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스위치와 엔비디아의 소원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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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가 코드명 NX라 불리던 차세대 게임기를 한국시간으로 20일 밤 11시에 발표했다. 새 이름은 닌텐도 스위치(Switch)다. 닌텐도가 위 유(Wii U)를 2012년에 출시했으니 4년 만에 새로운 게임기를 공개한 셈. 물론 출시는 2017년 3월이라 아직 반년 더 기다려야 하는 데다, 20일 발표에서 모든 것을 자세히 발표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엔비디아 스위치는 동영상을 공개한 것만으로도 화제를 낳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닌텐도 스위치가 때론 콘솔로, 때론 모바일로 모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킹 스테이션에 꽂으면 콘솔 게임기처럼, 도킹에서 꺼내 양옆에 컨트롤러를 붙이면 모바일 게임기로 쓰는 것이다. 아마도 홈에서 모바일로, 모바일에서 홈으로 바꿔가며 쓸 수 있다는 의미로 스위치라는 이름을 지은 모양이다.

사실 닌텐도가 공개한 스위치 동영상은 하드웨어의 특성보다 하나의 장치로 어떤 재미를 줄 것인지 예시의 모음에 가깝다. 특히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본체의 전환과 더불어 컨트롤러의 전환이다. 가정이나 외부에서 닌텐도 스위치 양옆에 붙이는 조이콘을 이용해 하나의 장치에서 2인 플레이를 하거나 두 대의 스위치를 직접 연동해 4인이 동시 게임을 즐기거나 여러 대의 스위치를 연동한 뒤 멀티 플레이어 대전을 벌이는 등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하드웨어의 방향성을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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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닌텐도 스위치의 하드웨어 자체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다. 태블릿 크기의 화면을 비롯해 램, 저장 공간, 확장 슬롯 등 구체적인 제원은 이번 발표에서 모두 감췄다. SD 카드와 같은 별도의 게임 카트리지를 꽂을 수 있지만, 이것도 구체적 용량이나 규격은 모두 제외된 상태다.

흥미로운 점은 닌텐도가 스위치 정보를 공개한 그 시각, 관련 소식을 올린 또 다른 업체가 있었다는 점이다. GPU 업체인 엔비디아다. 엔비디아가 닌텐도 스위치의 프로세서를 공급한다고 자사 블로그에 글을 공개한 것이다. 물론 스위치에 탑재되는 프로세서는 지금까지 엔비디아에서 내놓은 칩은 아니다. 엔비디아는 스위치가 커스텀 테그라 칩을 쓴다고 발표했다. 테그라는 CPU와 GPU 코어를 합친 엔비디아 모바일 프로세서 라인업이다. 커스텀 테크라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칩을 적용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테그라 X1의 다음 칩이었던 코드명 파커(Parker)로 알려진 테그라 X2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20일 밤 닌텐도 스위치의 공개를 가장 기다렸던 곳은 엔비디아일 수도 있다. 이번 스위치의 하드웨어를 볼 때 거의 대부분 엔비디아의 기술이 들어간 제품에 가깝기 때문이다. 비록 게임 경험과 관련된 아이디어는 닌텐도의 힘일지라도 모바일과 콘솔 양쪽의 경험을 갖고 있는 제조사가 아닌 이상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하드웨어를 만들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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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닌텐도가 콘솔이나 모바일의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콘솔로 활용할 수 있는 모바일 장치는 다른 세계다. 콘솔의 성능 극대화와 반대로 모바일 게임기의 휴대성과 전력 효율성, 발열을 결합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엔비디아는 프로세서는 물론 하드웨어 설계까지 경험을 한 바 있다. 테그라 4를 적용했던 쉴드 포터블, 테그라 K1을 쓴 쉴드 태블릿, 테그라 X1을 넣은 쉴드 TV까지 두루 만들면서 테그라 프로세서를 실험해왔다. 엔비디아 입장에서 닌텐도 스위치는 그동안 경험했던 모든 실험의 실전인 셈이다.

아마도 닌텐도 스위치에 들어가는 커스텀 테그라는 ARM에서 마이크로아키텍처를 라이센스 받아 만든 덴버2 코어와 엔비디아의 10세대 그래픽 아키텍처인 파스칼을 합친 모델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쿠다 코어를 넣었는지 알 수 없으니 커스텀 테그라의 성능은 아직 가늠할 수 없지만, 맥스웰 아키텍처를 담았던 테그라 X1가 콘솔에서 풀HD 게이밍과 4K 영상 출력에 대응하는 데는 무리 없는 것을 볼 때 그 이상의 성능은 낼 것이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다만 테그라 내의 GPU 코어 외에 별도의 외부 GPU 코어와 연동할 수 있다면 게임 해상도를 높이고 게임 내 물리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는데, 이런 능력을 살릴 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상대적으로 크게 만든 도킹 스테이션을 조금 의심해 봐야 할 듯하다. 도킹에 처리 능력을 보강하지 않았다면 장기적으로 콘솔 게임 환경은 좋지 않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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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가 커스텀 테그라를 선택했지만, 중요한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는 엔비디아에서 마련해야 한다. 닌텐도 스위치에서 물리 엔진을 경험하고, 게임 실행에 필요한 라이브러리와 게임 도구들을 제공하는 것은 엔비디아가 해야 하는 일이라서다. 엔비디아는 커스텀 테그라에서 최고의 성능을 낼 수 있는 새로운 게이밍 API와 NVN을 만들었다. NVN에 대해선 정보가 부족해 구체적인 설명이 어렵지만, 엔비디아는 닌텐도 스위치만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닌텐도가 스위치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서드 파티들을 볼 때 닌텐도가 폐쇄적인 개발 환경을 만들지는 않는 듯하다. 엔비디아도 몇몇 새로운 게이밍 API를 내놓긴 했지만, 유니티(Unity)와 하복(Havok) 등 게임 엔진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다 에픽도 언리얼 엔진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이 엔진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 환경을 유연하게 갖출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앞서 독자적인 개발 환경을 고집하다 서드 파티들이 떠났던 것을 닌텐도도 모르는 바는 아니어서 하드웨어 설계와 소프트웨어 개발 측면에서 이전보다 얼마나 유연하게 접근했는지 지켜볼 일이다.

이야기가 잠시 샜지만, 결과적으로 닌텐도 스위치는 엔비디아가 테그라를 통해 이루려던 소비재 분야에 대한 염원을 이뤄줄 제품인 것은 맞다. 강력한 GPU 기반의 고성능 모바일 프로세서로 가정에서 즐기는 게임까지 아우르는 게이밍 콘솔은 엔비디아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닌텐도 스위치는 아직 평가가 이르다. 이 제품이 혁신적이긴 하지만, 과연 콘솔과 모바일 게이머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지 출시 이후까지 지켜봐야 한다. 엔비디아의 소원 성취는 그 이후의 결과에 달렸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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