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지 않을 때가 가장 멋진, 몽블랑 서밋(Montblanc Summit)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이 무엇인지 몰랐어도 ‘만년필’하면 곧 ‘몽블랑’을 떠올렸다. 하지만 만년필의 대명사로 통하던 몽블랑이 무한한 사랑을 누릴 것처럼 보였던 만년필의 퇴보에 대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많은 이들은 기억 속에서 몽블랑을 추모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몽블랑은 품격을 갖춘 이들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확장했다. 평범한 한 권의 노트부터 향수, 셔츠 소매 끝을 조이는 커프링크스 등 신사의 품위와 관련된 제품에 산 정상의 만년설이 새겨져 있다.

손목 시계도 몽블랑 스타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좋은 품질과 기술력을 상징하는 몽블랑 이미지를 반영하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한 결과 몽블랑 시계는 평범한 패션 소품 브랜드를 벗어나 품격을 갖춘 시계 브랜드로 자리를 잡아서다. 하지만 시계에 대한 남다른 자신감을 가진 몽블랑에게 디지털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의 스마트워치는 전혀 다른 유형의 숙제였을 텐데,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몽블랑 서밋(Montblanc Summit)이라는 첫 과제물을 내놓았다.

몽브랑 서밋의 구성

몽블랑 서밋은 반듯하게 모서리를 90도로 꺾은 검정 바탕의 육면체 상자에 담겨 있다. 무광의 검정 바탕 위에 몽블랑 서밋을 연상케 하는 시계 이미지를 유광으로 그려 넣기는 했지만, 눈에 도드라져 보인 것은 흰색으로 쓴 몽블랑이라는 이름이다. 흑과 백 단 두 가지의 특징을 살린 간소하고 깔끔한 포장재는 몽블랑답다.

두툼한 덮개를 열어보니 곧바로 올블랙의 몽블랑 서밋이 얼굴을 내민다. 몽블랑 서밋 아래 두 가지 설명서와 충전 크래들, 패브릭 재질의 USB 케이블이 들어 있다. 간소하게 담은 내장재들도 모두 흑과 백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다만 충전 크래들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 검정 크래들 자체는 충전을 위한 기능성 외에 기대할 것은 없는데 정 가운데 깨알 같이 새겨 놓은 몽블랑 스타는 마치 하얀 빛을 내는 별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반전의 디자인

덮개를 열자마자 지나치게 단조로운 몽블랑 서밋의 생김새에 적잖이 당황했다. 몽블랑의 극단적인 간결함을 이런 식으로 스마트워치에 반영할지 예상하지 못해서다. 디스플레만 덩그러니 있는 형태는 지난 리뷰의 주인공이었던 틱워치(TicWatch)와 거의 비슷하지만, 몽블랑의 차별성을 곧바로 받아들일 특징을 곧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인 점이 있다. 요모조모 따져보며 첫 인상에서 후회했더라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 늘수록 좋은 방향으로 만듦새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본체부터 시계줄까지 모두 검정으로 통일했음에도 빛을 받는 각 부위마다 아주 미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화면은 반들반들하고, 가느다란 화면 테두리는 그 빛을 흡수한며, 본체는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검은 빛을 내뿜는다. 특히 디스플레이 위를 덮고 있는 돔형 사파이어 글래스와 이를 보호하기 위한 필름은 디스플레이의 성능을 고려한 게 아니다. 디스플레이를 잘 보이게 하려는 의도보다 몽블랑 서밋 자체를 멋스럽게 보이기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덕분에 다른 스마트워치와 달리 시계를 차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다.

몽블랑 서밋의 유일한 허세라면 마치 용두처럼 생긴 버튼 주변 장식인데, 이것도 버튼이 잘 눌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넣은 것처럼 보인다. 몽블랑 스타는 버튼에 새겨져 있지만, 신경 써서 보지 않는 이상 알아채기는 어렵다. 심박 측정 센서와 충전 단자가 있는 바닥 면은 그나마 몽블랑 서밋이라는 타이틀이 없다면 평범한 스마트워치라고 해도 믿었을 만듦새였다.

