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한국 지사 안 세울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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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임산업개발원의 요청이 없었으면 닌텐도 한국 지사는 세워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그랬을 것이다.”-코다 미네오 닌텐도 코리아 대표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진 웃음소리. 무거운 공기, 아니 싸늘한 냉기가 회의실에 내려 앉는다. 적막 속에서 흐르는 1초. 이렇게 더딘 시간의 흐름을 오랜 만에 느낀다. 1년 반 동안 묵혀 쉰내가 진동하는 물음. 무겁게 입을 열었으나 지독한 악취가 진동하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짧기만 하다.


닌텐도 코리아 코다 미네오 대표를 만났다. 지난 주 화요일에. 일주일의 NDA. 흔히 말하는 보도 유예(엠바고)라는 걸 지켜야 했기에 오늘에서야 이야기를 꺼낸다.


질문은 내가, 대답은 코다 미네오 사장의 것이다. 이어지는 쓰잘데기 없는 문답, 잡동사니 같은 말들을 채에 걸러낸다. 역시나 ‘닌텐도 스스로 한국에 올 생각이 없었다’라는 한 줄 알맹이만 남는다. 그랬다. 닌텐도 코리아는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역사에 만약이 있었다면 말이지만.


풋~ 돌아보니 웃긴다.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면서 물어본 것이 우습다. 한 마디 덧붙임이라도 기대했던 게 우습다. 하지만 그 대답, 좀 짜증 난다. 질문을 잘못 던진 모양이다. 요청이 있건 없건 시장성을 검토하고 들어왔을 가능성이 없었냐고 물어야 했던 것을. 아무튼 사장님, 참 솔직하게 답하신다. 앞뒤 안재고 말이다.


“한국이 큰 시장 아니면 진출 안했다”. 다른 질문에서 튀어나온 답이다. 시장성 분석을 했다는 이야기다. 내가 바랐던 답이다. 그런데 시기를 따져보니 (기관의)요청을 받은 뒤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 앉아 있던 배승규 부장이 정리에 들어간다. “정부 기관의 요청을 따라 시장성을 분석해 한국 지사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고. 역시 깔끔하게 정리하신다.


(그 요청이 있었기에)그들은 대한민국 게임 시장을 눈을 돌렸다. 그들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들의 다리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분명 적지 않은 의미다. 직접 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총판(대원)을 통해서 제품만 팔았을 게다. 버튼을 잘못 누른 이나영도 볼 수 없었을 테다. 한글화 게임은 희망사항으로 그쳤을 것이고, 게임 제작 환경도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의미는 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을 칭찬이라도 해줘야 하나 싶다. 눈꼽만큼은 고민된다. 좋게 말하면 외국계 기업 유치에 성공한 셈이지 않나. 물론 “냉큼 오시오”보다는 “어서 오시오”의 자세였을 테지만.)


다만 문제는 그 태도다. 닌텐도가 한국 법인 설립을 결정한 이후의 자세. 꽤나 거슬렸다. NDSL의 발매 때부터 생긴 두통의 원인이 이거였다. 글을 쓰는 지금도 지끈 거린다. 뒷목은 뻐근하다. 시장성을 보고 사업을 시작했으면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면 될 것을 희한한 자기 합리화의 논리로 내세워 왔다. 기관의 요청을 누누이 들먹이는 것도 요상하고, 한국 게임 산업 발전의 사명을 진출 이유로 꼽은 것도 탐탁치 않았다. 이는 CEO 인삿말에 여전히 남아 있고, 지난 해 불법 복제 단속 논리로 끌어다 썼다. 이상한 생색내기다. 전후 상황으로 진출의 정당성을 포장하다니. 닌텐도가 주판알 하루 이틀 튕긴 기업이던가. 기업에게 있어 비즈니스 논리보다 대한민국 게임 산업 발전이라는 짐을 짊어지는 것이 우선하진 않을 텐데. 혼자 그 짐을 짊어진 척 유난 떠는 것 같아 한동안 닌텐도의 ‘닌’ 소리만 나와도 기분 잡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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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신물나는 자기 자랑은 그만. 이제 목표에 좀더 충실하자. ‘게임 인구의 확대’. 현재 닌텐도의 유일무이한 목표이자 전략 아닌가? 게임에 무관심한, 닌텐도의 유일한 경쟁 상대들을 끌어 안는 일에 쓸 시간도 모자라지 않던가. 그 수많은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을 모르진 않을 터. 우리 말로 즐기는 수많은 게임, 이 땅에서 자라난 다채로운 게임, 한국 게임 시장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의지 말이다.

