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이 된 자동차, 하늘을 나는 택시의 이유를 말한 CES 2020

해마다 CES가 열릴 때면 무엇이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것인지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CES는 언제나 그 상상을 넘어서는 이야기들을 쏟아내기에 어쩌면 더 흥미로웠는지도 모른다. 지난 1월 7일부터 10일까지 열렸던 CES 2020도 마찬가지. 인공지능이나 5G, 8K TV 같은 우리 일상을 채울 여러 기술과 수많은 제품을 CES 2020에서 만났지만, 자동차는 올해도 ‘핫’한 뉴스의 주인공이었다.

물론 CES에서 자동차는 지난 몇 년 동안 뜨거운 주제였다. 자동차가 도로 환경과 장애물을 분석하며 목적지까지 스스로 운행하는 ‘자율 주행’이라는 거대한 목표 의식이 공유되면서 CES는 자율 주행 자동차를 위한 기술의 전쟁터가 됐고 자동차 업계와 IT 업계의 동맹을 맺는 뉴스로 넘쳐났다. 그런데 CES 2020의 자동차는 전혀 다르다. 자율 주행의 이야기를 내려놓는 대신 모빌리티 환경에 집중했다. 자동차에서 무엇을 하며, 미래의 자동차는 무엇이 될지 그 질문의 대한 답을 내놓았던 것이다.

자동차를 스마트 디바이스로 만든 바이톤

바이톤이 공개한 양산형 엠바이트 콘셉트.

자동차에서 무엇을 할까? 이 질문에 맨 먼저 답을 꺼낸 자동차 업체는 바이톤이다. 사실 바이톤이 CES 2020 개막 이틀 전에 개최한 미디어 데이에 들어갔을 때에도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업력을 중시하는 기존 자동차 업계의 상식에서 보면 2017년에 설립된 전기 자동차 제조사인 바이톤의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 몰랐으니까. 그런데 기존 자동차 업계의 상식이 상대적으로 약한 바이톤이기에 어쩌면 답도 더 빨리 찾아냈는지도 모른다. 바이톤은 스마트 디바이스처럼 다루는 엠바이트(M-Byte)의 양산형 SUV 모델을 공개했다.

사실 CES에서 바이톤의 자동차가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지난 해보다 바이톤은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점은 이 자동차는 여느 자동차보다 훨씬 넓고 많은 디스플레이를 넣었다는 점이다. 지난 해 CES에서 처음으로 48인치 대시보드 디스플레이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는데, 올해는 이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스티어링 허브까지 스마트폰 크기의 디스플레이를 얹어 더 많은 기능을 다룰 수 있음을 시연했다.

엠바이트 콘셉트의 48인치 초대형 디스플레이. 5G 망을 비롯한 네트워크에 항상 연결되어 있어 정보를 표시한다.

엠바이트는 센터페시아에서 글로브박스에 이르는 범위까지 긴 48인치 디스플레이를 넣었다. 지난 해 바이톤은 이처럼 긴 디스플레이를 넣으면서 5G를 활용한 기능을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예고대로 바이톤은 5G 이동통신을 통해 안전 운전을 위한 다양한 데이터를 전송하고 대용량 미디어를 차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여러 기능을 CES 2020에서 시연했다.

운전자는 자율 주행 중에 스티어링 허브(쉽게 말해 핸들의 한 가운데 부분)에 있는 태블릿 화면으로 다양한 기능을 선택할 수 있다. 음악을 듣고, 일정을 확인하고, 날씨 정보를 얻고, 때로는 영화를 고를 수 있다. 해당 메뉴를 누르면 긴 디스플레이 중 일부가 관련된 정보를 표시하는 데 마치 스마트폰에서 기능을 실행했을 때 대형 TV에서 보는 듯하다. 또한 엠바이트의 운전석 카메라는 운전자를 식별하는 데 쓰인다. 이는 운전석에 앉은 이가 차량의 소유자인지 확인할 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상태에 따라 5G 같은 네트워크를 통해 긴급 구조 신호를 보내기 위한 용도로 활용된다.

터치 패드로 구성된 엠바이트 허브. 마치 스마트폰을 다루듯이 자동차를 조작할 수 있다.

바이톤은 엠바이트의 차량용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수 있는 개발자 프로그램과 앱스토어도 준비한다고 밝혔다. 마치 자동차가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와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장치 생태계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운전하는 재미를 추구하는 자동차가 아니라 스마트 장치처럼 쉬운 자동차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직접 만든 전기차를 가져온 소니

솔직히 말하면 CES 2020에서 가장 의외의 뉴스 메이커는 단연코 소니였다. 한국과 시차로 매우 지친 시간에 열린 소니의 프레스 컨퍼런스가 제발 지난 해만큼 지겹고 화나는 컨퍼런스가 아니길 빌었는데, CES 2020은 매우 작정한 듯 많은 준비와 놀라운 발표를 쏟아냈다.

소니가 만든 S 비전 콘셉트카. 그냥 모델이 아니라 실제 운행 가능한 자동차다.

그 절정의 순간이 바로 소니의 전기 자동차, 비전S(비전-S) 콘셉트카다. S-비전은 그냥 만든 모형이 아니다. 실제로 운행할 수 있는 전기 자동차다. 물론 판매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니가 비전 S를 만든 것은 소니의 기술과 콘텐츠가 자동차 안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일종의 데모 장치지만, 여기에는 놀라운 뒷 이야기가 하나 있다.

