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막내 도령 같은 네이버 텍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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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막내 도령’이라는 표현, 제가 처음 쓰는 건 아닙니다. 작년에 NC소프트의 오픈 마루 블로거 간담회에 다녀와 멜로디언님(http://www.mel.pe.kr/48)이 썼더랬죠. 그 때 “오픈마루는 부자집 막내아들이라고. 부자집 막내아들이라서, 저리도 monetize에 대한 걱정 없이 웹에서 이런 저런 실험적 프로젝트들을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니냐고.”라는 말이 지난 화요일 텍스타일 블로그 간담회장을 나오면서 불현듯 그 때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부잣집 막내 도령’ 타령부터 부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텍스타일은 네이버가 며칠 전 공개한 설치형 블로그 툴입니다. 텍스트큐브나 워드 프레스, 무버블 타입처럼 독립형 서버나 호스팅 서버에 깔아서 운영하는 또 다른 블로그 저작 도구인 것이죠. 이 텍스타일이 나오기까지 그 기반이 된 것은 제로보드 XE, 아니 엑스프레스엔진(XpressEngine)입니다. 따지고 보면 XE를 개발하면서 만들어진 수많은 코드와 자산을 이용해 만든 파생 상품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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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XE는 네이버 안에서도 수익 걱정없이 만들고 있는 서비스 중에 하나입니다. 제로보드를 만든 고영수 님(현 네이버 오픈UI TF장)이 네이버로 옮긴 뒤 제로보드 XE와 XE(XpressEngine)를 연이어서 만든 것도 이러한 네이버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기업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느껴지는 오픈소스에 대한 네이버의 기여도를 감안하면 XE가 해야 할 역할은 있지만) 오픈소스 개발자가 불안감 없이 안정적인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분명 좋은 일이긴 해도, 상대적으로 고민이 부족한 부문도 없잖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XE 기반의 텍스타일도 많이 고민한 끝내 나온 툴이라지만 그 고민이 정작 설치형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해 당사자와 다르다면, 그럴 때 ‘부잣집 막내 도령’을 탓하기 마련이죠. ^^


베타 아이디를 받아 2주 전부터 텍스타일을 써보고 간담회를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텍스타일의 특징은 모듈형 편집기를 채택한 점과 글감 수집기라는 웹 캡처 도구를 넣었다는 점입니다. 모듈형 편집기는 XE의 특징을 살린 편집 시스템이고, 글감 수집기는 텍스타일을 만든 목적을 가장 잘 대변하는 재주였습니다. 티스토리나 텍스트큐브의 문서 편집기와 전혀 다른 스타일이라 말로 설명하는 것은 조금 어렵습니다. 아래 동영상을 보는 게 이해가 빠를 듯 싶네요.



텍스타일을 기획한 이남우 님에 따르면 “좀더 좋은 품질의 컨텐츠를 더 쉽고 편하게 만들 수 있도록 모듈형 편집기를 넣은 것”이라고 합니다. 메모를 해둔 포스트잇의 순서를 바꿔가면서 글을 만들어내는 듯한 편집기라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웹에서 메모를 하기 위한 포스트잇의 기능으로 글감 수집함이라는 것을 넣은 것입니다. 글감 보관함은 특정 웹사이트에서 발췌할 글이나 사진, 링크가 있을 때 이를 자기 블로그에 저장해 놓는 자바 스크립트입니다. 네이버 툴바를 깔 필요도 없고, 그저 즐겨 찾기에 링크를 걸어 놓은 뒤 필요한 때 수행만 해주면 자동으로 글감 수집기에 들어갑니다.


