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도서관을 가기 위해 그리 길지 않은 로스차일드 거리에서 내렸을 때 우연찮게도 작은 이베이 이스라엘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여기에 이베이 지사가 있나?’라는 궁금증이 살짝 스쳐 지났을 뿐 큰 의미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건너편 푸른 색 로스차일드 건물 주위로 페이스북과 야후, AOL이 있고, 이 주변의 대부분의 건물에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모여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적 IT 기업들이 이곳에 둥지를 튼 이유를 알게되니 이베이 간판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은 이베이나 페이스북, 야후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젊은 스타트업이 이곳에 모여 서로를 돕는 커다란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마치 전략적 요충지처럼 변모하기 시작했고, 이들 기업들도 그 변화에 동참하면서 더 큰 생태계를 만든 것일 뿐이다. 그러한 생태계의 변화가 텔아비브 스타트업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은 아주 작은 건물에도 층층마다 스타트업이 자리를 잡고 있는 로스차일드 거리에서 만난 세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전한다.
사운드 베터(Sound Better, https://soundbetter.com )
사운드 베터는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수많은 음악가들이 아예 녹음을 하지 못하거나 사운드 품질을 높이지 못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전세계에 있는 수많은 리코딩, 믹싱, 마스터링 스튜디오나 엔지니어를 음악가와 연결해주는 인맥 서비스인 것. 사운드 베터에 음악가들이 녹음에 관한 제안을 올리면 장비와 기술을 가진 이들이 참여를 정하고 음악을 완성하도록 돕는다. 쉬고 있는 스튜디오와 엔지니어들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사운드 베터를 이끄는 이는 샤샤 질라드. 사운드 베터는 그의 경험에 기반한 스타트업이다. 그는 원래 음악 프로듀서였다. 뉴욕과 쿠퍼티노에서 활동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도 했다. 샤샤는 미국에서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스라엘로 돌아와 사운드 베터의 CEO의 명함에 주소를 바꿔 썼다. 희한한 일이다. 대부분은 미국으로 나가라 이야기를 하는 데, 그는 4개월 전 텔아비브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3개월 전부터 텔아비브 도서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을 하고도 텔아비브로 돌아온 것은 그곳이 창업보다 유지가 더 어려워서다. 그는 비싼 물가가 발목을 잡고 실패율도 더 높다고 말한다. 1년 전 프로젝트 오피스를 열어 좋은 평가를 받아 1백만 달러를 받았지만,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작은 도시인 텔아비브는 돈보다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와 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당장 돈보다 그에게 필요한 생존 환경을 따져서 내린 결정이 의외로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AOL로부터 투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등 그의 표정, 말투에서 자신감이 깃든 이유를 알만하다.
피자테크(Pzartech, http://www.pzartech.com )
피자테크는 텔아비브 도서관에서 만난 마지막 팀이면서 로스차일드 거리에서 만난 첫번째 스타트업이다. 두 창업자 제레미(Jeremie Brabet-Adonajlo)와 요하임(Joachim Hagege)은 도서관부터 조금 떨어진 로스차일드 거리의 한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은 텔아이브 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해 길러진 스타트업이었고 두달 전 도서관을 떠났다.
피자테크는 단순하게 보면 3D프린팅 출력 중개 서비스다. 이들은 3D 프린팅을 위한 설계도를 공유하는 사업 모델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이들은 3D 프린터가 없는 이들이 원하는 부품이나 제품을 다른 이가 갖고 있는 3D 프린터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을 꾸민다. 이용자가 원하는 3D 프린팅 상품을 인쇄해서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편의점이나 이통사, 또는 개인이 갖고 있는 3D 프린터에서 출력해 곧바로 찾아가는 서비스인 것이다. 급히 써야 할 부품, 지금 출력해야 할 제품이 필요한 이들을 노리지만, 3D 프린팅을 위한 설계도면을 만들 줄 안다면 이곳에 올려고 판매할 수도 있다. 케이스 제조 업체인 Donde와 제휴를 맺고 이용자가 손쉽게 자기가 원하는 문양을 넣은 케이스를 주문해 가까운 곳에서 곧바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단, 이들이 직접 3D 프린터를 판매하거나 체인점을 운영하진 않는다.
두 달 전 도서관을 떠나 이곳으로 오면서 이들도 여러 도전을 거쳤다. 인텔 같은 기업체들의 투자 공모전에 나서기도 했으나 이스라엘과 프랑스에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건 EU로부터 12만 유로를 받은 이후다. 이들의 사업이 제휴 비즈니스인 까닭에 전세계 3D 프린터 동향에 매우 밝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편의점 체인에 3D프린터를 설치하는 며칠 전 소식도 이미 확인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모델이라고 메일로 알려오기도 했다. 이들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지 못할 이유도 아직은 찾을 수 없는 듯하다.
마일스톤팟(Milestonepod, http://www.milestonepod.com )
로스차일드 거리의 스타트업이 입주한 건물 대부분은 정말 평범하다. 심지어 간판조차 걸지 않는 곳도 부지기수다. 그러니 4층 높이 건물 뒤쪽 계단을 따라 옥상에 만든 마일스톤팟의 사무실을 봤을 때도 그려러니 할 수밖에. 그래도 아이디어를 갖고 이제 도전을 시작한 다른 스타트업에 비하면 제품 개발과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마일스톤팟은 엄청난(?) 규모의 스타트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일스톤팟은 달리는 이를 위한 웨어러블 장치다. 그리 복잡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쉽게 쓸 수 있다. 운동화를 조이는 끈에 걸어주면 그걸로 끝. 전원을 켠 뒤 달리면 500원짜리 동전 모양의 작은 장치가 알아서 데이터를 모은다. 이들은 이를 육체적 쿠키(Physical Cookie)라 부른다. 그런데 이 녀석이 모으는 데이터는 여느 것과 다르다. 스마트폰에서 마일스톤팟 앱을 열었을 때 어디를 몇 걸음 뛰었는지보다 이 사람이 제대로 뛰었는지를 판가름한다. 마일스톤팟을 붙이고 뛸 때 그 기울기를 인식해 뒤꿈치를 제대로 쓰는지, 앞발로만 뛰는지 알아챈다. 발을 제대로 쓰는지 아닌지에 따라 이 사람의 운동에 따른 신체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포인트. 한마디로 제대로된 달리기를 하지 않을 때 무릎이나 몸의 다른 부위에 무리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 이용자에게 보여준다.
하루 종일 걷고 뛰는 것을 기록하는 웨어러블 장치는 많지만, 마일스톤팟은 오로지 달리기에만 초점을 맞춘다. 마일스톤팟의 3명의 창업자 중 마라토너가 있어서다. 그만큼 이 웨어러블의 필요성에 대해선 그가 가장 많이 알고 있다. 단순한 만보기로 경쟁하는 것도 의미 없고, 데이터에서 어떤 의미를 끄집어내야 하지 잘 알고 있다. 그 의미를 찾는 일은 다른 두 창업자가 맡고 있다. 클라우드 플랫폼 중 하나인 아카마이와 키넥트를 만들었던 프라임 센스에서 출신의 선수들이 각각 CEO와 CTO로 역할을 나누고 있다. 경험과 지식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웨어러블 스타트업인 것. 인디고고의 크라우드 펀딩도 시도했고, 미국 신발 유통점과 건강식품 GNC와 제휴도 이미 끝냈다. 제품은 5월에 일반에 판매될 예정. 당분간 거리를 달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일스톤팟의 근황을 궁금해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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