닌텐도 코리아라는 마법의 주전자를 문지르며 내가 외우는 주문은 하나다. 닌텐도다운 진정한 게임 비즈니스를 하는 것. NDSL이나 Wii 같은 하드웨어보다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 기업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야 닌텐도답고, 그리 되면 그 입을 열어 자랑하지 않아도 된다. 소비자들이, 게이머들이 직접 이렇게 말할 테니까. “게임만으로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는 회사, 그게 닌텐도야”라고. 그대들의 경쟁자로부터 이런 칭찬을 듣는 것. 이보다 더 행복한 게 또 있을까?


덧붙임 #


1. 노파심에 한 말씀드리면 ‘닌텐도 코리아의 비즈니스적 태도’와 ‘닌텐도 게임’을 같은 선에 올려두고 해석하는 이가 없기를 바랍니다.


2. 이날 인터뷰는 태터앤미디어와 헤럴드 경제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블로거, IT 기업에 가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된 것입니다. 제가 쓴 이야기 외에 이날 참석한 다른 블로거들이 공유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3. 오는 7월이면 닌텐도 코리아가 세워진 지 만 2년이 되어 갑니다. 지난 2년 동안 닌텐도 코리아와 이용자들 사이의 소통에 대한 평가는 최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날 처음으로 코다 미네오 사장과 직원들이 블로거들을 만났습니다. 소통을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처음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새로 바뀐 홍보 대행사의 역할이 무척 컸다고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4. 난감한 질문을 통역하느라 애 먹었을 닌텐도 코리아 홍보팀 김상연 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44 Comments

  1. 지난 5월27일, 태터앤미디어+헤럴드경제의 ‘파워블로거, IT 기업에 가다’ .. 제 6탄은 한국닌텐도에 다녀왔습니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한국닌텐도의 코다 미네오 사장입니다. 마리오와 조금 닮..

  2. 2008년 6월 2일
    Reply

    그래도…
    우리 스스로가 서비스 이용료 외에는 돈내고 게임 사는 시장을 포기한 상태인데….
    태도가 어떻든간에…지사를 설립한 닌텐도는 용기는 있다는 생각이 들정도에요.

    • 2008년 6월 2일
      Reply

      네. 이날 불법 복제가 많아도 한국 시장 포기 안한다는 의지를 확인도 했지요. 이제 그 의지가 꾸준하게 꺾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

  3. 2008년 6월 2일
    Reply

    그나마.. 닌텐도DS가 잘 팔려서 다행이네요. 따라오는 Wii도 마찬가지구요. 아니면 빨리 철수했을지도..

    • 2008년 6월 2일
      Reply

      닌텐도 DS는 잘 팔렸는데 소프트웨어가 덜 나가는 게 고민이지요. 하드웨어대 소프트웨어가 1:3은 되어야 하는데, 아직 1:2도 안되니 말입니다. Wii는 좀 부진하다는 지적이 많네요. 아무래도 모델을 잘못 쓴 게 아닐지..

  4. 보이스맨
    2008년 6월 2일
    Reply

    뉴스에서 보니 한국의 독특한 방문화와 부모님들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Wii 의 보급을 막고 있다는군요.. 텔레비젼을 부모님이 장악하고 있는것도 이유구요..

    • 2008년 6월 3일
      Reply

      그 분들도 닌텐도의 경쟁상대겠지요. ^^ 꼭 껴 안아야 할.

  5. 2008년 6월 3일
    Reply

    wii가 안팔리는 이유는 복제가 안되니까.

    • 2008년 6월 3일
      Reply

      그래서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만.

