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mm의 두께의 게이밍 노트북을 20mm 이하로 확 줄인 엔비디아 ‘맥스 큐'(Max Q)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놀라운 다이어트의 비밀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이전까지 맥스 큐를 엔비디아의 새로운 기술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으나 다행히 아시아태평양 지역(APAC)에서 엔비디아의 지포스 기술 마케팅 매니저로 활동 중인 제프와 엔비디아 코리아가 6월 12일 오전 그 궁금증을 푸는 자리를 마련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맥스 큐는 완벽히 새로운 기술이라기보다 조율된 협업의 결과물이라는 표현이 알맞을 것이다.
맥스 큐는 종전보다 얇고 가벼운 게이밍 노트북을 만들기 위한 것이긴 하나, 엔비디아에서 완전히 새롭게 내놓은 설계 기술이 아니고 그래픽 아키텍처처럼 엔비디아의 기술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인텔 울트라북처럼 인텔의 부품을 넣어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그만인 노트북을 가리키는 가이드라인도 아니다. 그런데 기술이 전혀 없거나 가이드라인이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얇게 만드는 고성능 게이밍 노트북을 만들기 위한 기술도 들어가고 충족해야 하는 조건도 일부 존재한다.
사실 얇은 고성능 게이밍 노트북을 내놓는 것은 게이머와 제조사 모두의 바람이지만, 게이밍 노트북을 설계하는 측면에서 볼 때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 상당수 게이밍/고성능 노트북이 90W의 전력을 공급하는 한편, 지포스 GTX 1080 같은 데스크톱 GPU는 180W의 열설계전력으로 작동한다. 전력이 제한된 노트북에서 GPU가 제 성능을 내려면 요구 전력을 공급하거나 노트북에 맞는 저전력 GPU를 공급해야 한다.
종전대로라면 엔비디아는 모바일용 저전력 GPU를 재설계해 내놓아야 하지만 이번 만큼은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 GPU의 기본 구조에 거의 손대지 않은 채 노트북의 전력 환경에서 GPU의 성능을 최대치까지 끌어내는 노트북용 GPU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GPU의 최대 성능을 끌어 내기 위한 최대 전력을 공급하는 것보다 게이밍에 충분한 성능을 낼 수 있는 전력까지만 끌어 오는 방법을 쓰면 게이밍 노트북의 공급 전력을 더 보강하지 않고 게임을 즐기는 데 충분한 성능을 내는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엔비디아는 데스크톱 GPU와 동일한 코어와 메모리 대역폭 구조를 지니면서 기본 클럭을 살짝 내린 채 90~110W(GTX1080 기준)에서 작동하는 노트북용 지포스 GPU의 작동 환경을 조정한다. 비록 데스크톱 GPU의 작동 환경에 변화를 준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과도한 전력 공급 따른 냉각 시스템을 갖추지 않기 때문에 그 부품을 빼는 만큼 더 얇은 게이밍 노트북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노트북의 제한된 전력 공급 환경과 GPU의 성능 향상 범위를 정리한 뒤 노트북 GPU에 대한 무의미한 전력 공급을 포기하는 대신 얇은 게이밍 노트북을 만들 수 있는’맥스 큐 디자인'(Max Q Design)을 발표한다.
지난 컴퓨텍스에서 엔비디아가 맥스 큐를 선보였을 때 첫 느낌은 솔직히 엔비디아가 레퍼런스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라 여겼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일단 틀린 부분을 짚자면 맥스 큐는 엔비디아의 레퍼런스 설계가 없기에 통일된 기술 플랫폼이라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파스칼 같은 새로운 아키텍처를 적용한 GTX 10 그래픽 카드의 생산하기 위해서 그래픽 제조사에게 레퍼런스 설계를 제공하던 것과 달리, 맥스 큐 노트북의 개발에 필요한 기본 레퍼런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프는 게이밍 노트북 제조사에게 노트북용 GTX 10 GPU를 공급하는 것 외에 냉각 시스템이나 레큘레이터 구성과 관련된 별도의 설계 제안을 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맥스 큐 노트북은 결국 엔비디아 GTX 10 GPU를 탑재할 뿐 냉각 설계를 비롯한 모든 구성은 제조사의 판단에 따른 제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맥스 큐는 다른 의미의 플랫폼이기는 하다. 얇은 게이밍 노트북을 만들기 위한 엔비디아와 노트북 제조사의 협력 플랫폼이다. 맥스 큐는 엔비디아 용어이나 최대 그래픽 성능 대신 노트북 전력 환경에서의 최대 성능이라는 가치에 중점을 둔 얇은 게이밍 노트북을 만들고픈 ‘업계의 합의’이라는 의지의 표현에 가깝다. 물론 노트북용 GPU 자체가 이미 공급 전력의 제한을 받은 상태여서 제조사가 그 제한을 넘어설 수는 없지만,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하는 다른 GPU를 선택하지 않고 게임에 필요한 충분 조건을 채운 얇은 게이밍 노트북의 설계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있다.
