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 3의 정치적 선택, 당신은 어떤 결정을 하겠는가?

한 달 전쯤 ‘커맨드 앤 컨커 3 : 티베리움 전쟁’의 GDI 미션을 겨우 끝냈다. 집에서는 게임을 즐길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틈이 날때마다 임무를 수행했는데, 생각보다는 좀 빨리 끝낸 듯하다. 그렇다고 임무의 수가 적었다는 말은 아니다. 한번 임무를 수행하면 일단 그 임무를 끝낼 때까지 계속 즐긴데다, 임무 수행 시간이 짧았다 싶으면 다른 임무를 하나 더 완수한 때문에 좀더 빨리 끝낸 듯하다.


C&C 3의 전장은 미국에서 시작해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에서 끝을 맺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나리오에서는 해당 전장들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실제로는 별로 중요함을 느낄 수 없는 도시인데도 임무의 당위성을 위해 그럴 듯하게 잘 포장해 놓은 것이다. 때문에 게임을 즐기는 내내 해당 임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서 전략을 짜고 전술을 수행했다. 일단은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GDI 미션을 하나하나씩 수행하면서 각 전장들을 거칠 때마다 느껴지는 정치적 줄타기는 마치 현대 민주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C&C 3의 대결 세력은 표면적으로 GDI와 NOD, 그리고 갑자기 우주에서 뚝 떨어진 외계 종족인 스크린이라는 세 진영이지만, GDI 미션을 거칠수록 드러나는 GDI 내부의 정치적 판세를 보면서 최신 실시간 전략 게임이 갖는 묘미 이상을 색다름을 느끼게 한다.


특히 GDI의 마지막 임무는 NOD와 스크린을 함께 상대하는 동시에 정치적 선택까지 겹쳐 임무 수행을 더욱 어렵게 한다. 대중의 인기를 발판 삼아 지도력을 발휘하는 정치인 보일과 고집스럽게 정의를 외치는 그랭거 대장의 대결 구도가 마침내 마지막 임무에서는 게이머의 선택을 정치적 입장을 정리하도록 강요한다. 중립이란 있을 수 없고, 현명한 해결책은 없다. A 아니면 B,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 따라서 게이머는 다른 미래를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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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티베리움 폭탄을 쓰지 않고 타워를 부수다.


게이머는 이전 임무를 수행하면서 전쟁의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액체 티베리움 폭탄 기술을 NOD로부터 빼앗게 된다. 이 폭탄은 핵폭탄의 수십배에 이르는 파괴력을 가진, 너무나 막강한 것이지만 이것을 쓰냐마냐를 두고 보일과 그랭거는 서로 대립한다. 결국 보일은 GDI 본부를 나와 특수 벙커에 숨어 사령관인 내게 슬며시 제안을 한다. 이 폭탄을 써서 한 방에 전장을 정리하고 그 자신과 함께 하자고. 하지만 그랭거는 이 폭탄을 절대 쓰지 말것을 권유할 뿐이다. 어찌됐건  이 둘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 결과에서 나를 영웅으로 대우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달랐지만.


NOD를 밀어 없애니 액체 티베리움 폭탄을 쓸 수 있는 옵션이 떴지만, 일단 폭탄 없이 임무를 완수하는 것을 선택했다. 모든 유닛을 동원해 겨우 스크린들이 만들어 놓은 타워를 없애는 데 성공했고 임무를 무사히 마친 것이다. 그러자 벙커에 숨어 있던 보일은 액체 타이베리움을 쓰려했다는 이유로 전범으로 몰려 정치 생명이 끝나고, 낯간지러운 그랭거의 칭찬을 받고 메인 화면으로 돌아갔다. 여기서는 보일의 은퇴장면이 없었고, 대량 살상에 따른 뉴스 아나운서의 무거운 코멘트가 없었으며, 그랭거 역시 비난 대신 칭찬을 남발함으로써 다행히 정신적인 괴로움은 전혀 없었다.


그 다음 보일의 제안에 따라 액체 티베리움 폭탄을 썼을 때 일단 엔딩을 보기 전에 이미 충격을 받았다. 폭탄의 위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긴 했어도 한 방에 스크린 유닛은 물론 그 넓은 전장에 있던 GDI 유닛까지 모두 파괴된 탓이다. 이 정도의 파괴력일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뉴스 앵커는 승리는 했으나 대량 살상에 따른 막대한 피해 상황을 전했고, 그랭거는 내게 명예를 더럽혔다며 비난하고는 자리에서 물러난다. 벙커에 있던 보일만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져준 내게 감사를 표하며, 줄을 잘 선 댓가로 그랭거의 자리를 내게 준다고 한다. 또한 언론의 우상화를 통해 나를 그 정치 싸움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내 한 몫은 챙겼는데, 정신적으로는 전혀 달가운 느낌이 들진 않았다. 한마디로 기분이 엿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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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티베리움 폭탄을 써서 한 번에 스크린 진영과 GDI 유닛을 몰살하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엿같은 상황을 한두 번 겪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일상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해 나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은 그랭거의 권유를 따랐을 때 누이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얻기를 갈망한다. 승리도 얻고 정신적인 만족감에서 오는 편안한 안식은 이상적인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보일처럼 더러운 일을 처리한 뒤 이에 상응하는 현실적인 보상이 따른다면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억만금의 돈이든 승승장구를 보장하는 줄서기가 되었든 간에 자기 입지에 변화를 가져다 주는 제안이 온다면 사회 생활을 하는 누구라도 그 유혹을 쉽게 뿌리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보일이 옳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와 그의 제안이 현실이라면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결정을 어떻게 내릴지는 지금 답할 수 없다. 게임에서는 당연히 그랭거를 따르겠지만, 현실은 나름대로 계산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다만, 한 가지 기준은 있다. 정신적으로 덜 피곤하고 덜 충격 받는 쪽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다. 이것이 정의로운 결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악한 쪽으로 결정을 하더라도 그게 정신적인 부담을 주지 않는다면, 난 그것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만약 그랭거와 보일 같은 정치적 선택을 현실에서 해야만 한다면…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아니, 그 결정을 위해 어떤 기준을 세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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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sol Written by:

