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과 ‘짝퉁’의 또다른 쓴맛

0. 2주 전쯤 아주 짧은 일정으로 중국 선전(심천, 深圳)을 다녀왔다. 중국의 다른 지역은 여러 번 방문한 반면 선전을 이제야 가본 건 나로서도 조금 의외다. 선전이 IT 제품의 요람이 된지 오래된 터라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다녀오기로 마음 먹고 있던 차에 반가운 기회가 생긴 것이다.

1. 하지만 선전을 방문한 목적은 이곳에 터를 잡은 IT 기업의 본사 탐방 때문이다. 때문에 정해진 일정을 따라야 했던 탓에 이곳을 여유롭게 둘러보긴 힘든 상황이었다. 그나마 머물던 숙소가 선전에서 가장 큰 전자상가 밀집 지역인 화창베이(또는 훠꽝베이)였던 터라 짬을 내 이곳의 풍경을 볼 수 있던 것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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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록 화창베이 답사는 짧았으나 그 여운은 강렬하다. 화창베이의 큰 길가의 건물들은 제법 깨끗해 보이지만, 큰 거리에서 안쪽으로 한 건물만 더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위 사진에서 보이진 않는, 오른쪽에 있는 허름한 건물도 그 다른 세계 중 하나다. 세상의 모든 제품이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장면을 보았으니까.

3.  입구에 들어설 땐 액세서리 매장들만 보여 몰랐는데, 모퉁이를 하나 돌아 들어가자 손톱만한 마이크로 SD카드를 포장재 안에 하나하나 넣는 장면이 보인다. 심상치 않은 모습이라 여기며 안쪽으로 들어가니 우리네 옛 시장 같은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통로를 따라 양옆을 두리번 거리며 보니 빼곡히 최신 스마트폰과 패키지를 쌓아놓고 그것을 하나씩 포장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누군가는 계산기를 두들기고, 주문을 하는 건지 받는 건지 전화를 붙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보인다. 시장 통로를 빙돌아 금세 빠져나왔지만, 이곳에서 본 장면 만큼은 앞으로도 계속 남을 듯하다.

4. 이곳에 있는 거의 모든 제품들은 이곳에서 조립된 가짜 제품, 그러니까 ‘짝퉁’이다. 가짜 제품이라 해도 모양도 그럴 듯하고 작동도 된다. 물론 진품과 비교해 모든 부품이나 품질까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짝퉁 제품들도 수요가 있기에 제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은 꺼리낌없이 짝퉁 제품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이곳의 문제 의식을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는 이러한 유사 제품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더 놀라운 사실이 숨어 있다. 하드웨어의 복제가 가능한 기술과 인력, 그리고 비슷한 구성을 할 수 있는 모든 부품이 이곳에 모여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무엇이든 복제한다고 보겠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세계 최고라 해도 이상할 게 없고 이곳을 다녀간 이들은 이구동성이다. ‘네가 만들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선전으로 가라’는 말은 더 이상 우스갯 소리로만 받아들일 말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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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래도 막상 짝퉁을 사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화창베이 중심 거리를 돌아다녀보면 샤오미 간판이 있는 매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얼핏보면 정상적인 매장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마저 가짜다. 샤오미는 선전에 정식 매장을 두지 않고 있다. 고로 이곳에서 사는 물건도 모두 가짜다. 심지어 정품 확인을 위한 홀로그램과 정품 고유 번호까지 모두 복제해 넣었다. 재밌는 사실은 정품 확인 사이트에서 짝퉁의 고유 번호를 넣으면 이 고유번호가 정품은 맞으나 네가 몇 번째 조회한 사람이라고 뜬다는 점이다. 200번 이상 조회된 고유 번호도 있다.

6. 어쨌거나 선전의 짝퉁 생태계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짝퉁을 쓰는 순간에 속은 엄청나게 쓰릴 것이고 가장 사악한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그러나 짝퉁이라고 무시하고 비웃을 문제가 아니다. 짝퉁을 만들어내는 저 거대한 생태계가 계속 짝퉁만 만들어 내진 않을 테니까. 그 안에서도 다른 무엇인가가 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아이러니가 있지 않나.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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