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된 마우스 이야기

어제, 그러니까 12월 9일은 마우스가 만들어진지 4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고 한다. 마우스가 탄생한 해부터 따지면 정확하게 41년 째지만, 돌아오는 주기로 따져 40주년이 되었나 보다. 그동안 수많은 인터페이스가 등장했음에도 이처럼 오랫동안 수많은 장치의 입력 장치로서 살아 남았다는 사실은 정말로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으면서 4년 전에 마우스에 관해 쓴 글 하나가 떠올랐는데, 40주년을 기념해 그 때 글 중 일부를 공개한다.

더글라스 엥겔바트, 최초의 마우스를 만들다
1968년 12월9일, 샌프란시스코 컨벤션 센터에 모인 1천명의 컴퓨터 전문가들은 90분의 시연이 끝나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SRI(stanford research institute)의 ARC(augmentation research center)에서 날아와 이날의 멋진 장면을 연출한 더글라스 엥겔바트와 17명의 연구원들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엥겔바트와 그의 연구원들은 현대적인 온라인 시스템인 NLS와 인터넷 문서의 시초인 하이퍼텍스트, 오브젝트 어드레싱, 동적 파일 연결 등 단지 상상에만 머물렀던 개념들을 완벽하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마우스가 있었기에 엥겔바트와 연구원들이 시연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마우스를 옮길 때마다 화면에 떠 있던 삼각형 커서가 함께 움직였고 차례로 기능을 수행해 나갔다. 마우스는 비록 주연은 아니었지만 이날 처음 대중 앞에 작지만 놀라운 재주를 보여주었다. 가로와 세로로 된 2개의 기어 휠로 만든 조악한 마우스는 이날 데뷔했을 뿐 사실 이미 5년 전인 1963년에 완성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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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I에 일하던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마우스의 창시자가 된 것은 조금 우연적인 일로 남아있다. Augment Human Intellect 프로젝트에서 유용성 테스트를 위해 마우스를 개발하기는 했지만,  원래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라이트 펜과 다른 방식의 커서 제어 장치를 고민하다 랜드 코퍼레이션에서 개발한 커서 제어 장치를 빌리려 마음을 먹었다. 랜드 코퍼레이션에서 “우리에게 여유분이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온 엥겔바트는 지난 날 적어둔 공책 뭉치를 뒤지다 몇년 전 마우스에 대해 써 둔 노트를 찾아냈다. 그는 측면기(planimeter)의 기계적 원리에서 마우스의 기본 원리를 발견했고 이를 응용해 기계식 마우스를 만들었다.
엥겔바트 마우스는 X축과 Y축 2개의 휠이 돌면서 가변 레지스터에 전류 변화를 일으키면 이 정보를 AD 컨버터가 알아채 디지털 정보로 바꾸어 메모리에 저장하고 모니터 위치에 맞게 커서를 가져다 놓는 것이다. 작은 나무 상자에 아래로 두 개의 휠이 튀어 나와 있고 그 위에 버튼 1개를 얹은 엥겔바트 마우스는 당시 조이스틱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위치를 지정할 수 있어 연구 그룹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1968년에 만든 마우스 버튼은 3개로 늘었다. 엥겔바트는 1970년 11월17일 ‘표시 장치용 X-Y 위치 지정기’(X-Y position indicator for a display system)라는 특허(US3541541)를 받았다.

마우스는 작자 미상
지금은 마우스가 PC 주변 장치를 뜻하는 일상적인 단어로 쓰이지만, 맨 처음부터 마우스라는 이름을 쓴 것은 아니다. 1987년에 진행한 어느 인터뷰에서 마우스라는 말을 누가 먼저 꺼냈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누가 만들었는지 확신할 수 없고 아무도 기억 못할 일이지만, 마우스 개발 초기에 쥐꼬리처럼 생긴 전선을 보고 연구원 가운데 한 명이 지은 것”이라고 답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엥겔바트는 옛 마우스의 생김새와 느낌을 말했다. 그는 “맨 처음 만든 마우스가 화면에서 정말로 움직일 때까지 매우 짧은 전선을 갖고 있었는데, 그 전선의 방향을 뒤가 아닌 앞쪽으로 바꿔 놓은 다음, 앉아서 지켜보니 마치 쥐가 꼬리를 끌고 가는 것처럼 재미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그 때의 느낌을 전했다.

