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역사 신문 10-CP/M, 개인용 운영체제 시장 석권

오늘은 1978년과 1979년 두 해의 이야기를 묶었습니다. 이 때는 큼지막한 뉴스보다는 자잘한 뉴스가 좀 많습니다. 인텔이 무어의 법칙을 실현하면서 8비트가 아닌 16비트 프로세서를 내놓았고, 많은 인기를 누린 애플 2+가 등장하기도 했고요. 요즘도 운영체제가 업계 이슈가 되는 것처럼 이 때도 개인용 운영체제인 CP/M이 큰 뉴스를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CP/M은 오래가지 못하죠. 개리킬달의 오판 또는 실수라는 것에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데, 어쨌든 그가 지금 MS와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사실이니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가 궁금하네요. ^^


[1978년] 인텔, 개인용 컴퓨터를 위한 8086 프로세서 발표
인텔이 개인용 컴퓨터를 위해 16비트 8086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8086은 8비트 프로세서인 8085를 기본 베이스로 해 만든 것으로 3미크론 선폭기술로 2만9,000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했으며 데이터를 16비트로 전송하고 처리하는 완벽한 16비트 프로세서다. 8086은 4.77MHz의 속도를 내며 최신 버전의 1MB의 메모리를 제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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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8086(사진 출처 : http://www.sheppard.ru)


8086의 개발 기간
8086의 개발 기간은 3주이며, 개발 인력은 엔지니어 2명뿐이었다. 8086의 모델이 된 8085는 인텔이 1976년에 발표했고 5MHz의 클럭으로 작동하는 8비트 프로세서였다. 트랜지스터 수는 6천500개, 3미크론 기술로 개발되었고 5볼트로 작동했다.
참고로 최초의 16비트 프로세서는 1974년에 내셔널 세미컨덕터가 만든 PACE다.

[1978년 말] CP/M,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 석권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 체제인 CP/M(Control Program for Microcomputer)이 최근 개발되고 있는 거의 모든 8비트 컴퓨터의 운영체제로 각광 받고 있다. CP/M은 1976년 컴퓨터 개발업체인 임사이(Imsai)가 미 해군 대학원 개리 킬달 교수에게 CP/M 채택에 관해 전화로 연락한 이후 개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개리 킬달 교수는 중앙처리장치와 상관없이 시스템의 입출력을 관리하는 BIOS(Basic Input Output System)에만 집중하는 CP/M을 개발했는데, 그 뒤로 개인용 컴퓨터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CP/M의 보급이 가속화 되었다. 개리 킬달은 CP/M의 성공적인 보급과 함께 엄청난 부를 쌓았고, 인터캘라틱 디지털 리서치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인터캘라틱 디지털 리서치는 운영체제 위주의 사업을 펼치묜소 더욱 CP/M의 보급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개리 킬달은 CP/M을 개발하기에 앞서 미해군 대학교 재직 시절 인텔의 4004를 입수해 이를 위한 PC/I로 개발했고 인텔이 8008을 내놨을 때는 CP/M의 원조가 되는 PC/M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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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나온 DOS는 CP/M과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사진 출처 : http://www.digibarn.com)


그날 날씨가 나빴더라면~
MS-DOS가 나오기 이전에 CP/M은 시장에서 가장 확실하게 인정받는 운영체제였다. 문제는 개리 킬달이 자기 사업에 대해 너무 자만한 탓에 보다 생각보다 일찍 ‘쪽박’을 차게 됐는 점이다. IBM PC용 CP/M 개발을 의뢰하러 온 IBM 관계자들은 개리 킬달이 자가용 비행기로 좋은 날씨를 즐기면서 자신들을 기다리게 한 것에 격분해 그 뒤로 두 번 다시 디지털 리서치에 전화도 걸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IBM 관계자들을 ‘생까기’ 이전에도 개리 킬달은 IBM PC용 CP/M에 대한 권리를 자신의 소유로 인정해 줄 것 등 여러 가지를 요구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가 프로그래밍 언어 사업에 치중할 것이라는 개리 킬달의 오판 때문에 운영체제 사업에 손을 댄 MS가 때마침 디지털 리서치에 등 돌린 IBM을 잡는 빌미를 안겨줬다. 만약 그날 날씨만 나빴어도 MS의 운명은 180도 바뀌었을 것이다.
참고로 IBM은 1983년 4월 IBM PC를 위한 CP/M-86을 주문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쓰였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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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킬달이 조금만 성격이 좋았더라면 더욱 큰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1978년] 애플, 애플용 저장장치 디스크 2 발표
애플사는 1978년 6월 가전 제품 전시회에서 값이 싸고 쓰기 쉬운 미니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인 디스크(DISK) 2를 발표했다. 디스크 2는 카세트 테이프로 기록하던 기존 방식과 다르게 원형의 자기 면에 100KB가 넘는 자료를 저장할 수 있는 장치다. 100KB는 현재 시점에서는 매우 큰 용량이다. 애플사는 DISK 2를 생산하기 위한 2명의 전담 직원을 채용했고 매일 30개씩 제작했다.
애플사는 이와는 별도로 애플 2 사용자를 위해 회사와 다우존스 시장에 대한 전화 서비스를 개시했다고 전했다.