이 두 가지가 텍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만, 역설적으로 문제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남우 님은 “텍스타일이 좀더 편하고 가치 있는 컨텐츠를 만드는 편집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습니다. 편집 툴만 바꾼다고 독자가 보는 그 결과물까지 달라진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만약 텍스타일이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편집 도구라는 측면이라면 정말 획기적이라 하겠지만, 이번 버전은 그만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텍스타일을 쓴다고 해도 결국 컨텐츠의 질은 저작자의 글쓰기 능력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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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타일의 모듈형 편집 툴과 오른쪽의 글감 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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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타일에서 보는 컨텐츠
오히려 모듈형 편집기를 위해서 선보인 글감 수집기가 더 말썽입니다. 최근 불거진 저작권 이슈에 시스템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이니까요. 블로그에 글이나 사진,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정말 쉽게 옮길 수 있지만, 자칫하다가는 펌질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우려도 많습니다. 자동으로 출처가 삽입되긴 하나 이는 편집 중 얼마든지 지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저작자가 마음만 먹으면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자기 글에 넣는 것도 가능합니다. 얼마든지 악용될 가능성은 많아 보입니다.


모듈 편집과 글감 수집기로 종전 블로그 툴과 차별화를 시도했으니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나름 차별성을 갖췄다고는 하나 결과물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편집 방식이 다르다해도 결과물이 같다면 툴을 바꿔 쓸 의미가 있는 지 되새겨 볼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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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긁은 뒤 글감 수집기를 작동하면 텍스트가 모두 텍스타일 블로그에 저장된다.
또한 간담회에서 글감 수집기에 대한 이의가 많았던 배경에는 네이버에게 좀더 엄격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달라는 요구가 그 이면에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출처의 첨삭이 컨텐츠를 만드는 이의 의지에 달린 것은 맞지만, 이에 대한 경각심은 시스템에서 얼마든지 일깨울 수 있으니까요. 개발 당시에는 저작권에 엄격하지 않았다는 말은 이해한다 쳐도, 어찌됐든 지금은 엄격한 상황에 맞게끔 그에 따른 보완책을 반영하는 게 맞겠지요.


텍스타일은 이제 시작입니다. 아직 정식 버전도 아니고 0.9입니다. 텍스타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서는 너무 엄격하게 볼 필요가 없다고들 말합니다. 잘 되는 서비스 가운데 일단 써보고 이용자들의 흐름에 따라 기능이 더해지거나 개발 방향이 바뀌는 사례가 많았으니까요.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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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타일 관리 화면
하지만 실험적인 다른 서비스와 달리 네이버의 텍스타일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는 점에서 보면 미리 짚고 넘어가는 게 오히려 더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냥 있는 것(XE) 갖고 만드는 게 아니라, 지금 설치형 블로그 툴에서 볼 때 정말 아쉬운 뭔가를 해결할 수 있는 저작 도구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지요. 그 아쉬움은 편집 툴이 아니라 결과물입니다. 다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편집기, 저작권을 보호하면서 편집을 도와주는 글감 수집기를 가진 설치형 블로그 툴이라면 가치는 달라지게 되겠지요.


텍스타일. 그냥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설치형 블로그라는 것보다, 이런 기능 때문에 꼭 쓰고 싶은 것으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쓰려면 쓰고, 싫으면 말아라”라는 식의 개발 의지라면, 정말 생각 짧은 ‘부잣집 막내 도령’이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나온 설치형 블로그 툴과 다른 컨텐츠를 만들 수 있는 저작 도구로서 가치를 갖기를 바라는 게, 설치형 블로그 툴을 다루고 있는 저만의 욕심일까요? ^^


덧붙임 #


1. 글감 수집기로 불러들일 수 있는 글자수 제한, 출처 편집 시 경고와 함께 다른 출처로 대체하지 않을 경우 출처 편집 불가, 또는 글감으로 수집한 글의 이미지화 같은 기능을 제안합니다.


2. 글감 수집기는 오픈캐스트에 더 잘 어울리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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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캐스트에 더 잘 어울리는 글감 수집기
3. 블로그 데이터 백업은 TTXML을 따를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티스토리나 텍스트큐브 등으로 데이터를 내보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만 텍스트큐브 닷컴의 TTXML 데이터를 불러와 보니, 일부 분석이 덜 된 듯한 결과가 나오더군요. 스팸 댓글과 트랙백이 모두 노출되고 댓글 관리 등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4. 다른 기능에 대해서는 일부러 말씀 안드렸습니다. 텍스트큐브나 티스토리에 비해 특별히 나은 점을 찾기 힘들어서요.