기본 워치 페이스의 미스 매치

과거 태그호이어 같은 시계 브랜드가 스마트워치들이 워치 페이스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봤던 터라 몽블랑 서밋도 그 부분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는 없었다. 외형보다 워치 페이스에서 갈리는 스마트워치의 특성을 고려하면 당연한 기대다.

그런데 전원을 켜고 몽블랑의 기본 워치 페이스를 띄웠을 때 왠지 모를 이질감이 크게 작용했다. 어떤 워치 페이스를 띄워도 어색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400×400 해상도를 가진 1.39인치 AMOLED에서 보는 워치 페이스가 왜 이리 어색했을까?

일단 원인은 두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먼저 기본 워치 페이스도 적은 편이지만, 둥근 워치 페이스의 타키미터와 바늘 디자인의 복잡성은 단순한 외형에 어울리지 않는다. 더불어 흑백의 기본 테마를 가진 하드웨어에 여러 색상이 들어간 워치페이스를 띄우고 보니 그 균형을 깨고 있다.

물론 워치 페이스 자체의 기능성 측면에서는 큰 불만은 없다. 자주 실행하는 기능에 시계 화면에서 곧바로 접근하거나 스포츠 모드에서 운동량을 확인하는 차원의 기능성에선 그렇다. 단지 시계 화면이 시계와 잘 어울리느냐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스마트워치의 워치 페이스가 시계의 이미지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볼 때 기능성에 좀더 무게를 둔 몽블랑의 선택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있었다. ‘도시’ 워치 페이스의 대기 모드에서 작은 흰색 텍스트로 시간을 표시할 때다. 고작 몽블랑 이름과 시간만 표시되는 이 상태가 가장 예쁘다. 정말 자고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는 말 외에 몽블랑 서밋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무거우나 나쁘지 않은 착용감

몽블랑 서밋을 차는 동안 확실하게 두 가지 문제에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이 시계의 착용감과 배터리 문제다. 몽블랑 서밋은 메탈 재질의 본체라 깃털처럼 가볍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스마트워치에 비하면 손목에 차는 느낌이 꽤 좋다.

본체에 특별한 비밀을 숨긴 게 아니라 시계 줄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몽블랑 서밋의 가죽 시계줄은 부드러운 쪽보다 조금 얇고 단단한 데도, 손목에 닿으면 단단함 보다 유연하게 손목을 감싸며 시계의 무게를 지탱한다. 조금 여유 있게 차더라도 쉽게 흘러내리거나 흔들리지 않아 시계를 풀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배터리 시간은 굳이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을 정도다. 오전에 밖을 나가 저녁 늦게 귀가해 충전 크래들에 몽블랑 서밋을 올려놓을 때에도 배터리는 항상 절반 이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얼마나 몽블랑 서밋을 사용했는가에 따라 배터리 시간에 대한 체감은 다를 수 있지만, 일부러 더 쓰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300mAh의 배터리 용량 따위는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몽블랑의 생명력은 길어야 하루다. 그 이상을 버티는 건 아무래도 버거워 보인다. 

몽블랑 서밋은 안드로이드웨어 2.0을 운영체제로 쓰고 있기에 구글 플레이를 통해 기본 응용 프로그램을 내려 받아 설치할 수 있다. IP68 등급도 받아 시계를 차고 손을 씻거나 비를 맞아도 제품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채로운 센서도 갖춘 터라 스마트워치에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은 할 수 있으나, GPS가 없어 운동용으로 쓰기에는 조금 부적합하다. 솔직히 말하면 운동을 할 때도 적합하지 않은 스마트워치여서 다행이다.

덧붙임 #

이 글은 2017년 8월 미스터타임에 기고한 글로 일부 내용이 다를 수 있음.

Please follow and like us:
chitsol Written by:

B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