볼 마우스의 진화, 알토 컴퓨터
전류 제어로 작동하는 엥겔바트의 아날로그 마우스는 제록스의 새 컴퓨터 제작과 함께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자마자 엥겔바트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수많은 연구원들이 제록스 PARC(palo alto research center)로 자리를 옮겼다. 제록스 PARC는 1972년부터 시작한 알토 프로젝트에 마우스를 기본 포함하기로 결정하고 엥겔바트 마우스의 재설계에 들어갔다.
알토 마우스의 초기 모델은 엥겔바트처럼 밑면이 2개의 휠과 3개 버튼으로 된 것이었다. 물론 아날로그식 작동 방식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재설계 과정에서 입체적 디지털 신호를 만들어내는 3개의 볼 베어링과 샤프트 인코더 방식으로 바뀌었다. 알토 마우스는 또 한번 재설계 끝에 볼 1개로 기계식 샤프트 인코더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나머지 볼 베어링은 모두 제거되었다.
이 마우스는 제록스 알토에서 쓰기 위해서 만든 GUI 운영 체제에 알맞게 했다. 그 뒤 최초의 GUI 컴퓨터로 일컬어지는 제록스 스타가 1978년에 나오면서 마우스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책상만한 혁신적(?)인 크기로 줄인 제록스 스타 컴퓨터는 판매 대수가 100대 미만이었던 탓에 마우스의 대중화는 사실상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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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광 마우스의 등장
초기 기계식 마우스는 안정성이 없는 단점을 지녔다. 쉽게 더러워졌고 커서가 튀었다. 마우스 부품 값도 매우 비쌌는데, 특히 제록스 알토 마우스가 시장성을 지니지 못한 것은 300~400달러가 넘는 값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제록스와 MIT는 서로 다른 광학 마우스를 개발했다.
MIT에서 광 마우스를 만든 주인공은 마우스 시스템즈를 세운 스티브 커시다. 그가 썼던 방식은 음영선이 그려진 특수한 금속선 마우스 패드(metal grid pad) 위에 마우스를 움직일 때 반사되는 LED 빛을 감지하는 것이었다. 마우스 시스템즈의 마우스는 80년대 초기에 실제로 상용화되었고 M1부터 M4 모델이 나왔다. MSC의 페인트 같은 그래픽 프로그램 등에서 제 성능을 발휘했다.
하지만 제록스 연구진들은 제록스 스타 컴퓨터를 만들었던 1979년 이후 특수한 마우스 패드조차 필요 없는 광 마우스를 개발해 쓰고 있었다. 이 광 마우스는 지금 쓰고 있는 것과 거의 똑같았은 방식으로 작동했는데, 제록스 PARC의 딕 리온은 1980년대를 전후해 사람의 시각 체계를 기초로 작동하는 광학 마우스의 프로토타입을 만든 것이다. 이 광 마우스는 마우스가 움직인 지점의 질감을 인식하는 것으로 점으로 표시된 패턴이 있어야 작동했기에 전화번호부 위나 청바지에서도 잘 작동했다.
‘제록스 8010 옵티컬 스타 마우스’라고 알려진 이 마우스는 여러 개의 LED를 갖추고 있었고 생산 단가가 겨우 6달러에 불과했다. 당시 제록스 스타 마우스가 180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싼 마우스였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대량 생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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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적인 애플 마우스의 성공
알토 컴퓨터는 운영체제나 작동 방식 등 획기적인 면모를 갖추기는 했지만, 비싼 값 때문에 대중화라는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알토 컴퓨터를 사면 주는 마우스도 비싸기는 마찬가지였다. 1개에 400달러가 넘었으니 당시 물가로 따져보면 어처구니없는 장치였던 것이다.
알토 마우스는 그렇게 사라졌지만, 마우스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79년 제록스 스타가 나온 뒤다. 애플컴퓨터 사장 스티브 잡스는 이를 참고 삼아-아이디어를 도둑질했다는 비난도 많지만-여러 입력 장치로 움직이는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넣은 애플 리자와 매킨토시 설계에 들어갔다. 잡스는 알토 컴퓨터를 창안했던 오비 켈리 디자인(hovey-kelly design)에 마우스 설계를 맡겼다. 잡스는 그들에게 청바지 위에서도 움직이는 10~35달러짜리 마우스를 주문했지만, 알토 마우스의 부품들이 너무 비싸 실현될 지는 의문이었다.
그의 요구대로 프로토타입 제품을 만들어 내기는 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외주를 맡긴 이유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곧잘 더러워지고 작동이 안되는 볼베어링과 인코더 방식의 문제부터 풀기를 원했던 것이다. 오비 켈리 디자인 개발자들은 책상 위를 돌아다니다 굴러 떨어지는 볼을 보고서야 그 답을 찾아냈다. 베어링을 없애고 볼만 움직이게 만들면 해결될 문제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또한 미시건대 학생이 만든 광학 인코더를 참고해 LED와 광트랜지스터(phototransistor)를 이용한 새 인코더를 만들고 볼을 살짝 눌러주는 세 번째 롤러를 추가해 립케이지라는 작은 테두리에 담았다.
이때까지 연구된 것은 작동 방식이었지, 버튼을 몇 개로 할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호비 켈리 디자인은 3버튼과 2버튼, 1버튼 방식 마우스를 차례로 테스트 했다. 그러나 결국 간결한 것을 좋아하던 스티브 잡스는 1버튼 방식 마우스를 요구했다. 애플 마우스는 애플 리자에서 먼저 선보였지만, 1984년 소개되어 큰 인기를 누린 매킨토시의 입력 장치로 공급되어 대중화에 성공했다. 1버튼 마우스는 지금도 애플의 표준으로 쓰이고 있다.