12 Comments

  1. 2007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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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가 스타나 워크래프트와 다른점이 바로 뛰어난 시나리오 이죠.
    개인적으로 그런 시나리오를 즐길 수 있는 점 때문에 여타 RTS보다 좋아합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장기와 비슷하다면 C&C는 RPG와 더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EA로 넘어간 이후에도 특유의 색을 유지하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의 경우 티베리움 폭탄을 사용해 버려서 멋진 엔딩이 나오더군요. 물론 한번 더 깨서 정상적인 엔딩도 보았지만요 ^^;
    그리고 사실 최고로 재미있었던 것은 연합이 아닌 NOD의 최종미션이였습니다. 바로 연합의 마지막 미션의 NOD판이죠. 난감한 것이 클리어하면 상당히 만족감도 들더랍니다. ^^;

    보통 난이도로 플레이하고 최고난위도로 주요 맵들을 다시 플레이 했을정도로 이번 작품은 잘 나온 것 같습니다.
    (타이베리움워 확장판이 기대되던데요…ㅎㅎ 나올 예정이 있다면 꼭 플레이 해 보고 싶습니다.)

    • 2007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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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님 말씀처럼 커맨드&컨커는 시나리오를 따라가면서 즐기는 재미가 남다르지요. C&C 좋아하는 이들은 아마도 이 점에 점수를 많이 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거의 사라진 냉전 구도에서 양쪽의 시각을 모두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좀 색다른 게임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티베리움을 쓰던 안쓰던 엔딩은 둘 다 정상적인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게이머의 판단에 따른 결정이니까요. 단지 제가 밝혔듯이 정신적 대미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판단이 다른 듯 싶습니다.
      확장팩 나오기 전에 빨리 NOD 깨야겠군요 ^^

  2. 2007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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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오늘 끝마쳤는데… 고민했습니다. 후후…
    저는 무식한 방법(밀기)를 사용했지요 흐흐흐…
    어쨌든 정말 대작은 대작입니다.

    • 2007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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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C님은 전형적인 C&C 스타일로 하셨군요. ㅎㅎ 확실히 물량엔 장사 없다는 속설은 여전한 게임입니다. ^^

  3. 2007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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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전 이상하게 마지막쯤 저장을 했다가, 액체폭탄을 사용해서 끝을 보기도 하고, 맘모스로 밀어버리기도 했는데, 똑같은 엔딩이 나오더군요. 버그인가. -_-a
    GDI는 무적의 맘모스덕분에 꽤 쉬워서 몇일만에 깼는데 NOD는 좀 어렵군요.
    이전과 달리 GDI과 NOD의 CD가 따로따로 없다는게 좀 아쉽기는 합니다. 그전엔 정품사면 게임 2개 얻은 느낌이었는데.

    • 2007년 6월 3일
      Reply

      어라.. 똑같은 엔딩이라.. DRACO님은 멀티 엔딩을 보지 못하셨군요. 저런… -.ㅡㅋ
      GDI의 맘모스 탱크는 정말 천하무적이죠. 한 부대만 만들어서 밀고 가면 다 쓰러지니… 디스크는 DVD로 한 장이지만, 케이스에는 두 장을 넣도록 되어 있군요. 나중에 HE님 말대로 확장팩 나오면 거기다 꽂아두면 될 듯~ ^^

  4. 2007년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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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칫솔님의 해당 포스트가 6/4일 버즈블로그 메인 탑 헤드라인으로 링크되었습니다.

  5. 2007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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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역시 우리의 C&C는 기대를 지지않는군요 ;ㅅ;
    컴퓨터 사양이 부족한지라 3는 아직 해보지도 못 했지만, 이야기만 읽어도 가슴이 뛰네요 +_+

    • 2007년 6월 5일
      Reply

      수많은 C&C 마니아들의 잠을 깨우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제원이 좀 낮아도 즐길 수는 있으니 한 번 도전해보시길.
      전 시간이 없어서 아직 NOD 옵션을 못하고 있답니다. -.ㅡㅋ

  6. 킬러조
    2015년 7월 30일
    Reply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좋은 리뷰군요
    지금에서야 바라보면 출시된 지 굉장히 많은 시간이 지난 게임이지만,
    잊혀지지 않는.. 그런 게임입니다.

    • 칫솔
      2015년 7월 31일
      Reply

      네. 시리즈도 오래됐고 그만큼 기억에 오래 기억할 만한 게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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