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에 첫 발을 디뎠던 동굴을 이제야 빠져 나왔다. 두 달 동안 뒤도 안 돌아보고 걷고 또 걸어서 나왔으니 제법 긴 동굴이다 싶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무튼 동굴에서 무사히 나왔고, 다친 데도 없다. 이제 동굴 속 경험담을 들려 줄 차례다.
돌이켜 보니 제법 흥미로운 동굴 구경을 한 듯 싶다. 불빛 하나 없는, 끝을 가늠할 수 없었던 동굴일 줄 알았는데, 제법 근사한 벽화가 있었다. 그 벽화를 보기만 한 게 아니라, 두드려도 보고 만지기도 했다. 동굴 속에서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울림도 들었다. 그런 실험들을 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롭더라. 벽화가 지워지거나 섬세하지 못한 터치에서는 실망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감정을 번갈아 느끼면서 두 달을 걸어나왔다. 지금은 그 벽화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다고 한다. 그들도 같은 경험을 할 것이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두 달을 걸어 긴 동굴을 빠져 나오는 동안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씁쓸한 감정을 갖게 만들었던 벽화는 ‘애니콜 햅틱'(이하 햅틱폰)이다. 일찌감치 햅틱폰이라는 벽화에 관해 틈틈히 글을 쓰기는 했다. 단지 분석을 하고 느낌을 담아 글로 옮기는 게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많은 그림이 그려진 이유만이 아니라, 낯선 풍경을 담고 있어서다. 터치와 진동이라는 주제를 버무려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려웠다. 사실 지금도 어렵지만, 그래도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지 않았나 싶다. 무엇이 달랐는지, 이번 벽화에 남는 아쉬움은 무엇인지, 그래서 다음 햅틱폰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들을 적는다.
허나 업그레이드를 한 뒤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진동의 강도가 약하다. 짧고 길게, 또는 연속적으로 변하는 진동 패턴은 많지만, 묵직하거나 가벼운 느낌을 구분할 수 없다. 그러니 그 진동이 알려주는 정보를 손만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진동에 따라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고, 무슨 기능을 쓰고 있으며, 누구에게 전화나 문자가 온 것인지 인지하기 어렵다. 촉감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햅틱’의 의미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한다.
햅틱폰을 손에 쥐고 다루는 손맛이 좋아도 눈으로 보는 것과 전혀 별개의 것이라 말하긴 어렵다. 햅틱폰을 쓰는 이들은 화면을 누르고 손가락을 위로 올리거나 내릴 때의 반응을 손 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경험한다. 3개의 메인 화면 디자인도 고를 수 있고, 색다른 버튼음을 들을 수도 있다. 큼지막한 화면에 애니메이션되면서 나타나는 아이콘이 볼만하다. 메뉴의 기능을 눌러 하위 메뉴로 들어갈 때도 애니메이션이 된다. 종전 키패드 휴대폰에서 상하좌우 버튼을 누르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다. 눈도 귀도 즐겁고 그럴 싸하게 보인다.
그런데 아래쪽 전화 걸기 메뉴를 누를 때는 애니메이션이 없다. 그게 불편을 주는 것은 아닌데, 조금 어색하다. 갑자기 밧줄 끊어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하물며 통신사 메뉴를 누를 때도 아래에서 위로 메뉴가 올라오는 데 말이다. 메뉴 전환을 빨리 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생략한 것일까 라는 물음도 던져 보았다. 허나 다이얼 메뉴를 눌렀을 때 곧바로 메뉴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걸 감안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은 듯 했다. 오히려 다이얼이나 전화번호부, 메시지 등도 화면 전체가 반응하도록 만드는 게 쓰는 이에게는 덜 어색했으리라 여겨진다.
햅틱이 종전 휴대폰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터치와 진동도 있지만, 메뉴 구조의 단순화에 있다. 메인 화면에 배치된 휴대폰의 주요 기능을 터치하면 다른 설정없이 곧바로 그 재주를 쓰도록 했던 것이다. 물론 게임이나 설정 등은 좀더 메뉴를 선택해야 하지만, 그래도 2~3단계까지 들어가진 않는다. 복잡한 게 싫은 이들에게는 꽤 괜찮은 구조다.
