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안드로이드를 샀다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구글의 모토롤라 인수 이후 안드로이드를 다시 돌아보는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가운데 안드로이드 성공에 맞닿은 역사에서 견해가 엇갈리는 부분이 하나 있더군요. 스티븐 레비가 쓴 <인 더 플렉스>(in the plex)에서 과거 앤디 루빈이 삼성에 안드로이드 매각을 제안했다는 것과 LG가 첫번째 안드로이드폰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이를 두고 두 기업의 전략과 안목에 대한 아쉬움 또는 비판적인 글들이 줄줄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물론 두 회사의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해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다고 밝힌 터지만, 양쪽의 주장이 상반된 만큼 이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마다 판단이 제각각일 것입니다.

저야 어느 쪽 주장이 맞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나오게 된 배경에 안드로이드의 성공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이 흥미를 끌 뿐이지요. 안드로이드가 성공하지 못한 그저 그런 모바일 운영체제였다면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에 와서 회자될 일도, 이를 둘러싼 논란도 없었을 테니까요.

아무래도 안드로이드가 지금처럼 큰 성공을 거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성공은 구글에 인수된 뒤에 이뤄진 것이라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다른 제조사나 다른 유형의 기업에서 안드로이드를 인수해 개발했다면 안드로이드의 운명은 지금과 달라졌을 테지요. 그것이 흥했을지 망했을지는 짐작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구글이 제조사에게 안드로이드 소스 코드를 공개하고 무상으로 쓰는 개방형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오늘날의 모습과 똑같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겁니다.

(삼성 측에서 부인하고 있는) 앤디 루빈의 주장대로 만에 하나 삼성이 그 제안을 받아들여 안드로이드를 인수했다면 안드로이드는 한 제조사만 독점으로 쓰는 운영체제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요. 제조사의 입장에서 비싼 돈 주고 힘들게 완성한 소프트웨어를 공개할 의무도, 다른 제조사와 함께 써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당시 모바일 단말 전략을 감안하면 여러 제조사와 통신사, 수많은 이용자와 개발자들의 폭 넓은 지지를 받는 개방형 전략을 택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또한 다른 제조사는 물론 개발자도 협력하려 들지 않았을 테고요. 최악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삼성이 어느 정도 미래를 내다봤다면 굳이 안드로이드가 아니더라도 좀더 목표를 뚜렷하게 설정했어야 옳습니다. 이기태 전 삼성 부회장이 머니 투데이와 했던 인터뷰에서 2000년 초반부터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을 상당수 보유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래도 당시 삼성의 체질은 하드웨어 제조사에 머물렀고 전체적인 비전을 두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개발자를 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작 가치 있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력들이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적어도 ‘바다’ 플랫폼 같은 목표가 있는 프로젝트가 그 당시부터 전개되었다면 이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달라졌을 테지요. 그렇게 했다면 적어도 하드웨어 제조 업체에게 갑자기 소프트웨어 전문 업체로 체질을 바꾸라는 주장들은 나오지 않았겠지요. 허나 생존을 위해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이유라 해도 갑자기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둘 다 잘해야 할 것을 주문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느 기업이든 갑자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둘 다 잘하기는 버겁습니다. 두 환경에 쏟아부어야 하는 리소스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각 부문의 전문 기업들이 서로 잘하는 쪽으로 역할을 나누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보완하며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 IT 생태계가 자라온 한 형태였고 이는 안정적인 모델로 자리를 잡았지요. 이와 다르게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아울러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모델이 아이폰이지만, 모두가 이와 똑같은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더 큰 위험과 도박 속으로 기업을 내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결과를 두고 사후 평가 되는 지금 상황의 이야기들은 결국 선택을 안 한 자에 대한 잘못과 선택을 한 자에 대한 칭찬으로 나뉘는 듯 싶습니다. 유정식님이 쓴 <소니의 전략은 정말 멍청했나?>에서 CTI의 대여업 이후 갑작스레 영화 감상의 욕구가 커져 VHS 방식이 흥하고 베타캠이 망해 버린 불확실성에 대한 소니의 실패 사례를 말했지만, 스마트폰 시장도 아이폰 이후 급격히 산업이 변화하면서 불확실성으로 인한 또 다른 성공 사례를 이야기로 전하고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비디오 테이프 산업과 한 가지 다른 점은 어느 한쪽만 성공하고 다른 쪽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지금 그와 다른 생태계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마트폰 분야에서 유일한 생태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생태계들이 서로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것이지요. 어느 한쪽이 무조건적인 포식자도 아니고 다른 생태계를 견제하면서 서로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데, 이는 지금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구글처럼 운영체제 개발사의 역할과 삼성 같은 제조사의 역할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특수성을 배제한 채 의견이 갈리는 주장에 기반한 과거의 선택을 두고 날리는 비판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구글이 아니라 삼성이나 다른 곳에서 안드로이드를 샀다면?’이라는 가정을 올려 놓고 상상해 보시지요.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상상만 해도… ^^;

