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제도 수용 못하는 낡은 잔재, 관세청 전자통관시스템

외국에서 직접 제품을 구매하는 이른바 ‘직구’는 제도의 개선으로 인해 예전보다 편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외국 쇼핑몰에서 주문하는 방법과 배송대행에 필요한 정보를 넣는 것만 익히면 어지간한 물품을 국내에서 주문하듯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직구는 국내에서 주문하는 것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 반드시 수입물품신고를 해야만 하는 절차가 있다는 점이다.

수입물품신고에 관한 절차는 배송을 처리하는 업체가 대신 행정처리까지 대행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을 것이다. 수입물품을 신고하기 위해선 이용자가 어떤 물품을 어디에서 얼마에 산 것인지 같은 구매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야 하지만, 그와 다른 또 다른 정보도 입력해야 한다. 외국에서 물품을 구매해 들여오는 이용자의 개인 정보다. 이 개인 정보에는 이름이나 주소, 전화번호 뿐만 아니라 주민등록번호도 포함하고 있다. 지난 8월 7일부터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할 수 없는 관계 법령이 시행중이므로 원칙적으로 이 업체들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해선 안되나, 아이파슬처럼 외국 법인의 배송 업체들은 수입물품신고와 관련된 국내 법령에 따라 수입통관처리를 위해 주민번호를 수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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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 전자통관시스템, 유니패스

이에 관세청이 내놓은 다른 대안은 개인에게도 통관고유부호를 부여하는 것이다. 개인통관고유부호는 물품을 수입하는 개인이 누구인지 식별할 수 있는 개인의 고유 번호로 주민등록번호대신 수입신고서에 쓸 수 있다. 이 개인통관고유부호는 관세청의 전자통관사이트(http://portal.customs.go.kr )에서 몇 가지 정보를 입력하면 받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개인통관고유번호로 대체할 예정이므로 외국 물품을 자주 들여오는 이들은 이 통관고유부호를 받아놓는 편이 훨씬 낫다.

그런데 아마 이 글을 읽는 이들 중 일부는 전자통관시스템에 접속을 하지 못하거나 접속을 하더라도 고유부호를 받지 못할 것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최신 버전을 쓰거나 파이어폭스를 쓰면 액티브X에 가로막혀 접속할 수 없고, 크롬브라우저를 쓰면 그나마 전자통관시스템의 화면이 뜨긴 하지만 몇 개의 메뉴를 끄적거리는 것 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주민등록번호를 쓰지 않도록 개인통관고유번호를 만들었는데, 정작 발급을 받을 수 없는 희한한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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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 전자통관사이트에 접속할 때 곧바로 이와 같은 액티브X를 설치하려고 든다.

하지만 전자통관시스템에 접속하면서 어처구니 없는 경험을 겪는 이유는 단순히 액티브X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이트인지도 모르는 채로 무조건 액티브X부터 설치하라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전자통관시스템의 URL을 입력해 접속해 보면 메인 페이지는 보여주지 않은 채 이 액티브X부터 뜨게 만들어 놓았다. 무슨 피싱 사이트로 아닌 정부의 시스템이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는 게 도통 이해되지 않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런데 처음 이 사이트에 접속할 때 의무적으로 설치하려고 드는 액티브X는 정말 별게 아니다. 전자통관시스템을 그저 ‘신뢰할 수 있는 사이트’로 등록해주는 딱 하나의 기능에 불과하다. 즉 이용자가 브라우저의 설정-보안에서 http://portal.customs.go.kr 을 수동으로 믿을 수 있는 사이트로 등록하면 해당 액티브X 없이 접속은 할 수 있다. 그나마도 윈도 7과 인터넷 익스플로러 11 이하에서만 작동(IE11도 겨우 작동)하고 윈도8과 그 이상의 브라우저는 액티브X 설치만 반복하며 아예 접속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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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통관고유번호를 쓰기 위해 깔아야 할 액티브X도 많은 데다 충돌도 많다.

물론 전자통관시스템에 접속하더라도 고유통관부호를 받기위해서 깔아야 할 액티브X의 종류는 은행권 사이트를 이용할 때 필요한 액티브X에 버금가는 수준이므로 그 다음 설명은 생략해도 알만할 것이다. 이 시스템에 자주 들어갈일 없는 개인은 공인인증서로 개인 인증을 하기 위해 설치해야 하는 것일 뿐더러 고유통관부호를 받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여러 번 액티브X 오류를 경험한 뒤로는 이 사이트에 대한 믿음이 그닥 내키지 않는다. 결국 처음 구축된 구닥다리 시스템을 지금 달라진 환경에 맞춰 발전시키지 않은 채 운영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관세청이 장기적으로 주민등록번호 대신 개인통관고유부호를 수입신고로 대체할 계획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낡은 시스템은 이용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설득도 되지 않는다. 보안을 더욱 강화한 운영체제와 브라우저를 쓰는 이용자들이 전자통관시스템을 쓰기 위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지금이라도 전자통관시스템을 관리하는 그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윈도 8과 인터넷 익스플로러 11이 깔린 PC에서 그 사이트에 접속해보길 바란다. 액티브X를 빌어 강제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이트로 등록하도록 요구하기보다 스스로 신뢰를 갖춘 환경부터 먼저 변화하는 것이 언론을 통해 개인통관고유부호의 발급방법을 알리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라는 걸 깨달을 지름길일 테니까.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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