜택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재고 관리의 문제를 줄인다.
예약 판매를 통해 매진이 되었다면 생산된 제품을 일시에 소진시킬 수 있다. 고로 업체는 팔리지 않는 제품에 대한 재고 걱정을 덜 수 있어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2. 단타에 매출을 늘린다.
예약 판매는 대개 짧은 기간에 이뤄진다. 대부분 정해진 물량을 예약할 때까지 접수를 받지만, 그 기간을 줄임으로써 단기간 매출을 올릴 수 있다.
3. 복잡한 유통 경로 없앤다.
예약 판매는 대부분 업체 홈페이지나 홈쇼핑(온/오프라인)을 통해서 이뤄진다. 총판 체제를 거치지 않으므로 그만큼의 수익성을 업체가 가져갈 수 있다.
4. 없어서 못 파는 물건처럼 홍보된다.
예약 구매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나면 이 제품은 정말 잘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물며 매체들에게 돌려야 할 리뷰 제품도 없다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이럴 때 그 업체가 ‘급’ 싫어진다.)
네 가지 이유를 들었지만, 여기에는 업체들의 말못할 사연도 있다. 일단 예약 판매를 하는 업체들 대부분이 중소 업체라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정말로 재고나 복잡한 유통, 매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영세해서다. 이들에게 예약 구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고민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탄탄한 기반을 쌓은 알만한 업체가 예약 구매를 하는 건 한마디로 입맛 들였다는 얘기다. 그것도 두 번 세 번씩 말이다. 업체 역시 이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이렇게 해야 네 번째 이유처럼 좋은 제품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좀 솔직해 지면 안될까? 앞의 세 가지 이유 모두를 원했다고 말이다.
예약 구매를 통한 특전은 내 관심 대상은 아니다. 그 제품을 사려는 사람의 관심 대상일 뿐이고, 업체의 미끼일 뿐이다. 다만 정말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앞으로 예약 판매만 한다고 당당하게 나서라. 그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유통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아니 확신이 선다면.
Be First to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