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음반을 둘러싼 씁쓸한 특허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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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음반은 데이터 입출력 기능을 없애고 복제를 못하도록 DRM을 적용한 음악을 플래시 메모리에 담은 일종의 MP3 플레이어로써 종전 CD를 중심으로 한 음반 시장의 붕괴에 따라 차세대 디지털 음반으로 거론되고 있는 모델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샘플에 가까운 전자 음반이 나오는 단계로 아직 시장 규모에 대해 논하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시장도 아닌 터라 메모리 저장 장치나 MP3 플레이어, 음반 업체 등이 관련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전자 음반의 특허 문제로 작은 소란이 일고 있다. 플레이 디스크와 디지털 디스크라는 전자 음반을 내놓고 있는 한국 액센과 이지맥스가 전자 음반의 특허권을 둘러싸고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두 업체는 2005년부터 관련 제품에 대한 실용신안을 등록하고 기술을 개발해 왔는데, 지난 2월 말 한국 액센의 ‘저작권에 의해 보호된 데이터의 재생장치’라는 실용신안이 정식 특허로 인정되자 이지맥스가 특허 취소 소송을 제기해 7월 9일 승소했고, 며칠 전 한국액센이 이지맥스에 대해 판매 금지 요청 및 법적 대응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감정 싸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화해가 없는 한 두 기업의 특허권에 대한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두 기업의 싸움이 어떻게 되어 가든지 간에, 또는 누가 특허권을 갖든 간에 상관없이 나의 관심은 도대체 어떤 특허길래 이리 싸울까 하는 점이었다. 때문에 특허청 홈페이지에서 두 회사가 내놓은 특허를 찾아봤는데, 이런 것도 특허가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과 이런 것도 특허가 되는 현실에 대한 씁쓸한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직접 아래 두 업체의 신청서에 담긴 도안을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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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디스크의 특허 도안

나는 처음에 두 업체가 낸 특허와 실용신안이 보호된 컨텐츠를 재생하는 아주 독특한 방법이나 기술, 알고리즘을 담은 것인 줄 알았다. 아주 자세한 기술을 적시하지는 않더라도 해당 기업이 보호된 데이터를 만드는 방법이나 이 컨텐츠를 플래시 메모리에 저장하는 방법, 컨트롤러의 어떤 로직으로 이를 재생하는 방법 등에 대한 원리 정도는 설명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신청 내용이나 도면 어디에도 그런 건 없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건 그냥 USB 단자 없는 MP3 플레이어의 변형 정도로만 보인다.  도면은 생색내기에 불과했을 뿐 고작해야 아이디어를 구수하게 풀어내 점수를 딴 것에 불과한 특허를 두고 벌이는 두 업체의 공방은전 정말 꼴사납게만 비치고 있다.

어느 기업이든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아이디어와 기술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많은 투자를 통해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것이 더 나은, 더 편한, 더 가치있는 기술의 진보를 이룬다면 또는 이룰 수 있다면 당연히 그 기술을 보호해야 하고 권리를 보호를 받아야 한다. 물론 두 업체가 투자를 하지 않았거나 기술을 개발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전자 음반을 개발한 두 기업이 투자를 해 기술을 만들었다면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 단지 특허를 요구할 명분은 양쪽 다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번 전자 음반 특허의 신청 내용과 도면을 보면서 어디에서 특수성을 찾아야 할 지 난감하고,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실체가 없어도 기술적인 독창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으면 특허를 줄 수 있다지만, USB 단자 뺀 MP3 플레이어가 특허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자. 기업은 특허의 권리를 누릴 만한, 특허청은 특허를 내줄 만한, 소비자는 특허를 넣은 장치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만한 가치인지를 말이다.

지금 이 특허를 두고 벌이는 싸움을 계속할수록 두 기업의 출혈만 더 심해지지 않을까 싶다. 한쪽은 앞서 특허를 소유했던 기업으로써 권리를 박탈당해 잃을지도 모를 이익을 원래대로 보전할 수 있도록 권리 회복을 위해서, 다른 한쪽은 지난 몇달 동안 특허에 의해 억압당하며 잃어버린 자기 이익에 대한 보상을 위해 필요 이상의 돈과 시간을 쏟을 것이 뻔하다. 앞서 얘기한대로 양쪽 모두 법적인 조치를 통해 보상을 받겠다 했는데 그럴 돈과 시간이 있으면 취소된 특허를 보강할 기술을, 특허를 얻지 못했던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 정도 기술’이라고 평하면 꽤 실례가 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고작 이것 같고 온 몸에 찢겨진 상처를 내고 너덜해진 누더기 옷을 입어가면서까지 싸울 명분을 내세우기에는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덧> 이번 싸움의 단초를 만든 특허청은 이번 싸움을 보고 각성하기를. 특허 인정과 번복을 통해 두 기업이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고, 소비자는 언젠가 그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문제를 사소하게 여기지 말고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판단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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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sol Written by:

4 Comments

  1. trr
    2007년 7월 14일
    Reply

    마이콤…. 재미있네요. 아직도 저런 용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니.

    • 2007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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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허에 예전 부품 용어를 쓰는 경우는 여전히 많습니다. 아마도 이해가 쉬워서(?) 그럴 수도…-.ㅡㅋ

  2. 2007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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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저거는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일단 저는 뭐 특허를 떠나서..
    저거는 CD보다 음질도 안좋고
    따로 추출해서 MP3에 넣을수도없고(혹시 넣을 수 있나요?)

    저는 이거 쓰레기라고 생각이 듭니다..

    • 2007년 7월 15일
      Reply

      입출력 단자가 없으니 넣고 뺄 수가 없답니다. -.ㅡㅋ

      이 장치가 비판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1. 좀 복잡한 디지털 장치를를 잘 다루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재생만 하는 간단한 장치가 필요하다.
      2. CD와 달리 사자마자 바로 듣는다. CD플레이어가 있는 곳까지 갈필요가 없다.

      정도는 생각해봐야 한답니다. 더구나 요즘은 CD를 더 안듣기 때문에 곡을 쉽게 들을 수 있는 차세대 장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요. 다만 음질이나 부가 기능(가사 출력 정도) 문제는 지속적인 개선을 요구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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