다만 ‘애니콜 기능’ 안에 있는 너무 많은 부가 기능들을 쓸어 담았다. 사실 주로 쓰는 기능은 아니어도 감초 같은 기능이 이 안에 다 있다. 파일 뷰어, 번역기, 계산기, 단위환산, 바이오 리듬, 구연 동화, 지하철 노선도 등 말이다. 지하철 노선도는 위젯으로도 고를 수 있지만 다른 재주들은 아니다. 이 재주들을 위젯으로 선택할 수 있거나, 메인 화면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밀어냈을 때 애니콜 기능을 바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햅틱폰에서 하는 인터넷을 쓸모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지만, 실제로 쓰는 이의 입장에서는 의외로 쓸모 많았던 기능이다.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말이 많지만, 햅틱폰의 인터넷 브라우징은 의외로 쓸만했다. 적어도 전화 다음으로 햅틱폰에서 많이 쓰는 재주라고 말할 정도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는 정말 딱 좋다. 최근 업그레이드 된 웹뷰어 기능도 나쁘진 않다. 가로로 보거나 세로로 볼 수도 있고, 일부 문장이나 사진을 저장해 두는 등 뷰어로서 기능은 나쁘지 않다. 종전에는 2개의 탭으로만 보여주던 것을 3개의 창을 띄워서 보여주게 한 것도 달라진 점이다.
다만 이통사가 공급하는 모바일 웹 뷰어가 인터넷을 편하게 즐기도록 배려하지 않은 게 불만이다. LCD 해상도를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화면의 확대와 축소, 페이지의 앞뒤 이동처럼 인터넷을 할 때 많이 다루는 습관을 고려하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볼륨 버튼으로 화면을 확대하고 축소하지만, 이 버튼은 오히려 앞뒤 페이지로 이동하는 데 쓰는 것이 더 알맞다. 카메라 버튼과 통신사 접속 버튼으로 확대와 축소를 하는 게 더 바람직한데도 모바일 웹 뷰어에서 이 버튼을 쓰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진동도 울리다 말다 하는 탓에 무척 헷갈린다.
업그레이드된 웹뷰어에 다음 블로거뉴스와 관련한 아주 불편한 버그가 하나 있다. 블로거뉴스에 있는 글을 새창에서 볼 때 글이 다 뜨지 않는다. 블로거뉴스의 툴바가 원인인지도 모르지만, 출퇴근을 할 때 블로거뉴스에 올라온 블로거의 글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올블로그나 다른 메타 블로그는 문제가 없었다.
햅틱폰의 바탕 화면을 꾸밀 수 있는 위젯의 개념은 나쁘지 않다. 필요한 기능을 바로 선택해서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좋은 의도니까. 허나 위젯 중 상당수가 휴대폰의 사용성과 거리가 먼 이통사의 상품들로 가득차 있다. 이용자가 쓰기 편한 기능을 선택적으로 배치할 수 있도록 하려는 처음의 의도는 사라진 것인지 모를 일이다. 차라리 ‘애니콜 기능’을 위젯으로 바꾸어 바탕 화면에 배치하는 게 더 좋아 보인다.
아, 위젯의 크기도 일정하게 만드는 게 어떨까? 아이콘의 크기와 색깔이 제각각이라 정렬된 형태로 배치하기가 어렵고 예쁘게 느껴지지 않아서다. 더불어 위젯을 더하고 빼는 모드가 아닌 상태에서 바탕화면에 있는 위젯이 옮겨 다니지 않는 편이 나을 듯 싶다. 위젯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보니 터치도 불안할 뿐만 아니라 모양새 있게 배치를 해놓더라도 위젯이 이리저리 옮겨지는 문제가 있어서다.
