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톡에 빠진 이유, 그리고 PC통신

얼마 전 하이텔 VT 서비스가 문을 닫으면서 안녕을 고한 PC 통신은 내게 좀 각별하다. ‘피박’이라 비아냥 대던 PC-Serv(천리안)와 ‘개털’이라 놀리던 한경 케텔(이후 ‘코털’ 코텔과 하이텔로 각각 변경), 채팅, 호롱불, 개오동, 판타지 동호회, 소리샘, VGA 플래닛, 하늘소와 이야기, 그리고 수많은 얼굴들이 PC 통신이라는 공통된 꼬리표를 달고서  내 기억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1989년부터 나라의 부름을 받던 1994년까지 피박과 개털은 생활의 일부였다. 채팅방에 들어가 얼굴, 나이, 성별, 직업 등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고 게시판을 통해 안부를 남겼으며, 마음 맞는 몇몇과는 동호회도 서너개쯤 만들었다. 게시판을 찾아가는 ‘go’나 글 탐색에 쓰는 ‘p’ ‘a’, 글 쓰기의 ‘w’ ‘/q’, 채팅방을 서성이는 이들을 찾는 ‘/who’와 그들을 초대하는 ‘/invite’ ‘/join’ 같은 명령어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까마는, 이 하나 하나의 명령들은 나를 비롯해 그 때의 PC 통신을 했던 이들의 즐거움이었으라.


PC통신 몰라서 못쓴다, 어렵다… 채팅방을 찾아가면 다 해결되었고, 100개 남짓 밖에 만들 수 없는 채팅방을 열어 놓은 채로 절대 닫지 않던 죽돌이와 죽순이들은 언제나 그들을 환영해 주었다. 첫 채팅, 첫 게시물의 낯설음과 설레임, 긴장은 앞서 경험을 했던 수많은 이들의 “안냥”, “어솨요~”라는 인사 한 마디에 이내 풀어지고, PC 통신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서로의 아이디를 기억하고, 다음에는 몇 시에 채팅방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으며, 게시판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PC 통신은 세계를 거미줄처럼 묶자는 www(월드 와이드 웹)라는 시대의 흐름에 굴복해야 했다. 채팅과 게시판 문화의 아이콘이었던 PC 통신은 수많은 이용자의 흡수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공급하는 방대한 아카이브로 변질되었고, 세계를 하나로 묶는 더 큰 아카이브를 표방한 www의 등장으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PC 통신을 찾았던 이들을 떠나게 했다. 그러나 이들이 떠나기에 앞서 채팅방의 죽돌이와 죽순이, 서로의 안부를 묻던 정많은 이들이 먼저 떠났다는 사실을 그 누가 눈치를 챘던가?


인터넷의 발전은 정보 공유적 측면에서는 분명히 많은 혜택을 주었으나, 개인과 개인의 유대감은 찢겨져 나갔다. 이에 뛰어난 기술을 갖춘 수많은 커뮤니티가 생겨났고, 서비스가 탄생했다. ICQ, 메신저, 버디버디 같은 개인과 개인을 이어주는 도구도 훌륭했고, 알럽스쿨과  싸이월드, 네이버와 다음 카페 같은 커뮤니티는 인터넷을 통한 사람간의 소통을 돕는데 큰 역할을 했다. 웹 2.0의 바람을 타고 확산되고 있는 블로그처럼 개방과 참여를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서비스의 등장은 그동안 소통에 목말랐던 인터넷 이용자들의 갈증을 해갈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으로 주목을 받을 만큼 인터넷은 끊임 없이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소통 방식은 꽤 무겁다. 메신저와 커뮤니티, 미니 홈피는 내가 모르는 낯선 이에게는 개방되어 있지 않고 시덥잖은 개인 이야기를 쓰려고 블로그를 운영하거나 이를 읽기 위해 그 블로그를 찾아가는 건 낭비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프로그램을 깔도록 만들었거나 업체의 안전을 위해 온갖 개인 정보를 내 스스로 써서 바쳐야 하는 것에도 신물이 난 이도 많아 아직 소통의 길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15년 전 PC 통신은 그곳에 가면 언제라도 모르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프로그램도, 툴도, 형식도 없었다. 그저 대화 상대만 있었을 뿐이다. 게시판도 얼마나 단조로웠던가. 지금처럼 화려한 스킨이나 폰트도 없이 단순히 게시물 번호만 치면 몇 줄 글만이 떴다. 그저 텍스트만 있던 그 단순한 글에도 우리는 즐겁게 웃고 떠들며 정을 나눴다. 그랬다. 정신적으로 메마른 현대인들은 그곳에서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공감하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주제도 다양했고 이야기의 무게 달랐다. 밥을 먹었냐, 잠은 잘 잤냐는 단순한 안부나, 이성이나 직장에 대한 고민까지도 이야기했다. 이야기 주제는 누구나 꺼내 놓을 수 있었으며 수많은 생각들이 그 주제에 참여하고 다양성을 양산했다.