스무 살 청년이 된 PC 마우스
애플이 마우스의 대중화를 이끌어 낸 것은 사실이지만 애플만의 대중화라고 줄여 말할 수도 있다. 1986년에 발표한 애플 2 GS와 매킨토시 후속 기종에는 스티브 워즈니악이 독자적으로 설계한 애플의 입력 장치 인터페이스인 ADB(apple desktop bus)를 채택해 다른 시스템과 호환성을 없애 버리면서 애플만의 역사로 남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PC용 마우스가 그 뒤에 개발된 것은 아니다. 1981년을 전후에 제록스 알토 컴퓨터 마우스를 만든 잭 s. 홀리가 세운 마우스 하우스와 로지텍, 마우스 시스템즈, 알프스 일렉트릭 등 마우스 개발 회사들이 줄줄이 설립되었다. 워낙 많은 마우스 생산 업체가 세워진 탓에 최초 PC 마우스를 누가 내놨느냐에 관한 설들이 많다. 하지만 가장 흔하게 쓰고 있는 2버튼 마우스의 원조에 가까운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1982년에 개발한 마우스라는 설이 가장 힘을 받고 있다.
그 해 마이크로소프트는 가로 5.25cm, 세로 10cm, 높이 3cm의 진흙으로 모양을 본 뜬 클레이 모델을 만들었고, 1983년 5월2일부터 195달러에 팔기 시작했다. 회색 테두리를 가진 마이크로소프트 마우스는 IBM-PC에서 수행되는 MS 워드프로세서에서 작동하게끔 만든 것인데, 2개의 녹색 버튼 때문에 ‘녹색 눈을 가진 쥐’(green-eyed mouse)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마우스는 1984년 제품부터 시리얼 포트에 연결하는 형태로 바뀌고 1985년에 감도를 높인 마이크로소프트 마우스 5.0을 발표했다. 그 뒤 마이크로소프트는 25년 동안 볼 포인트와 트랙볼, 광학 마우스 등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오고 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15 Comments

  1. 2008년 12월 9일
    Reply

    벌써 40년이군요.
    이제 슬슬.. 마우스 다음의 인터페이스가 나올때가 된것도 같은데..
    과연 어떤게 나올런지..

    • 칫솔
      2008년 12월 11일
      Reply

      그러게요. 중요한 것은 다음 인터페이스가 공통적으로 쓰일 수 있느냐인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

  2. 2008년 12월 10일
    Reply

    문득 마우스 복수형이 무엇이냐의 논쟁이 붙었던게 떠오르네요 ㅋㅋ
    mice로 할지 mouses로 할지에 대해서 말이죠

    아무래도 마이너리티 리포트 식의 인터페이스는 운동이 너무 되서 장시간 쓰기는 힘들 것 같아서
    실질적으로 업무용은 힘들 듯 한데.. 스타트렉처럼 음성으로 될려나요 ㅎ

    • 칫솔
      2008년 12월 11일
      Reply

      영화에서는 멋있지만, 실제 그런 인터페이스가 나오면 아무나 다루기는 힘들 것 같아요. 어떤 인터페이스가 됐든지 마우스를 대체하면서 대중성과 보편성을 겸비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인 듯.. ^^

  3. 2008년 12월 10일
    Reply

    마우스 다음에는 타블렛이냐 아니면 터치모니터냐!!
    뭘까요?

    • 칫솔
      2008년 12월 11일
      Reply

      둘 다 아닐 듯. 센서티브한 게 아닐까 싶군요.

  4. 2008년 12월 10일
    Reply

    마우스가 없는 피씨를 상상하기가 어렵군요 🙂

    • 칫솔
      2008년 12월 11일
      Reply

      지금은 팥을 뺀 붕어빵 같은 느낌입니다. ^^

  5. 2008년 12월 11일
    Reply

    마우스는 참 유용한 장치임에 틀림 없습니다.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유일하게 화풀이 할 수 있는 도구죠.
    부담없이 던져 버릴 수 있는 저렴한 가격. 손에 딱 달라붙는 아담한 사이즈.

    • 칫솔
      2008년 12월 11일
      Reply

      던지는 건 볼마우스때가 좋았죠. 던지면 파편이 확실하게 생겼거든요. ^^

  6. 2008년 12월 11일
    Reply

    웬지 놀(knol)스러운(?) 글인걸요? 잘 읽고 갑니다. 더불어 트랙백 하나 남기고 가요. ^^

    • 칫솔
      2008년 12월 11일
      Reply

      그렇잖아도 놀에 정리해볼까 고민 중이었어요. 흐흐 ^^

  7. 아래 나열된 이미지들은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시절 개발된 러시아 최초의 마우스들이다. 지금 보았을때는 디자인상의 조악함이 여실히 느껴지지만 16~17년전만 하더라도 최고의 디자인이자 아무나 사용할 수 없었던 고급 제품들이었다. 아마 지금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진귀한 아에템일 것이다. 이 마우스들은 1986~1994년 동안 러시아의 컴퓨터 사용자들이 즐겨 사용했던 것들이다. 심지어는 우주정거장 미르호에서도 사용되어졌다. 그럼 당시 마우스들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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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년 12월 12일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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