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나는 킨들 시리즈와 파이어폰, 파이어TV처럼 우리나라에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아마존 제품을 의외로 많이 다루는 이용자 중 한명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아마존은 멀리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제품을 접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보니 그냥 호기심이 생기면 곧잘 사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지난 해 말 실험체를 하나 더 들여왔다. 손바닥만한 파이어 TV를 손가락 두개 크기로 줄인 파이어TV 스틱이다.
파이어TV 스틱과 비교할 만한 제품이라면 크롬캐스트나 티빙 스틱 같은 동글형 수신 장치지만, 이 두 제품과 비교는 어울리지 않는다. 방식과 목적이 완전히 달라서다. 오히려 파이어TV 스틱은 앞서 출시한 파이어TV와 비교해야 옳다. 파이어TV 스틱이 크기만 작아졌을 뿐 파이어TV에서 하던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서다. 주문형 비디오와 음악, 각종 앱을 하나의 리모컨으로 손쉽게 다룰 수 있도록 구성했던 파이어TV와 완전 판박이라서다.
파이어TV는 아마존 컨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셋톱 장치다. 크기는 매우 작지만 아마존의 컨텐츠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메뉴 구조를 갖고 있다. 왼쪽에는 영상이나 음악, 게임, 앱, 사진 등을 나누는 큰 분류가 있고 화면의 대부분은 그 분류에 맞는 컨텐츠를 표시한다. 파이어TV 스틱이 비록 크기는 다르지만 그래픽 인터페이스 구조나 리모컨의 구성은 파이어TV와 완전히 똑같다. 메뉴에서 다른 차이점을 발견하기도 어렵고, 불러올 수 있는 컨텐츠의 차별성도 알아채기 어렵다. 다른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파이어TV가 비싸서 구입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안으로서 모자른 점은 않다.
그렇다고 모든 파이어TV와 전혀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처리 장치의 차이로 인한 차이가 그 중 하나다. 파이어TV 스틱이 (비록 잘 알려진 프로세서는 아니지만) 듀얼 코어 AP와 1GB램 등 다른 동글형 장치와 비교해 넉넉한 처리 능력을 지니고 있는 듯해도 막상 메뉴를 움직일 때나 화면 전환의 움직임을 보면 확실히 둔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더불어 파이어TV의 성능으로 따라 붙기 어려운 일부 응용 프로그램도 설치할 수 없다. 물론 미디어 앱은 대부분 설치할 수 있지만, 더 높은 성능이 필요한 일부 게임은 설치가 불가능하다.
또 다른 차이는 음성 입출력 기능이다. 파이어TV는 리모컨에 음성 입력을 할 수 있는 마이크가 있는 반면 파이어TV 스틱 리모컨에는 제외되어 있다. 화면에 뜬 컨텐츠를 방향버튼으로 선택하고 실행할 땐 모르지만, 컨텐츠를 찾을 때 파이어TV 스틱과 파이어TV는 확실히 다르다. 단지 말을 하는 것과 자판을 하나씩 찾아 누르는 불편이 이만저만하지 않다. 파이어TV용 리모컨을 따로 사서 연결하면 파이어TV 스틱도 음성 검색을 할 수 있지만, 리모컨을 따로 사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일이 될 일이다.
파이어TV 스틱이 갖고 있는 사소한 불편을 참을 수만 있다면 충분한 가치는 있다. 일단 이 제품은 39달러다. 초기 출시 당시 아마존 프라임 고객에게 20달러 할인 판매를 했는데, 아마 그 가격에 구매할 가치를 의심했다면 그것만으로 손해를 본 셈이다. 파이어TV 스틱은 TV에 곧바로 꽂는 데다 USB 전원으로 작동하고 있어 TV를 켜고 끌 때 함께 작동시킬 수 있다. 부팅 시간이 좀 걸리긴 하나 켜고 끄는 작업을 따로 할 편의성과 맞바꿔야 할 부분이다. 미라캐스트도 있어 스마트폰의 화면을 TV에 표시하는 장치로도 무난하게 쓸 수 있다.
단지 아마존 프라임 회원이라도 우리나라에서 접속하면 아마존 영상 컨텐츠를 볼 수 없으므로 파이어TV 스틱을 제대로 활용하긴 힘든 점은 분명하다. 지금 나와 있는 거의 모든 VPN 앱도 작동하지 않는다. 아마존 서비스를 위해서 파이어TV 스틱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쓰기 힘들다. 하지만 영상을 제외한 음악이나 게임, 앱 같은 아마존 컨텐츠를 즐기고 싶거나 플렉스 환경을 구성하는데 적절한 TV 어댑터를 찾고 있다면 파이어TV 스틱이 그 중 가장 확실한 답안 중 하나다. 영상의 지역 제한을 풀 방법만 있다면 파이어TV 스틱은 TV에서 아마존을 즐기는 가장 적절한 도구가 될테지만, 사실 아마존을 벗어나더라도 쓸모는 충분해 보이는 어댑터다. 크롬캐스트나 티빙과 전혀 다른 차원의 가치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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