지금 플톡에 가보라. 누군가의 지적처럼, 정말 쓰잘데기 없는 글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플톡(미투데이 포함) 같은 곳이 아니라면 어디에 이런 글을 쓸까? 쓸데 없는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던 채팅이나 게시판을 잇는 서비스가 플톡은 아닐까? 지금 일상에 대해 무엇이든 이야기 할 수 있고 그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어 가는 플톡에서 지난 날의 PC 통신을 떠올리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 수북히 쌓여가는 한 줄 글을 읽고 실시간 댓글을 다는 수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답답한 일상에 속에서 모처럼 유쾌, 상쾌, 통쾌한 기분을 즐기고 있다.


스무살 초반을 함께 한 PC 통신을 떠난 이후 그때와 비슷한 느낌. 중독이라 해도 좋다. 그때도 그랬다. 플톡은 참여하고 소통하기를 원했던 이들을 위해 하나의 길을 뚫었고 그때의 채팅과 게시판도 그랬다. 아무렴 어떠랴. 지금 수많은 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그 길을 걷지 않는가?


덧글 : 다음에는 플톡의 우려스러운 점을 적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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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sol Written by:

17 Comments

  1. 2007년 3월 14일
    Reply

    저와 같은 것을 느끼셨군요~ 확실히 통신 시절의 느낌이 있어요.

    • 2007년 3월 14일
      Reply

      ㅎㅎ~ 같은 느낌이셨다니 기분 좋은 걸요~ 우린 통했나요? 으힛~

  2. 2007년 3월 14일
    Reply

    한마디로 커뮤니케이션하기 좋았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서 유저들의 갈급함을 풀어주는 서비스에는 꼭 이런 중독들이 생겨나죠^^;; 무엇을 소통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예나 지금이나 커뮤니케이션에 목말라하는 분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이상!! 후감상 후리플도 남겼습니다^^

    • 2007년 3월 14일
      Reply

      동감입니다. 주제가 있어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주제를 찾기도 하니까요~ 후리플 고맙슴다 ^^

  3. 2007년 3월 14일
    Reply

    me2day를 모르기 때문에 일단 그 둘을 비교할 수가 없다. 다만 동류 컨셉의 서비스라고 하니 왜 블로깅을 그만두고 me2day로의 이동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만하다. 그림판과 PPT로 만들어 무척 허접..

  4. 2007년 3월 14일
    Reply

    가끔 블로그가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 섬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망망대해에 이렇게 홀로 떠 있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른 섬들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기만 하는 느낌. 어제 올..

  5. 올블로그가 플레이톡과 미투데이의 이야기로 한창입니다. 두 서비스는 모두 짧은 글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네이버나 디씨인사이드 등에서 보여지는 댓글문화를 ..

  6. 2007년 3월 14일
    Reply

    어제 밤에 플레이톡(PlayTalk) 에 관한 글을 하나 올렸었지요. 밤새 대단한 일이 벌어졌네요. 어제의 올블 이슈가 미투데이(Me2day)였다면, 오늘은 단연 플레이톡이 이슈를 점했습니다. 오늘은 생..

  7. 2007년 3월 15일
    Reply

    호롱불과.. 브가플레닛에서.. 움찔..-_-;;

    그때 대화방가면.. 뭔가 항상 두근두근 하던 느낌이 있었죠..^^

    • 2007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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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플톡이 그래요~ 마치 지나간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처럼… ^^

  8. 2007년 3월 15일
    Reply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큰 거 같아요. 덧글이 생기다 보면 그거 자체가 이야기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 2007년 3월 15일
      Reply

      우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굶주림에 허덕였나봅니다. 반갑습니다. 보르미님~ ^^

  9. 블로그를 하시는 분이라면, 메타사이트를 한번이라도 보신 분이라면, 블로그나 메타사이트를 모르는 분이라도 친구나 직장 동료를 통해서 한번쯤은 들어봄 직한 것이 바로 ‘플레이톡’이다.그..

  10. 2007년 3월 17일
    Reply

    리포터 : 벗님, 오랜만입니다. 벗님 : 네,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리포터 : 저야, 뭐 불러주시지 않으면 항상 칩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밥줄 끊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벗님..

  11. 2007년 3월 18일
    Reply

    플레이 토크와 미투데이 어느 날 갑자기 미투데이가 블로그 스피어 이슈로 급부상하더니 순간 플레이토크로 이슈가 옮겨갔다. 미투데이가 초대장 발급에 따라 회원가입을 받을 때 플레이 토..

  12. 2007년 3월 19일
    Reply

    해보고 싶어지는데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아까 낮에 금테톡 7회 들으니 하이텔 시절 이야기를 하더군요.
    http://www.alpakorea.com/archives/14
    어감상 플레이톡 플톡 이게 발음이 좀 불편하네요…
    관객모독 이렇게 지으면 어떻까요?
    쥬니캡님 블로그타고 따라왔습니다. 자주 오겠습니다.

    • 2007년 3월 19일
      Reply

      아.. 아거님이 오실 줄 몰랐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렇잖아도 아거님 글 읽고 블로그에 댓글을 걸었습니다(만, 나타나지를 않네요 ^^). 잊어먹지 않으려고 링크도 걸어뒀으니 자주 들러 배우겠습니다.
      우리끼리는 관객모독이라고 해도, 그쪽에서는 여전히 플레이톡, 플톡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미 집단성이 갖춰진 형태에 대해 뭐라고 한들 결국 지나가는 불평에 지나지 않겠지요. ^^ 그곳은 밤이겠네요. 편안한 밤을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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