소니는 TV와 카메라, 오디오, 플레이스테이션 등 수많은 소비자용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지만, 카메라의 핵심인 이미지 센서를 만드는 반도체 업체이기도 하다. 소니는 몇 년 전 자사 이미지 센서를 자율 주행 자동차용으로 공급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품과 기술이 실제 탑재된 자동차를 찾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소니는 수십 개의 초음파 및 레이다, 서라운드 카메라 등 소니 이미징 및 각종 센서를 융합해 안전하게 주행하는 한편, 운전자 모니터링 및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기능으로 안전을 강화한 자동차를 선보였다.

사이드 스커트에 소니 디자인이라고 써 있다.

소니 비전 S는 360도 리얼리티 오디오와 바이톤처럼 초대형 파라노믹 대시보드 및 뒷좌석 모니터를 설치해 소니의 다양한 영상 콘텐츠 등 다양한 차내 엔터테인먼트를 경험할 수 있다. 역시 5G나 LTE 같은 모바일 네트워크에 항상 연결되어 소니 콘텐츠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전송한다.

소니도 파노라믹 디스플레이를 적용하고 네트워크와 연동해 더 많은 정보와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흥미로운 점은 소니가 이 자동차를 판매할 계획이 없지만, 단기간 자동차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소니는 비전 S 이니셔티브를 통해 다양한 업체와 협력으로 이 자동차를 만들었다. 벤텔러, 마그나, 젠텍스, 보쉬, ZF 등 자동차 업계의 제조 및 부품 공급자는 물론 엔비디아, 퀄컴, 히어, 블랙베리 QNX 등 다수의 IT 기업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디자인은 소니가 맡았다. 즉, 누군가 이런 차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이 이니셔티브에 참여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자율 주행부터 미디어 엔터테인먼트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 더 쉬워졌음을 비전 S가 보여준 셈이다.

10년 뒤 에어 택시 비전을 가져온 현대 자동차와 우버

자동차 업력이 짧은 바이톤이 스마트 디바이스화 되는 자동차를 내놓고, 소니는 여러 기술 업체 및 제조 업체와 함께 독자적인 전기 자동차 콘셉트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해서 다른 자동차 업체가 그냥 손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중 일부는 도심에 집중되는 인구 증가에 대비해 땅 위의 길이 아니라 공중에 그려질 새로운 도로를 달릴 운송형 드론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해 공개한 넥서스 에어드론을 개선해 내놓은 벨의 신형 넥서스 4EX

CES에 사람이 탑승하는 드론이 나온 것은 2016년이었지만, 당시 이항(e-Hang)의 수준은 2인이 탑승하는 데 머물렀고 상용화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후 CES 2019에서 벨은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수송할 수 있는 넥서스 드론 택시(Nexus Drone Taxi)를 선보였다. 이미 헬리콥터와 무인 드론 등 항공 산업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공중에서 사람을 수송하는 운송 드론을 공개했는데, 단순한 모형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스마트 시티 생태계까지 고려한 모델로 개발하면서 이번 CES 2020에선 개선된 넥서스 4EX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 드론의 모형을 전시한 것과 아울러 뒤쪽에 미니 드론을 이용해 도시의 건물을 오가는 장면을 재현한 데모를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드론 업계에서 출발한 이항과 항공 업계에서 온 벨에 이어, 이번 CES 2020은 자동차 업계에서 에어 택시에 도전을 선언했다. 현대 자동차가 우버와 손잡고 4인승 에어택시 S-A1을 CES 2020에 공개한 것이다. S-A1은 수직 이착륙을 할 수 있는 운송 드론으로 모두 8개의 로터를 갖고 있다. 이중 4개는 수직 이착륙과 비행을 위해 방향을 회전하고 다른 4개는 수평 비행을 위해 고정되어 있다. 현재 이 드론은 한번 충전으로 시간당 289.6km의 속도로 96.5km의 거리를 날 수 있다. 속도만 따지면 거의 KTX 급이다.

현대자동차와 우버가 협력을 약속한 에어 택시 콘셉트.

‘현대 자동차’와 ‘우버’가 이러한 에어 택시를 선보인 이유는 대중화에 유리해서다. 항공우주 회사들은 항공기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반면, 대량 생산의 경험은 부족하다. 반면, 자동차 업체는 낮은 가격에 고품질의 자동차를 대량 생산한 경험으로 전동 수직 이착륙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는 곧 대중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의미다.

그들이 생각하는 대중화의 시기는 2028~2030년이다. 당장 수직 이착륙기를 만든다 해도 에어 택시가 현실화되려면 여러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항공 규제는 물론, 터미널 격인 스카이 포트 구축과 운영, 관제 인프라 등 갖춰야 할 게 너무 많다. 여기에 5G와 LTE 같은 통신망을 활용해 장애물을 피하고 필요한 비행 데이터를 즉시 다운로드해 성능과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이미 그러한 연구와 실험은 이미 진행 중이지만, <CES 2020>를 달군 에어 택시가 출퇴근 직장인들의 뜨거운 열망에 기름을 부었음은 분명한 듯하다.

덧붙임 #

이 글은 SK브로드밴드 블로그에 기고한 글로 일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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