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엄청 두껍네요. 정말 무겁게 보이는데요. 아직도 이런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군요? 대체 언제 만든거에요?”
어쩌면 이런 오해를 받더라도 이상하게만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두껍고 무거운 노트북이 멸종해 가는 시대에 두껍고 무거운 최신 노트북을 이해하라고 말할 시대가 아니니 말이다. 마음만은 홀쭉하고 싶었으나 물리적인 제약으로 그럴 수 없었던 게이밍 노트북의 마음을 누가 알까 싶지만, 이런 배경 하나만으로도 변화해야 할 이유는 부족하지 않다.
게이밍 노트북(Gaming Notebook). PC 게임을 위해 만든 노트북이다. 더 큰 화면, 더 강력한 부품을 쓰는 데스크톱 PC를 놔두고 굳이 노트북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의문을 지닌 이들이 적지 않다. 게이밍 노트북을 열어 보면 거의 데스크톱에 들어가는 부품과 특별히 다르진 않아 보이는데, 값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니 그럴 수있다. 그런데 같은 부품으로 만든 데스크톱 PC와 확실하게 다른 점도 하나 있다. 게이밍 노트북은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는 점이다. 모니터와 본체로 분리된 데스크톱은 설치된 장소를 벗어나기 어렵지만, 화면과 본체를 하나의 몸통에 담은 게이밍 노트북은 장소의 제약이 덜한 것이다.
프레임 한 장마저 허투로 떨구지 않고 멈춤 없이 고화질 그래픽의 PC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이밍 노트북은 모든 부품마다 최고 성능을 끌어내도록 설계했다. 특히 부품의 성능 저하나 시스템 멈춤 같은 현상을 없애기 위해서 발열 구조에 큰 공을 들였다. 그 결과 게이밍 노트북이 데스크톱 못지 않은 성능을 내는 데는 성공한 듯 했다.
하지만 데스크톱 PC 만큼 뛰어난 성능을 가진 노트북들은 한 가지 부작용이 수반한다. PC 게임을 실행하기 위한 고성능 부품이 최고 성능을 끌어내는 설계를 모두 반영한 게이밍 노트북의 덩치, 그게 문제였다. 게이밍 노트북은 데스크톱 PC보다 옮기는 것이 조금 쉬울 뿐인, 결코 우리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휴대하기 쉬운 얇고 가벼운 그런 제품은 아니었던 것이다.
1cm의 두께에 1kg 안팎의 몸무게를 갖고 있는 초슬림 노트북과 반대로 게이밍 노트북은 3cm 이상의 두께와 3kg 넘는 무게의 제품을 얇고 가볍다고 말해야 하는 전혀 다른 세상의 제품이었다. 더구나 어댑터도 함께 들고가야 한다. CPU와 GPU의 성능을 최대치로 끌어다 쓰면 충전한 배터리 만으로는 오래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강력한 성능을 근육질 몸매 같은 외모로 감쌀 수밖에 없는 게이밍 노트북의 현실은 한계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엔비디아가 게이밍 노트북의 지방을 빼는 폼팩터를 지난 컴퓨텍스에서 발표했다. 이를 ‘맥스 큐'(Max Q)라 부른다. 사실 맥스 큐가 지상에서 우주를 향해 발사한 로켓 같은 비행체가 대기권에서 비행할 때 받는 압력의 최대점을 가리키는 미항공우주국(NASA)의 항공 용어라는 점까지 자세히 알 필요는 없으나 ‘성능의 최대치’라는 의미로 엔비디아가 이 용어를 끌어다 썼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엔비디아는 컴퓨텍스에서 맥스 큐에 대한 아주 상세한 제원을 밝히진 않았다. 다만 맥스 큐가 적용된 게이밍 노트북의 놀라운 변화부터 먼저 보여줬을 뿐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손에 들려 있던 노트북은 멀리서 보면 흡사 울트라북처럼 보였다. 물론 울트라북보다는 두꺼웠지만, 한손으로 들 수 있는 두께와 무게라는 점은 놀랍다. 그 때 젠슨 황 CEO가 펼쳐 든 게이밍 노트북은 18mm의 두께, 2.3kg의 무게 제한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두께와 무게를 줄인 맥스 큐 게이밍 노트북에 전혀 다른 그래픽 칩셋을 쓰는 게 아니다. 엔비디아의 10세대 데스크톱 게이밍 그래픽 카드를 탑재하고 있다. GTX 1060, 1070, 1080 중 하나를 반드시 넣는다. 엄청난 열을 토해내는 고성능 그래픽 칩셋과 고성능 프로세서를 담고 있음에도 얇은 구조다. 엔비디아는 아직 이 부품들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열을 빼내는 구조에 대해선 비밀로 남겨 뒀고, 6월 둘 째 주 그 비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계획을 갖고 있다.