햅틱폰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가속도 센서의 활용도가 너무 떨어진다는 점이다. 몇몇 주사위 놀이나 윷놀이 같은 게임이나 사진 탐색에서 가속 센서를 이용했고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사실이다. 분명 주사위 놀이만 보여줘도 좋아했던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다음 햅틱폰을 흔들고 돌리면서 보여줄 게 없다는 게 문제다. 좀더 다양한 게임이나 기능이 필요했다.
사실 가속 센서와 UI의 접목이 없던 게 안타깝다. 이를 테면 햅틱폰을 옆으로 눕혔을 때 가속 센서가 이를 감지해 아이콘이 옆으로 돌아가고 가로에 맞는 인터페이스가 뜨는 것을 상상했지만, 그런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UX 팀을 이끌고 있는 장동훈 상무께서 말한 대로 휴대폰은 세워서 쓰는 장치이므로 옆으로 돌아가는 게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UX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햅틱콘은 햅틱폰만의 독특한 재주다. 전화를 건 사람에 따라서 진동 패턴을 달리하고 이에 맞는 소리를 들려주고 아이콘을 보여주는 기능이다. 때문에 햅틱폰을 잘 쓰면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오늘 상태가 어떤지 미리 알 수도 있다. 제대로 쓰기만 한다면 전화를 건 사람의 기분에 맞춰 좀더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재주를 쓰는 데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등록된 사람마다 일일이 햅틱콘을 지정해 줘야만 한다. 물론 햅틱콘 지정을 안해도 햅틱폰을 쓰는 데는 별 지장이 없지만, 많은 노력이 들어간 재미를 주는 기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햅틱콘 지정 작업은 사실 PC 매니저에서 하는 게 쉽고 빠르지만, 지금 PC 매니저는 햅틱폰의 기능을 제대로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보니 이러한 설정을 하지 못한다. 지금 새로운 PC 매니저가 개발되고 있다는 데 햅틱폰의 기능을 쓸 수 있도록 잘 설계되었기를 바란다.
애니콜 휴대폰을 사서 애니콜 랜드에 그 휴대폰을 등록하면 3천 포인트를 준다. 이 포인트로 벨소리, 통화 연결음, 배경 화면, 게임 등을 살 수 있다. 햅틱폰을 등록하고 3천 포인트를 받았다. 벨소리나 통화 연결음을 바꿀 수 있었지만, 배경 화면은 바꿀 수가 없더라. 아직 W420, W4200에 맞는 배경 화면이 없는 모양이다. 게임도 마찬가지. 혹시 바탕 화면은 네이트에서만 사야하는 건 별로 달갑지는 않아서… W420이나 W4200에 맞는 컨텐츠도 풍부하게 갖춰 주기를.
덧붙임 #
이통사만의 터치 UI. 처음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
많이 힘들었던것 같아요
그래도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댓글달았다 아흐@
네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다른 경험도 잘할 수 있지 않겠어요? ^^
(어딜가시길래 지하철에서 문자를… ^^)
연대생과 블로그관련 인터뷰 좀 하고 이대 앞에서 멋쟁이 블로거 한 분 만나서 밥 먹고 놀다가 좀 전에 강동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내일 아침엔 부산으로 쓩~ 아그들 보러 내려 가야죠^^
다음 주에 연락드리면 그 때 뵐 수 있겠네요. ^^
음..수고하셨어요..
정말 읽으면서 다시한번 우리나라에서는 ‘완벽한’ 핸드폰은 나오기 힘들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네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완벽한 휴대폰 또는 제품은 나올 수 없어요. 다만 이러한 시도와 개선을 하다보면 좀더 쓰기 좋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휴대폰이나 제품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
터치폰만 세대째… 프라다폰, 뷰티폰, 햅틱폰까지 어느새 내 손을 거쳐간 혹은 거치고 있는 터치폰만 3대 째다. 나를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경제수준이 엄친아 수준에 육박하거나 구린 냄새 ..
요즘은 삼성보단 LG가 마음에 드는 폰이 많이 나오는 것같은데….아직은 삼성한테 지는 것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네. 요즘 LG 휴대폰을 보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표현이 맞지 않나 싶어요. 도무지 감잡기 힘든 이름의 휴대폰들이 나와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