맥스 큐 디자인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최대 Q TDP라는 새로운 용어다. 최대 Q TDP는 더딘 성능 향상을 보이는 순간에 공급되는 전력 값이다. 반도체는 투입되는 전력에 따라 성능이 올라가지만, 더 많은 전력을 공급하더라도 뚜렷하게 성능 향상을 확인할 수 없는 지점이 나타난다. 종전 게이밍 노트북이라면 미약하나마 좀더 성능을 올려 최대 성능을 내도록 더 많은 전력을 투입하는 쪽으로 설계하는 반면, 맥스 큐 디자인은 게이밍에 필요한 충분한 성능을 내는 것으로 판단되는 전력의 최대치만 공급한다. 노트북용 GTX 1080의 TDP가 150W라고 해도 맥스 큐 디자인을 적용하면 90~110W까지 제한된다.
그런데 엔비디아의 노트북용 GTX 10을 쓰더라도 맥스 큐 디자인의 개념으로 적용하는 것은 게이밍 제조사의 몫이다. 지금까지 전력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노트북용 GTX 10 GPU의 최대 성능을 끌어내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 성능 중심의 게이밍 노트북 관점에서 벗어나 미미한 성능을 올리기 위해 무리한 전력을 허비하지 않도록 제어하고 노트북 설계를 바꾸려는 제조사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엔비디아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전력 대비 성능 효율에 대한 분석과 조정이 필요한 게이밍 노트북 제조사를 위해 엔비디아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다.
물론 엔비디아의 개입은 좁은 편이지만, 그 역할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넓다. 엔비디아는 레퍼런스 설계를 제공하지 않으므로 기본적으로 얇고 가벼운 게이밍 노트북을 만들려는 제조사의 초기 설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엔비디아가 없어도 게이밍 노트북 제조사들은 자체적으로 얇은 게이밍 노트북을 만들 수 있다. 맥스 큐에 대해 설명했던 제프도 엔비디아는 맥스 큐 노트북의 기본 설계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단지 물리적으로 얇게 만들기 위해 제조사가 GPU와 프로세서의 냉각 체계나 레귤레이터를 설계할 수는 있어도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노력은 제조사의 역량을 벗어난다. 특히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할 필요 없이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역할을 위한 드라이버의 조정은 노트북 제조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엔비디아의 개입은 이 부분에서 시작된다. 노트북 제조사들이 얇고 가벼운 게이밍 노트북의 프로토타입을 만들면 엔비디아는 해당 노트북의 전력 대비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성능을 찾은 뒤 가장 효율적 성능을 낼 수 있도록 드라이버와 제어판을 손 본다. 맥스 큐의 그래픽 드라이버는 기본 지포스 드라이버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전력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각 제품마다 조금씩 조정된다. 이 부분이 일반적인 게이밍 노트북을 설계하는 부분과 다르다. 즉, 최대 성능을 내는 다른 게이밍 노트북은 엔비디아에서 개입할 여지를 남기지 않지만, 맥스 큐 디자인의 노트북들은 전력과 성능의 균형점을 찾아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부분에서 엔비디아의 역할이 강화된다.
때문에 맥스 큐 게이밍 노트북은 게이밍 제조사마다 모두 다르게 설계된다. 만약 엔비디아의 레퍼런스를 따랐다면 모든 노트북은 거의 같은 구조를 가진 형태로 나왔을 텐데, 대부분의 맥스 큐 게이밍 노트북은 형태나 디자인이 제각각이다. 그렇다고 모든 맥스 큐 노트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맥스 큐 노트북의 제어판을 열면 ‘Geforce With Max Q Design’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이는 맥스 큐 노트북만 있는 일종의 시그니처로 엔비디아 GPU를 쓰는 다른 게이밍 노트북에는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맥스 큐 디자인의 게이밍 노트북들이 성능을 더 높이는 게 무의미한 전력의 한계 값에서 성능을 제한하는 것이라 보면, 이 말은 곧 최대 전력을 공급할 때보다 성능은 조금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동일 칩셋을 쓰는 조건에서 맥스 큐 노트북과 일반 게이밍 노트북의 성능 편차에 대한 질문에 제프는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맥스 큐 노트북마다 성능 저하의 평균치는 잡기 어렵다”고 답한다. 맥스 큐 노트북마다 성능의 편차는 제각각이라는 의미다. 제프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시험한 맥스 큐 디자인의 노트북 중 딱 1대에서 15%의 성능 저하를 목격했을 뿐 반대로 전혀 성능이 떨어지지 않은 제품도 있었다고 밝혔다. 결국 맥스 큐 노트북 제조사의 기술력에 따라 성능의 차이를 겪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엔비디아는 맥스 큐 노트북의 성능 저하를 5% 안팎으로 잡고 있는데, 이처럼 모든 맥스 큐 노트북에서 성능의 편차가 나타난다면 앞으로 벤치마크를 통한 성능 비교가 매우 중요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어쨌거나 맥스 큐 디자인은 종전 게이밍 노트북의 형태를 바꾸기 위한 매우 어려운 절충점을 찾는 업계의 노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얇은 고성능 게이밍 노트북이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발상을 바꾼 꽤 영리한 접근이기도 하다. 다만 맥스 큐 디자인은 1프레임이라도 더 높은 게이밍 성능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게이머들의 요구에 정면으로 부딪친다. 게이밍을 위해 충분한 성능을 내는 전력 값을 찾는 것을 이해하기보다 최상의 게임 플레이를 위해 최고 성능을 원하는 게이머들이 타협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성능을 타협할 것인가, 성능을 중시할 것인가. 맥스 큐는 현 시점에서 게이머들에게 어려운 질문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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