다만 새로운 맥스 큐 디자인에 대한 핵심 가치에 대한 소개는 계속 이어졌다. 게이밍 노트북의 이동성을 보장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성능과 배터리의 균형을 맞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맥스 큐가 무조건 최고의 성능을 목표로 설계된 폼팩터가 아니라는 의미다. 실제 맥스 큐 게이밍 노트북에 들어가는 그래픽 칩셋은 다른 게이밍 노트북 대비 80% 정도 성능을 낸다. 다른 게이밍 노트북에서 GTX1080이 100% 성능을 낼 수 있게 만들었다해도 맥스 큐 플랫폼의 게이밍 노트북은 80%로 성능을 조금 줄인다. 대신 노트북의 열 관리, 전기 설계, 소프트웨어와 드라이버 최적화를 통해 노트북 배터리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되도록 오랫동안 게임을 즐기는 데 가치를 두고 있다.
그렇다 해도 성능이 크게 뒤진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젠슨 황 CEO가 컴퓨텍스에서 맥스 큐 디자인의 에이수스 게이밍 노트북에서 시연한 프로젝트 카 2 라이브 데모는 같은 데모를 수행한 플레이스테이션 4 프로보다 더 빠르고 부드럽게 실행됐다. 그 무대에서 젠슨 황 CEO는 플레이스테이션 4 프로보다 60% 더 빠르다는 비교 우위에 대한 주장이 어쩌면 부당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콘솔 그래픽을 구현하고도 남을 게이밍 노트북의 성능을 설명하는 데 모자람은 없는 듯하다.
이런 주장이 엔비디아의 프레스 컨퍼런스의 보여주기 수준에서 그친 건 아니다. 컴퓨텍스 2017에서 맥스 큐 디자인의 노트북은 에이수스, 에이서, MSI, 기가바이트, 클레보 등이 전시했다. 겉보기에도 매우 얇고, 두 손으로 살짝 들어보니 그리 무겁지도 않았다. 15인치 화면과 4K라는 높은 해상도는 기본이고, 화려하고 정확한 입력을 할 수 있는 키보드는 덤이다. 엔비디아는 컴퓨텍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맥스 큐 게이밍 노트북이 이미 만들어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얇아진 게이밍 노트북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게이밍 노트북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할 시기가 오고 있음을 뜻하면서 지금까지 심심하게 생각했던 고성능 노트북의 고정관념도 바꿔야 할 때가 왔음을 의미한다. 게이머들이 원하는 게이밍 노트북과 현장을 이동하면서 작업하는 프로 작업가들이 필요로 하는 고성능 노트북의 접점이 맥스 큐 플랫폼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더 높은 성능을 원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부족할 수 있지만, 성능이 중요한 이동형 장치를 찾는 이들에게 이것은 확실한 메시지인 것이다.
카페에 일하려고 들고 가는 노트북 대신 게임을 즐기려고 가져가는 노트북, 잔소리를 피해 다른 곳에서 몰래 게임을 하고 싶었던 이들을 위한 완벽한 시스템, 게임이 아니더라도 일을 위한 강력한 고성능 노트북을 찾던 프로 작업자에게 답이 되는 노트북. 맥스 큐 플랫폼은 게이밍 노트북의 변신을 유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고성능 노트북을 요구하던 목소리에 응답하는 제품이 될 가능성을 지울 수 없다. 흥미롭게도 그 가능성을 연 플랫폼을 내놓은 것이 인텔이 아니라는 엔비디아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덧붙임
맥스 큐의 정확한 기술적 특징은 6월 둘 째 주에 예정된 브리핑 이후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재밌게 봤습니다. 실물은 어떤지도 궁금하네요. 얼른 제품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