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이라는 가정보다 이제‘어쨌거나’라는 말이 더 나을 듯 싶군요. 몰입형 가상 현실의 상업화 가능성은 어쨌거나 그 어느 때보다 올해 더 높아졌으니 말이지요. 지난 CES에서 상업화 가능성을 보여준 가상 현실 제품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VR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니까요.
분명 예전에 비하면 가상 현실을 즐기는 방법은 훨씬 쉬워진 것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제대로 된 가상 현실을 즐기는 데 얼마의 비용이 들어갈지 계산해봐야 하는 점인데요. 물론 가상 현실이 주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투자는 필요하지만, 어떤 가상 현실을 즐기느냐에 따라 들어가는 돈은 달라집니다.
이를 테면 길게 설명 해봐야 손가락 아프고 입만 아픈 카드 보드 같은 제품은 거의 공짜나 다름 없습니다. 골판지로 틀을 만들고 광각 렌즈 2개로 스마트폰에서 실행한 몰입형 가상 현실 컨텐츠를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인데, 원가가 그리 비싼 편은 아닙니다. 대개 1만 원 안팎에 살 수 있지만, 요즘은 마케팅용으로 뿌리는 곳도 많고, 구글처럼 카드 보드를 교육용으로 뿌리는 곳도 있어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므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지만, 품질은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나마 카드 보드와 같은 원리지만, 스마트폰 VR용 HMD는 좀더 돈을 써야 하지만, 그나마 카드보드 VR에 비해 머리에 쓰기 편한 부속을 추가하고 렌즈의 품질을 높인 데다 컨트롤러를 더하는 등 카드 보드보다 다루기 편합니다. 스마트폰 VR HMD 중 싼 것은 3만 원 선. 하지만 대부분 스마트폰과 연계해 개발된 것이 아니다보니 최소 리프레시율이나 잔상 제어가 잘 안됩니다. 그나마 삼성 플래그십 스마트폰 전용으로 나온 기어 VR은 13만 원이면 즐길 수 있지만, 최신 갤럭시 S시리즈나 노트5가 없으면 그나마도 무용 지물이라 기어 VR을 위해 스마트폰 사야 한다면 적지 않은 투자를 해야겠죠.
일단 콘솔 게임기 부문에서 유일하게 VR HMD를 내놓은 곳은 소니입니다. 소니는 지난 해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용 가상 현실 HMD인 플레이스테이션 VR을 공개했거든요. 때문에 집에 플레이스테이션 4가 있다면 가상 현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된 셈입니다. 문제는 플레이스테이션 VR의 가격인데요. 아직 정식 공지된 것은 없습니다. 단지 CES에서 플레이스테이션 VR의 예상 가격을 테크인사이더가 공개한 적은 있습니다. 가격은 800달러, 그러니까 원화로 환산하면 95만 원이 넘습니다. 혹시 플레이스테이션 4가 포함된 가격이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겠네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100만 원은 넘을 가능성이 높네요. 왜냐하면 800달러는 세금을 제외한 가격이니까요.
XBOX 원을 판매 중인 마이크로소프트는 HMD를 내놓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XBOX 원에서 실행한 게임을 윈도 10 PC에서 원격으로 실행한 뒤 이를 PC에 연결한 오큘러스 리프트에서 즐길 수는 있는데요. 그 투자 금액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래 PC VR 이야기를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PC용 VR을 시작하면 투자 수준이 달라집니다. 오큘러스나 HTC 바이브 프리 같은 PC용 HMD 제품들은 모바일 VR이나 다른 VR HMD 보다 훨씬 더 뛰어난 효과를 내는 것은 맞지만, 그만큼 더 비싼 가격에 출시할 예정이기 때문이지요. 지금 예약 판매 중인 오큘러스 리프트는 599달러입니다. 요즘 환율을 조금 깎아 1200원에 적용해보면 72만 원, 그것도 세금을 뺀 가격이지요. 여기에 오큘러스 터치는 따로 사야 합니다. 그나마도 당장 판매를 하지 않고 5월에나 볼 수 있다는 데 가격이 오를 이유는 충분합니다. 물론 컨텐츠 구매 비용은 별도 입니다.
HTC 바이브는 한술 더 뜹니다. 2월 29일부터 예약 판매하는 데 1천500달러에 7천 개의 개발자 버전을 판매할 예정이라더군요. 직접 해보니 한 대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180만 원을 써도 아깝지 않을 수 있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일까요? 아닙니다. VR을 즐기고 싶으면 PC 제원도 잘 갖춰야 합니다. 먼저 그래픽 카드부터 따져야 하는데요. 일반 PC게임보다 VR 게임은 더 높은 해상도의 데이터를 더 많이 처리해야 하는 까닭에 그래픽 카드 성능이 중요합니다. 그렇다 보니 어지간한 그래픽 카드로는 해결되지 않는데요. 오큘러스 리프트를 쓰기 위한 최소 그래픽 카드 제원을 보니 엔비디아 GTX 970 이상, AMD 라데온 R9 290 이상입니다. 각각 제품 가격대를 보면 40만 원 후반, 30만원 후반입니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별 수 없습니다. 프로세서는 인텔 코어 i5-4590 이상, 램 8GB 이상을 요구하는데요. 그나마 3년 전에 나온 하스웰 기반 프로세서를 쓰는 PC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더 오래된 구형 PC를 쓴다면 업그레이드도 적지 않은 비용을 써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투자를 할 만큼이 있느냐는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지요. 몰입형 가상 현실이 올해의 트렌드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를 경험하기 위한 가격 부담도 만만치 않은 것도 현실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경쟁 제품들이 더 나오면 가격은 내려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용자가 더 뛰어난 몰입형 가상 현실을 즐기려면 많은 투자가 필요한 것은 불가피할 듯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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