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제법 오랫동안 자브라를 알고 지냈던 무리 안에 나도 끼어 있다고 여기지만, 왠지 모르게 자브라를 선뜻 소개하기 힘든 이유가 있었다. 자브라가 블루투스 액세서리 시장에서 많은 공을 들인 것에 비해 제품이 아주 독특하거나 신선한 면은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블루투스의 대중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운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자브라라는 브랜드도 덩달아 어려운 이미지였다. 어딘가 모르게 정체되어 있는 이미지와 블루투스 액세서리로만 대표성을 가진 상표가 자브라의 특징이면서도 품격을 높이지 못하고 발목을 잡는 이유였던 셈이다.
그랬던 자브라가 지난 해부터 꾸준하게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굳은 살처럼 박혀 버린 블루투스의 대표주자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이 아니다. 그 위에 좀더 품격을 갖춘 새로운 꼬리표를 붙이려는 것이다. 자브라는 새로운 꼬리표의 힌트를 음악 시장에서 찾았고 지난 해 그 첫 시도의 제품인 솔메이트라는 공유형 블루투스 스피커를 발표했다. 스마트폰 또는 모바일 장치에 있는 음악을 여러 사람이 함께 들을 수 있도록 설계한 휴대 스피커였지만, 제품 자체에 대한 관심도는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자브라 기자 간담회에서 공개한 두 개의 헤드폰과 한 개의 인이어 이어폰은 솔메이트보다 더 관심을 끌만하다. 레보와 복스라는 이름을 부여한 헤드폰과 이어폰은 솔메이트보다 분명 더 대중적인 관심을 끌만하다. 특히 어느 기자의 지적대로 비록 레보가 비츠 솔로와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스타일이나 성능, 내구성, 가격적 측면에서 균형을 잡은 것이 차이점이라는 자브라의 주장도 일리 있어 보인다.
제품별 이야기거리는 복스보다는 레보, 레보보다 레보 와이어리스가 많다. 레보와 레보 와이어리스는 선의 유무를 제외하면 외형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서로 엇갈리게 비틀어도 부러지지 않고 강철 힌지로 튼튼하게 만들었다. 또한 돌비 디지털 플러스 기술을 반영해 레보 사운드 앱으로 음악을 들을 때 좀더 공간감을 느끼도록 했고 자성 케이블을 채택해 보관할 때 케이블이 엉키지 않도록 했다. 또한 다른 이어폰을 꽂을 수 있는 헤드폰에 넣어 음악을 함께 들을 수도 있다. 블루투스를 이용하는 레보 와이어리스 NFC를 이용한 페어링을 할 수 있고 터치 패널의 제스처를 이용해 음량을 조절하거나 곡 탐색을 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NFC만으로 자동으로 전원을 켜는 기능은 없고, APT-X 코덱을 넣지 않은 점도 아쉬운 점이다.
그럼에도 레보와 복스는 자브라가 대중적인 이미지를 갖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블루투스라면 막연하게만 여긴 것과 다르게 이 제품들은 일상에서도 쉽게 접하면서 가까이 두고 써야 하는 제품이라서다. 문제는 그 시장의 경쟁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음악 장비 시장을 뚫고 들어가느냐가 자브라의 지상과제다.
아마도 자브라는 가격대비 품질 경쟁력 측면에서 다른 제품과 경쟁할 만한 제품으로 부각시킬 것 같다. 오늘 간담회에 발표자로 나선 소리 전문 시험 기관 골든이어스의 김은동 대표는 “일반 소음이 있는 야외 환경에 알맞게 저음부가 강화되어 있고 전체적인 소리의 질이 뱅앤울룹슨의 P50과 거의 비슷한 성향을 띄지만, 값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레보와 복스가 짧고 굵게 말할 수 있는 특징을 가졌다는 것을 데이터를 통해 보여준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가격대비 품질 경쟁력은 있다는 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허나 기능성, 내구성, 소리 품질 등은 여러 경로로 검증했음에도 지금 걱정할 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다. 비록 뱅앤울룹슨과 같은 스웨덴 출신이고 150년 가까이 통신을 전문으로 다루며 4천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GN 네트워크라는 모회사가 있지만, 헤드폰과 이어폰 분야의 이름 값은 낯설다. 물론 자브라가 이 시장의 초짜는 아니다. 다만 이 제품을 선택해도 좋을 지 소비자의 의구심을 깨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남아 있는 것이다. 비록 ‘b’자가 새겨져 있지 않아도 더 좋은 소리를 가진 헤드폰과 이어폰이라는 믿음을 주는 이용자에게 주는 것이 자브라가 새로운 꼬리표를 붙일 수 있는 열쇠는 아닐까?
덧붙임 #
피터 뤼스홀트 한센 주한 스웨덴 대사가 이 행사에 참석해 자브라, 스웨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기업과 산업에 관해 품위 있는 기념사와 답변을 했다. 오늘 발표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
비츠 솔로하고 닮은 듯 하면서 다른 듯. 소리가 궁금해요~
소리는 개인적인 평가 영역이라 뭐라 드릴 말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