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드(CAD), 가상 현실과 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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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현실을 가장 많이 쓰는 분야는?’

이런 질문의 답은 뻔하다. 게임 아니면 영상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즐겁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을 수록 가상 현실용 하드웨어를 보급에 유리해지고, 이에 따라 대중화라는 가장 중요한 업계의 공통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하지만 소비형 콘텐츠만이 가상 현실에 적합한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상 현실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다른 분야의 노력도 만만치 않아서다. 아마도 게임이나 영상으로 대중화라는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가상 현실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들이나 사례들을 만나면 반가운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가상 현실을 도입하는 게 맞는지 아닌 지 그 결정을 위해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며 고민하는 분야도 어딘 가에 있을 테지만, 반대로 경쟁적으로 도입을 독려하는 분야도 있다. 도입 경쟁을 부추기는 분야 속에 CAD(Computer Aided Design)도 찾을 수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생각은 의외는 아니라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가상 현실은 입체적인 공간을 가진 가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인 만큼 그 자체만 놓고 보면 3D나 다름 없으니까. 가상 공간 안에서 표현되는 대부분이 입체적 형상이므로 기본적인 3D 구조를 가진 CAD로 설계한 것을 가상 현실에서 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듯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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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드웍스 월드 2017에서 비주얼라이즈 VR로 건설 기계을 검토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하지만 의외로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도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당연하지 않은 상황일 때가 많다. 3D 설계도 그렇다. 대부분의 3D 디자인 도구가 평면 모니터 환경을 기준으로 삼아 작업하고 있기에 이를 가상 현실로 옮기는 것은 또 다른 이유와 기술을 요구 받는다.

흥미롭게도 다쏘시스템즈과 오토데스크 같은 3D 설계 분야를 이끄는 업체들은 거의 동시에 비슷한 이유와 비슷한 접근 방식을 골라 이를 설명하는 중이다. 사실 3D 설계용 도구 시장에서 가상 현실에 본격적으로 접근한 것은 지난 해의 일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들의 말 수가 늘었다. 이는 이야기 꺼리가 늘었다는 것이다. 가능성에 대해서만 열심이 입을 터는 게 아니라 사례나 기술을 통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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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한번으로 솔리드웍스 CAD 데이터를 가상 현실에서 검토할 수 있게 만든 테크비즈(TechViz)

다쏘시스템즈의 가상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2월 초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솔리드웍스 월드 2017에서 들었다. 다쏘시스템즈는 솔리드웍스의 3D 데이터를 가상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비주얼라이즈 VR을 통해 설계된 데이터에 대한 검토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설계자는 평면 모니터 대신 가상 현실이라는 환경에서 실물처럼 구현된 설계물을 둘러보며 수정할 부분을 직접 점검하는 방향을 잡았다. 아직까지 가상 현실을 이용한 검토 단계에 머무른 듯한 인상이다.

그런데 다쏘시스템즈의 솔리드웍스 비주얼라이즈 VR 구현을 위해선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3D 설계 도구인 솔리드웍스 자체에서 가상 현실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3D 오브젝트를 만들어 3D 게임 엔진으로 알려진 유니티로 부른 뒤 이를 처리해 가상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본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방법의 일부를 활용한다.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솔리드웍스의 작업 환경을 단순화하는 도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솔리드웍스 월드 2017의 기업 전시관에 자리 잡은 프랑스 업체 테크비즈(TechViz)는 솔리드웍스로 작업한 3D 설계 데이터의 변환이나 유니티 엔진 작업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가상 현실에서 검토할 수 있는 테크비즈XL을 전시했다. 테크비즈XL은 솔리드웍스로 작업한 단순한 부품 정도가 아니라 건물이나 공장 같은 설계 도면 전체를 불러와 가상 현실 안에서 실제 크기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가상 현실 컨트롤러를 활용해 각 부분의 작동 상황을 시뮬레이트까지 할 수 있다. 이를 솔리드웍스에서 버튼 한번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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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D 업계를 대상으로 엔지니어링 VR 세미나를 개최한 오토데스크 코리아

다쏘시스템즈의 솔리드웍스 기반 가상 현실 구현 방법은 이처럼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다쏘시스템즈의 방식은 복잡하지만 비용이 적게 들고, 테크비즈는 과정은 단순한 반면 비용이 더 드는 점에서 일장일단을 갖고 있다.