덧붙임 #

1. 그렇다고 하드웨어 제조사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필요 없다는 말로 이해하지 않으셨기를… 결국 좋은 하드웨어를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기술도 필요합니다.

2. 삼성도 스마트 장치의 생태계에 대한 종합적인 비전을 제시할 때가 됐습니다. 특정 생태계를 깨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 포식자의 인식을 버리시고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의 구축을 고민해야 할 때인 것이지요. 모두가 목표 의식을 공유하는…

3. S급 인재 홀대를 지적하면서 앤디 루빈을 잡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예로 떠오르는 것 같은데, 앤디 루빈을 잡아 두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던 것은 구글이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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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sol Written by:

21 Comments

  1. DENON
    2011년 8월 20일
    Reply

    삼성이 거절할만하다고 생각하는이유가 그당시 안드로이드는 정말 안좋았다고 하네요

    • 칫솔
      2011년 8월 21일
      Reply

      당시에 개발 중이었기 때문에 완성도는 낮았겠지만, 다른 필요성이 있었으면 샀을 수도 있겠지요. ^^

  2. 비전이 없었던거죠
    2011년 8월 20일
    Reply

    창의적이고 이미 구글메일,지도,독스등 플랫폼이 자리잡고있는 회사니까 인수했겠죠. 삼성은 그에 비해 모바일 분야 비전이 없었던거죠. 솔직히 말해서 삼성이 인수했어도 지금의 안드로이드는 탄생하지 못했을겁니다. 그냥 비실비실 아류작으로 남았겠죠 (마치 삼성 지금 허둥지둥 만든 00 OS처럼_=)

    • 칫솔
      2011년 8월 21일
      Reply

      모바일 분야의 비전 부재보다 갑작스러운 변화도 이유겠지만, 아무래도 자기 자리를 유지하는 쪽의 이유가 더 컸지 싶습니다. 그래도 잘 하는 것은 계속 잘 하고 있으니까요. ^^

  3. Bigboss9
    2011년 8월 21일
    Reply

    삼성이 만약 인수를 했다면 소프트웨어에 관심과 투자 의지가 있었다는 것 아닐까요?
    거절과 투자는 뗄 수 없다고 봅니다.

    • Bigboss9
      2011년 8월 21일
      Reply

      게다가 안드로이드가 당시에 아무리 안좋다 하더라도 삼성은 안드로이드보다도 못한 소프트웨어 조차 없었죠. 그정도로 앞을 내다보는 능력을 기대하기 보다는 그만큼 아이폰의 영향력이 컷다고 보는게 맞을 듯

    • 칫솔
      2011년 8월 21일
      Reply

      관심과 투자 정도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사활을 걸고 전투를 치를 비장한 각오까지 내비칠 만큼 위기 의식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지요. ^^

    • 지나가다
      2011년 8월 21일
      Reply

      2004년도에는 RTOS 피쳐폰 중심이었는데요. 기술 발전에 따른 OS별 로드맵은 그 당시 OS별로 다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각각을 대비하고 있었을 것이구요. 물론 자체 OS도 진행 되고 있었을 겁니다. 그 이상의 투자를 감행할 위기감이 없었다는게 맞지만 그 투자가 안드로이드로의 투자일지는 사실 의문인거죠.