디스크 2는 애플의 영양제
디스크 2가 나온 뒤에 애플용 소프트웨어가 급속히 늘어났다. 덕분히 애플사는 급성장하고 디스크 2는 애플보다도 더 없어서 팔지 못하는 물건이 되고 만다. 결국 애플사는 디스크 2와 애플 2의 엄청난 판매량과 매출 때문에 주식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1979년] 내부 버스 개선한 인텔 8088 발표
인텔이 16비트 8086 프로세서를 현실적으로 개선한 8088을 발표했다. 8088과 동일한 16비트 크기의 레지스터를 가지고 있는 8088은 8086의 외부 bus를 8비트로 설계해 발표했다. 이와 같은 조치는 8086의 16비트 데이터 전송 때문에 다른 8비트 주변기기와 프로그램 등에서 호환이 되지 않는 문제점이 크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8088은 4.77 또는 8MHz로 동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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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PC? IBM은 아닌데…
1981년에 나온 IBM 5150PC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일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5150PC는 최초의 PC가 아니다. 심지어 IBM 안에서도 최초는 아니다.
맨 처음 PC라는 용어가 쓰인 것은 1968년 HP의 911A PC라는 계산기 광고에서다. 이때 ‘PC’라는 단어가 처음 쓰였지만 엄밀히 따져 계산기 개념의 컴퓨터여서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 PC 개념의 제품이 판매된 동시에 인정받는 예는 1971년의 켄백(Kenbak)-1이다. 물론 당시 금액으로 구입은 물론 유지도 힘든 컴퓨터지만, 최초의 PC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뒤로 1974년의 알테어 8800과 1976년 애플 1의 초기 모델 그리고 상업화에 성공한 1978년에 애플 1 등이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를 먼저 썼다. 하지만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PC 제조업체가 100개 이상 있는 데다 이미 수십억 원의 매출도 올리는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었으므로 모든 제품을 열거하기는 어렵다.
다만 다른 컴퓨터는 폐쇄적인 반면 IBM PC는 모든 구조를 개방한 덕분에 오늘날 쓰고 있는 PC의 표준이 되었다.

[1979년] 애플, 메모리 보강한 애플 2+ 시판
애플컴퓨터 사는 애플 2의 메모리를 48KB로 확장한 애플 2+를 6월부터 시판한다고 밝혔다. 이번 애플 2+를 발표함으로써 애플은 16, 32, 48KB 등 필요에 따라 메모리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고 스크린 편집이 더욱 쉬워졌다. 애플 2+는 메모리 확장과 더불어 베이식과 가동 부팅 롬을 포함하고 있으며 소비자 가격은 1,195달러이다.
애플컴퓨터 사는 애플 2+와 함께 사일런트타이프(SilentType)라는 프린터를 판매한다. 사일런트타이프는 트렌드컴(TrendCom)의 모델 200이라는 프린터를 애플컴퓨터의 이름으로 판매하는 제품이며 가격은 600달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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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력해진 성능과 디스크 드라이브로 큰 인기를 끌었던 애플 II+(사진 출처 : http://apple2.org.za)


웜의 출현
제록스 PARC의 존 쇼크(John Shoch)와 존 후프(Jon Hupp)는 네트워크의 작업을 느리게 만드는 웜이라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1979년에 찾아냈다.

[1979년] 헤이즈, 애플용 마이크로모뎀 100 출시
헤이즈(Hayes)가 애플용 내장형 모뎀을 출시했다. 헤이즈가 출시한 마이크로모뎀(Micromodem) 100은 최저 속도에서 1초에 100개의 문자를 보낼 수 있고 최고 속도로 작동하면 최고 300bps로 작동한다. 이 내장형 모뎀은 신호에 따라 자동으로 모뎀으로 작동하거나 전화기로 신호를 보내는 기능을 갖고 있다. 모뎀을 이용한 전화 걸기와 통신은 컴퓨터에서 프로그램 조작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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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도시락이란 별명을 가진 모뎀으로 PC에서 통신을 즐기는 기쁨이 남달랐다.(사진 출처 : http://www.decodesystems.com)


외장형과 내장형 모뎀
헤이즈 모뎀 이전에 나왔던 모든 모뎀은 외장형이었다. 하지만 헤이즈의 모뎀 이후로 대부분 내장형으로 나왔고 가장 많이 보급된 덕분에 산업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헤이즈 이전에도 1973년에 웨스턴 유니콘 등에서 100BPS 모뎀을 개발한 기록이 있다.

[1979년] 모토롤라,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MC68000 개발
모토롤라가 마이크로프로세서 MC68000을 발표했다. MC68000은 6만8,000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되어 있다는 뜻이며 클럭은 8MHz로 작동한다. 모토롤라는 16비트 데이터 전송이 많이 쓰이는 현실을 감안해 초기 32비트 프로세서의 개발을 3가지로 나누었다. MC68000은 첫 번째 베이스가 되는 모델로 16비트 레지스터와 데이터 전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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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롤라의 MC68000. 매킨토시와 PC88 등 수많은 개인용 컴퓨터에 쓰인 CPU다.(사진 출처 : http://www.amiga-hardwa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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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sol Written by:

6 Comments

  1. 제스트
    2007년 11월 30일
    Reply

    CP/M을 10여년간 사용하며 내 젊은 시절을 같이 했다는… 그때 사용하던 시스템은 창고에 처박혀 있고…
    MC68000은 내부레지스터가 전부 32비트로 8986과는 비교가 안되는 진정한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임.

    • 2007년 12월 1일
      Reply

      오.. 제스트님. 10년이나 CP/M을 쓰셨다니 정말 멋진데요? ^^

    • 2007년 12월 5일
      Reply

      하하하~ 그냥 웃자구요~

  2. 서주현
    2011년 5월 11일
    Reply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4004,8080 처음엔 의미 없는 단어인줄 알고 외우는데 힘이 들었는데
    지금 이렇게 역사를 알고 나니 훨씬 재미가 있습니다.

    • 칫솔
      2011년 5월 12일
      Reply

      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참 어려운 분야라 저도 많이 알진 못합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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