오토데스크의 VR 솔루션에 대해선 솔리드웍스 월드 참관 일주일 뒤 서울에서 들었다. 지난 해 말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했던 오토데스크 행사에서 발표한 엔지니어링 VR 관련 내용을 국내에 전하기 위해 오토데스크 코리아에서 준비한 작은 기술 설명회였다. 장소나 참석 인원 면에서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가상 현실 트렌드와 오토데스크 솔루션, 이를 체험할 수 있는 데모까지 준비하는 등 현장 실무에 적용 가능하다는 점을 이해시키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오토데스크의 엔지니어링 VR은 가상 현실에서 구현한 CAD를 가리키는 오토데스크 용어다. 그런데 부품이나 건축 설계는 물론 공장 자동화와 시뮬레이션 등 엔지니어링 영역으로 자리 잡은 CAD를 가상 현실에서 접하는 것인 만큼 이보다 업계에 잘 어울리는 용어가 또 있나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오토데스크는 엔지니어링 VR 구현을 위해 이미 갖고 있는 기술적 자산을 토대로 CAD 데이터를 가상 현실로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 듯한 인상이 매우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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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데스크 엔지니어링 VR을 활용해 건물 내부를 탐색하거나 설계물을 검토할 수 있다

오토데스크는 CAD 설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렌더링 과정을 거치는 점에서 솔리드웍스의 비주얼라이즈 VR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각 과정이 오토데스크의 자산으로만 처리되는점에서 차이가 있다. 오토캐드의 엔지니어링 VR은 CAD 데이터를 3D맥스나 마야로 부른 다음 스팅레이 엔진에서 처리한다. 이때 모델링을 위한 환경, 지형, 사물 같은 에셋을 한꺼번에 불러서 배치하면 스팅레이에서 곧바로 볼 수 있다. 오토데스크는 에셋을 하나씩 불러서 처리하는 유니티 엔진을 이용하는 것보다 작업이 훨씬 수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에셋을 배치하고 렌더링 과정을 거치는 만큼 가상 현실에서 보는 CAD 결과물은 좀더 현장감을 높인다.

실제로 이날 오토데스크가 준비한 여러 체험 데모를 보면 단순히 CAD 설계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물을 보는 것 같은 경험을 준다. 물론 완전히 사진 수준의 뛰어난 그래픽은 아니지만, 건물 내부와 공장의 도면에 맞는 질감과 각종 사물을 배치해 실제와 같은 완성에 가까운 형태로 비교해볼 수 있다. 또한 가상 현실 안에서 설계된 구조물의 길이나 크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데다 사물 인터넷과 결합한 공장 자동화 설계 환경에서 실제 공장의 작동 상황은 물론 센서의 데이터를 가상 현실 안에서 점검할 수 있다.

다쏘시스템즈 비주얼라이즈 VR과 오토데스크의 엔지니어링 VR는 비슷하면서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 새로운 도구를 통해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CAD 데이터를 그대로 쓴다는 부분이 그렇다. 만약 새로운 도구와 데이터를 만들어야 할 경우 작업 도구를 익히는 시간과 비용이 더 드는 만큼 업계의 호응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둘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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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D를 가상 현실에서 보기 위해선 PC용 VR HMD가 필요하다. HTC 바이브, 오큘러스 리프트를 쓰면 된다

또 다른 특징은 아직까지 둘다 가상 현실 내에서 직접 설계가 어렵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두 업체와 서드파티 업체의 해법들은 대부분 가장 현실 내에서 설계물의 검토쪽에 치중되어 있다. 실제 규모에서 직접 조작, 자동화 공저에 대한 관리와 검토까지가 두 업체가 내놓은 부분이다. 물론 ‘아직’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인 만큼 앞으로는 가상 현실 안에서 설계가 가능한 방향으로 도구의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데, 가상 현실 안의 직접 설계에 대해서는 오토데스크 쪽이 좀더 강해 보인다. 오토데스크는 직선과 곡선을 가상 현실 설계에서 어떻게 구현하는지 간단한 예를 보여준 데다 이미 로드맵에 그러한 방향을 넣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가상 현실 안에서 직접 CAD를 작업하는 것에 대한 의견들이 통일되진 않은 상황이다. 솔리드웍스 월드2017에서 만난 테크비즈 관계자는 평면 모니터보다 가상 현실에서 실제 작업은 더 편할 수 있지만, 해결해야 되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적 오류'(Human Error)다. 평면 모니터에서 작업할 때 이미 도구에 익숙한 작업자들은 거의 실수가 없지만, 가상 현실은 컨트롤러의 정확도 부분이나 설계의 복잡성을 해결하기 전까지 직접 설계에 대해선 회의적으로 본다는 입장이다.

그래도 당장 가상 현실 내에서 CAD 작업이 어려운 것은 단점이라 말할 수는 없다. 가상 현실이 CAD 업계의 시간과 비용을 줄여줄 것이라는 장점이 더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설계 리뷰부터 공간을 바꿔서 적용할 때의 디자인 커스터마이징, 지역이나 시간차가 있는 곳에서 디자인 협업, 공장 설비의 완성 전에 설명서를 따로 만들 필요 없는 교육, 가상 팩토리 탐장, 교량이나 도로 설계의 환경성 평가, 시설 안내, 재난 대비 시뮬레이션 등 CAD 기반의 데이터를 좀더 폭넓고 정교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쩌면 이러한 장점 만큼은 두 업체 모두 공감하는 듯보인다. 가상 현실에서 CAD를 경험하고 나면 평면 모니터에서 2D나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검토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게 될 것이라는 CAD 업체들의 자신감은 똑같이 말하고 있기에…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One Comment

  1. 곽태열
    2018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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