  4. 2011년 8월 21일
    Reply

    여러모로 삼성은 인수안하길 잘했죠 ^^

    • 칫솔
      2011년 8월 26일
      Reply

      인수 안 한 것도 잘 한 일이고, 자기 몫을 잘 해내기도 했죠. ^^

  5. 2011년 8월 21일
    Reply

    삼성은 과거 ‘퀄컴’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걸로 아는데…
    삼성 + 퀄컴 + 안드로이드 이라면 놀랄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산다고 다 성공하는건 아니지만^^)

    • 칫솔
      2011년 8월 26일
      Reply

      산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그말이 맞을 거야~ ^^

  6. 2011년 8월 21일
    Reply

    관심갖고 있던 주제에 대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삼성이 인수했다면 칫솔님 예측대로 지금의 개방형 모습도 아니었을거고
    완성도도 장담못했을테고 성공적이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미 그 당시 내부적으로 ‘바다’개발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인수 안했을 수도 있을테구요. 어차피 하드웨어 팔기 위해 깔리는 소프트웨어에
    큰 관심이 없는 제조업체이니 중복투자 혹은 리스크테이킹의 이유는 없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

    • 칫솔
      2011년 8월 26일
      Reply

      아마 소프트웨어에 큰 관심이 없는 상황이라기보다 준비하는 동안 변화가 빨랐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어쨌든 삼성도 스마트 생태계에 대한 전체적인 비즈니스를 바꿀 때가 되기는 했어요. 고맙습니다. ^^

  7. 알군
    2011년 8월 22일
    Reply

    삼성으로썬 그 당시 스마트폰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못했을꺼라고 생각됩니다.

    ‘피쳐폰 잘 팔리는데 왠 스마트OS? 업무용이나 기업용으로 조금 팔리는 그런거 윈모바일 로 충분해!’

    기본적으로 스마트폰OS 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꺼라고 지레짐작합니다. -_-;;
    아이폰에 발등찍히고 기껏 부랴부랴 옴니아 시리즈 내놓고 욕바가지로 먹고는 뒤늦게 스마트폰 중심으로 로드맵을 수정했으니깐요
    .
    하드웨어 제조사로써 OS 를 공개해서 타 제조사에게까지 플랫폼을 개방한다는 생각은 발상조차 못했을테고 그에 대한 수익모델 역시 생각지 못했겠지요.

    구글의 입장에서는 스마트폰의 OS의 보급으로 자신들의 검색서비스의 영역을 넓힌다는 모바일시장의 비전을 보았기에 지금의 안드로이드가 있는 거겠죠.

    앤디루빈으로써도 삼성이 인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삼성에게 고마워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삼성이 인수했다면 지금의 안드로이드는 결코!!! 있을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안드로이드 사용자 입장에서도 삼성이 인수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___-;;

    • 칫솔
      2011년 8월 26일
      Reply

      구글 검색 뿐만 아니라 플랫폼 확장으로도 모바일은 구글에게 참 넓은 세상이 아니었나 합니다. 또한 안드로이드 성공으로 많은 이들이 배우고 얻은 것이 많았으리라 봅니다. ^^

  8. 2011년 8월 25일
    Reply

    아~~~~
    좋은 정보 얻어갑니다.

    • 칫솔
      2011년 8월 26일
      Reply

      고맙습니다. ^^

  9. 2011년 8월 29일
    Reply

    알게모르게 중도포기한 프로젝트가 상당수 되는걸로 알려져있죠…

    다들 걱정하는건…안드로이드가 만약 삼성에 들어갔다면…

    그꼴 날까 걱정하는것뿐이겠죠

    • 칫솔
      2011년 8월 29일
      Reply

      아마도 그런 걱정이 많겠지요. ^^

  10. ㅇㅁㅇ
    2011년 8월 30일
    Reply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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