  6. 2008년 6월 3일
    Reply

    뭐…씁쓸하네요…
    닌텐도용의 게임을..그닥 좋아하는게 없어서 그런건지… 뭔가 눈에 거슬리는 자세인데요…
    와서 국익을 위한 인프라를 깔아준 것도 아니고 그냥 자기네 제품 팔아먹은 거면서… 니네가 요청했기에 굳이 들어온거다… 라는 식의 자세로 보이네요..

    • 2008년 6월 3일
      Reply

      닌텐도 게임을 좋아하는 저도 거슬리는 부분이었으니까요. 흠. 비즈니스로 승부하는 기업이 되기를 희망한답니다. ^^

  7. 2008년 6월 3일
    Reply

    음….주객이 전도된 기분…그래도 한 것에 의의를 두고..

    • 2008년 6월 3일
      Reply

      네. 이왕 들어온 거 잘했으면 좋겠어요. ^^

  8. shamino1
    2008년 6월 3일
    Reply

    할게임도 많은데 구지 한국차별에만 차별 코드넣은 게임기를 사고싶진 않더군요…많이 기대했는데 다른것을 알아볼려구요…

    • 2008년 6월 3일
      Reply

      Wii는 미국과 일본도 각각 코드를 갖고 있다고 코다 미네오 사장이 직접 확인해주더군요. 독립 코드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있는 것 같네요. ^^

  9. 뻣뻣한 자세는 마음에 안듭니다만
    2008년 6월 3일
    Reply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모습을 보면 기왕 뛰어든거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자세가 보여서 좋군요.

    • 2008년 6월 3일
      Reply

      네.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앞으로도 좋은 기업으로 남게 되겠죠. ^^

  10. 2008년 6월 3일
    Reply

    마땅히 할 질문이 없었죠. 답변이야 뻔하니;;
    그래도 닌텐도에 방문했다는 거에 의의를 둬야겠습니다. orz

    더불어 칫솔님과 블로거 분들을 만난 게 가장 큰 소득이네요. =)
    조만간 트래백 날리겠습니다~

    • 2008년 6월 3일
      Reply

      저도 태현님 만난 게 가장 큰 소득이에요. ^^ 글 기대하겠습니다.

    • 2008년 6월 3일
      Reply

      저도요 태현님.
      아주아주 반가왔어요~ 🙂

  11. 2008년 6월 3일
    Reply

    게임 이용자 확대를 위해 기획된 닌텐도DS와 Wii, 전세계적으로 폭팔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한국내에도 닌텐도DS는 긍정적인 성공을 이끌어내고 있다. 닌텐도DS를 이어 거치형 게임기인 Wii가 ..

  12. 2008년 6월 3일
    Reply

    한국판 Wii도 뚫렸다… Wii용 해킹칩 등장!!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Wii 도 뚫렸네…하드웨어 보다는 소프트웨어 장사를 하는 닌텐도 입장에서…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치가 낮을 수 밖에 없..

  13. 2008년 6월 3일
    Reply

    별로 거슬리는 내용은 아닌데..흠…혹시 wii 게임 많이많이 발매해달라는 얘기를 해주신 분은 없나요..^^;;;

    • 2008년 6월 3일
      Reply

      네 섹시디노님. 물론 많았습니다. 트랙백 따라가시면 여러 글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

  14. asiale
    2008년 6월 3일
    Reply

    비디오, 휴대용게임기에 대한 성공사례도 없고, 불법복제가 시장을 갉아먹고.. 정부의 정책지원이 없었다면 굳이 risk 를 감수하고 한국시장에 들어올 이유가 없죠.. 다행히 nds는 성공했으나 wii 가 실패하는걸 보면 한국시장이 쉽지 않은건 사실입니다. 당연한 질문에 당연한 대답인데.. 도덕적 비난이 섞인 글 내용이 별로 맘에 와닿지 않네요..

    • 2008년 6월 3일
      Reply

      불법 복제가 시장을 갉아 먹을 것이라고 미리 판단했다면 안들어오는 게 정상입니다. 그게 제대로 된 기업이죠. 코다 미네오 사장이 지난 해 NDSL 발표회 때 했던 한마디를 적어드리죠. “한국의 불법 복제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확인했고 시장의 건전성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에 한국 진출을 결정했다.”

