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의 문을 여는 기어VR과 지낸 한 달

기어VR 리뷰, Gear VR Review

한달 전부터 머리에 썼던 기어VR 이노베이터 에디션은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쓸만하다 말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기어VR과 유일하게 합을 맞출 수 있는 단말기는 갤럭시 노트4 밖에 없음에도 국내 이통사에서 출시된 단말기를 지원하지 않은 점, 한글 메뉴나 안내문 같은 현지화 작업이 없는 점, 게임 등급 같은 국내 컨텐츠 심의 제도에 맞게 컨텐츠를 수정하지 않아 장터 안 게임 항목을 제한한 점 등이다. 그렇다면 한달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모두 해결된 상황은 아니다. 그래도 두 가지는 해결됐다. 국내 이통사에서 출시한 갤럭시 노트4를 쓸 수 있고 메뉴와 안내문의 현지화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컨텐츠 장터의 게임 항목은 여전히 닫혀 있지만, 기어VR용 올레 모바일 TV 같은 현지화된 컨텐츠가 나타난 것을 볼 때면 출시일이 그리 멀리 있진 않은 듯하다.

출시 전에 마주했던 기어VR의 불편한 이용 경험이라는 그림자는 기어VR용 컨텐츠로부터 얻는 즐거움까지 가리진 못한다. 흔히 값싼 카드보드 방식의 스마트폰 VR과 같을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짐작과 다르게 기어VR에서 그려 낸 공간은 좀더 업그레이드된 경험을 준다. 기어VR 액세서리와 단말기, 그리고 컨텐츠의 질적인 차이는 가상 공간의 깊이와 컨텐츠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VR 컨텐츠를 즐기려 기대어 앉은 거실 쇼파에도 안전 벨트를 매달고 싶을 만큼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우주를 날아 다닐 때도, 하늘에 떠 있을 때도, 낭떠러지 끝에 서서 호수를 내려다 볼 때마다 지루한 현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떤 날은 비행기를 타지 않고 뉴욕을 여행하고 곤돌라를 타고 베니스를 관광하며 낙하산 없이 스카이 다이빙을 즐기기도 하고 대형 고래와 함께 바다 속을 헤엄치기도 한다. 그저 컴퓨팅 장치가 그려내는 3D 그래픽이나 녹화된 영상을 보는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기어VR도 충실히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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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VR 장터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전용 컨텐츠는 40여개 정도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가상 현실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관리되고 있다. 게임이나 교육용 그래픽 VR과 콘서트, 여행 등 영상 컨텐츠 등 여러 형식으로 다른 재미를 준다. 게임이 가장 많고, 체험형 VR 앱을 통해 추가 컨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다. 다만 게임은 여전히 체험판이 많아 오랫 동안 즐기기는 어려우나 우리나라에 판매를 시작할 때 체험판이라도 다 등록될지 미지수다.

하지만 가상 세계에 대한 멋진 경험을 완벽하게 완성한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물론 카드보드 VR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품질이 좋고 가상 현실의 느낌을 전달하는 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지만, 정말 가상 현실이 실제라고 믿을 수 없게 하는 화면의 한계도 분명히 보인다. 2,560×1,440이란 높은 해상도와 AMOLED라는 빠른 응답 속도의 화면을 쓰고 있어도, 화면을 절반씩 잘라서 렌더링한 다음 렌즈를 통해 두 눈으로 봐야하는 VR의 특성상 부족한 화소의 단점을 비켜 갈 수 없다. 일반 화면보다 더 큰 공간을 창조하는 능력은 뛰어난 한편으로 화면의 한계에서 감동도 제한된다. 계산량이 많은 VR 앱을 실행한 뒤 발열로 멈출 수밖에 없는 메시지는 흥을 깨고, 기어VR에 전원 케이블을 연결할 수 없어 빠르게 소모되는 배터리를 보충하지 못하는 점도 더 고민해야 할 점이다. 기어VR만 쓰면 무겁지 않으나 앞쪽에 갤럭시 노트4를 매달면 광대뼈 위에 짓눌린 흔적이 남는 것도 보기 흉하다. 일부 컨텐츠에서 매스꺼움을 느낄 수 있는 점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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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어도 기어VR은 다른 스마트폰VR 액세서리와 비교할 수 없는 환경을 갖고 있다. 가상 현실 컨텐츠를 내려받고 이를 다루는 측면에서 훨씬 다듬어진 제품이다. 기어VR에 갤럭시 노트4를 꽂은 뒤 머리에 쓸 때 저절로 뜨는 전용 메뉴부터 가상 공간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기어VR의 그래픽 메뉴는 조이패드 같은 별다른 조작 장치가 없어도 다룰 수 있다. 기어VR을 쓴 채 실행할 메뉴 쪽으로 고개를 돌려 포인터를 고정한 뒤 기어VR 오른쪽에 있는 터치 패드를 살짝 건드리면 실행하거나 무기가 발사된다. 장터를 열어 앱을 설치할 때도, 이미 설치된 앱을 실행할 때도 모두 같은 방식이다. 기어VR 오른쪽의 터치 패드는 USB 마우스로 작동하는데, 기어VR용 컨텐츠와 게임도 일부를 빼고 모두 이 컨트롤러를 이용하도록 개발되고 있다. 또한 기어VR 안쪽에 조도 센서를 넣어 단말기를 쓸 때만 화면이 켜지고, 안경을 벗고 써도 단말기와 렌즈의 거리를 조절해 좀더 또렷한 화면으로 만들 수 있다.

단지 일부 기능을 다룰 땐 기어 VR을 벗어야만 한다. 대표적인 예가 전화가 왔을 때다. 기어VR을 쓴 채 전화를 받을 수 없다. 전화가 왔다는 사실은 VR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전화를 받으려면 반드시 단말기를 기어VR에서 분리해야 한다. 그냥 받아도 될 전화라면 가상 공간 안에서 받도록 했다면 훨씬 재미있는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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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공연 실황처럼 콘서트 현장에서 보는 느낌도 그대로 재현한다

그래도 지난 한 달 기어VR은 즐거움을 주는 장치였다. 아마 기어VR 수준의 완성도를 가진 스마트폰 VR이 나오지 않는 한 일부러 멀리하진 않을 것이다. 또한 기어VR에서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것조차 지루하게 느껴지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멀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하드웨어에서 오는 한계와 기능, 컨텐츠의 부족함을 당장 극복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루한 현실을 마주할 때 가끔은 탈출구로써 활용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또한 지금까지 흔하게 봤던 컨텐츠가 아닌 새로운 공간 안에서 생산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컨텐츠의 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기어VR이다. 가상 현실을 한두번 즐기다 서랍 속에 넣어두기에는 너무 비싸고 아까운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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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sol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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