    • 2008년 6월 3일
      Reply

      항상 해석이 어려워요. ^^

  15. 2008년 6월 3일
    Reply

    닌텐도는 ‘리마커블’의 상징과 같은 회사입니다. Sony와 MS가 게임기의 성능을 극한으로 올리며 출혈 경쟁을 하고 있을 때, ‘NDSL’ ‘Wii’라는 게임기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습..

  16. 2008년 6월 3일
    Reply

    이번에 wii 한국독자코드말곤 다 맘에 드는 닌텐도입니다만…발언이 약간 뻣뻣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 2008년 6월 3일
      Reply

      Wii 독자코드는 다른 나라도 있답니다. 그것은 문제가 아닌데, 타이틀이 너무 제한되어 나온다는 게 문제지요. ^^

  17. 2008년 6월 3일
    Reply

    왠지 구한말 일본인 고문단의 발언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네요… 조선이 원해서 군대를 파견해줬다는 식으로 말이죠… 쩝… 어차피 닌텐도 게임은 건든 적도 없고, 아마 평생 할 일도 없을겁니다. (다만 리모콘만 블루투스 기능으로 이리저리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구입을 고민하고 있긴 합니다.)

    굉장히 불쾌하네요… 차라리 “불법복제가 난무하는 나라라서 참여를 꺼려왔다”라고 했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요…

    • 2008년 6월 3일
      Reply

      위에도 답을 드렸지만, 불법 복제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왔던 게 닌텐도 코리아였습니다. 들어오고 나서 커진 감이 있지만요. ^^

  18. 2008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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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 저는 자고 있군요 ㅎㅎ

    • 2008년 6월 3일
      Reply

      헛.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

  19. 2008년 6월 3일
    Reply

    또 거만하게 굴다가 폭삭 망할 거 같네요. 마치 정신 못차린 딴따라딴딴따처럼… NES때도 한 번 말아드시고 이번에는 Wii로 말아 드시려나봅니다 ㅋㅋ

    • 2008년 6월 3일
      Reply

      아… 말아먹으라고 한 소리는 아닌데요. ㅜ.ㅜ 아무튼 게임과 관련한 비즈니스만 잘 했으면 싶어요. 자기자랑 말고. ^^

  20. 태터앤미디어와 헤럴드경제가 함께 하는, ‘파워블로거 IT 기업에 가다’의 일환으로, 2008/05/27(화)에 닌텐도코리아 다녀왔습니다. 여러 얘기가 있었습니다만 다 접고, ‘카피 프로텍션’에 관한 것..

  21. 닌텐도 코리아 방문.. 이런 자리를 몇번 경험하다보니 점점 취재를 하는듯한 태도가 되어간다 자리 같이하신분이 저번에는 급기야, ‘bruce님은 기자하셨으면 잘하셨을거 같아요’ 라고 까지 결..

  22. 지난 주 화요일(5/27) 테터앤미디어와 헤럴드코리아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파워블로거, IT 기업에 가다’ 닌텐도 코리아 탐방에 참여했습니다. 파워블로거라고 불릴 만큼 활동한 것도 아닌데 추..

  23. 2008년 6월 3일
    Reply

    우리나라 회사에서도 닌텐도 플랫폼으로 게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게임진흥원인가 하는 곳에서는 적절한 조치를 했고. 닌텐도는 한국이란 시장을 발견 한겁니다. 어딜봐도 닌텐도가 한국을 업수이 여기거나 시혜라도 베푸는 듯한 언급은 없는것 같은데 몇몇분은 좀 민감하시네요.

    • 2008년 6월 3일
      Reply

      네. 지금은 국내에서 만든 게임이 고작 서너개 밖에 없지만, 앞으로 2~3년 안에 NDS 60개, Wii 40개 정도 타이틀을 낸다 하더군요.

  24. 2008년 6월 16일
    Reply

    이제 닌텐도라는 회사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존재가 아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100만대 이상을 판매한 닌텐도 DS가 있고, 최근에는 닌텐도 위(Wii)를 앞세워 국내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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