5. 저와 같은 설치형 블로거들의 또 다른 고민은 트래픽을 어떻게 줄이느냐는 것도 있답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24 Comments

  1. 2009년 8월 1일
    Reply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행복 가득한 하루되세요 ^^

    • 칫솔
      2009년 8월 3일
      Reply

      고맙습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

  2. 2009년 8월 2일
    Reply

    난 이미 갈아탔음. 토요새가 엄청 말렸지만..

    • 칫솔
      2009년 8월 3일
      Reply

      벌써 갈아닸나요? 대단.

  3. 2009년 8월 2일
    Reply

    저도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건가 싶기도 합니다.
    XE도 처음부터 실사용하다가 피봤었는데(?) 텍스타일은 아직 0.9밖에 안되니까 버전업 좀 되면 다시 실사 여부를 생각해볼 생각입니다.

    • 칫솔
      2009년 8월 3일
      Reply

      기대가 좀 컸던 것은 사실이고요. 아마 여러 개선안이 요구되고 있으니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

  4. 2009년 8월 2일
    Reply

    칫솔님 항상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ㅎ
    제 블로그 자주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

    행복한 하루되세요~

    • 칫솔
      2009년 8월 3일
      Reply

      아.. TV속 세상님 블로그에 댓글을 달려고 했더니 티스토리 로그인 하라고 나와서 댓글을 못달고 있어요. ㅜ.ㅜ

  5. 2009년 8월 2일
    Reply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네이버에서 새로 내놓은 티스토리 같은 서비스군요.
    지금 티스토리에 만족하고 있지만, 경쟁을 통해서 서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네요.

    • 나그네
      2009년 8월 3일
      Reply

      티스토리와는 다른듯 합니다. 티스토리가 설치형 블로그는 아니니까요 텍스트큐브를 언급하시는게 맞을듯.

    • 칫솔
      2009년 8월 3일
      Reply

      아.. 네이버는 티스토리 같은 가입형 서비스로 텍스타일을 서비스할 계획은 없답니다. ^^

    • 2009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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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그렇군요. ^^;;;
      네이버만 쓰다가 티스토리로 건너온지 이제 몇달 안되서 티스토리만 봐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설치형 블로그라는 건 완전히 서버도 자기걸 쓰는거군요.
      아직도 배울게 너무 많네요…

  6. 2009년 8월 2일
    Reply

    글감 편집기 보면서 네이버스런 기능이군 이라고 생각했는데….
    XE도 네이버 문화에 물드는 모양…

    • 칫솔
      2009년 8월 3일
      Reply

      네이버에서 만드니까요. ^^

  7. 2009년 8월 2일
    Reply

    동명의 웹어플이 있지 않나요?? 외국에서 나온 이와 비슷한 어플의 이름도 엑스프레스 엔진이던데…

    • 칫솔
      2009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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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줄여 XE라고 부르는 걸까요? ^^

  8. 2009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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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또 네이버가 설치형 블로그 서비스를 한다고; 그냥 소프트웨어군요.
    근데 이거 대중화시켜버리면 문제겠는데요. 가뜩이나 마구잡이로 퍼가는 네이버 블로거들로 인해 욕처먹는 네이버인데.. 뭔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 칫솔
      2009년 8월 3일
      Reply

      네.. 직접 설치해 쓰는 블로그 툴입니다. 그렇다보니 많이 쓸 거라는 생각을 안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

  9. 1999년 제로보드가 태생한 이후 밤새 FTP계정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면서, 코드를 들쳐보던 날들이 생각나네요. 아마도 그때 제로보드 게시판을 써본 사람들이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 아닐까 합니다. 사용자들이 직접 제작한 스킨을 설치하고, 설치의 일부 템플릿이 잘 안먹힐때는 제로보드 QnA를 뒤적거리며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지났던 날들. 이제는 편한 블로그 서비스들이 나와서 그런 불편함, 밤새 내 블로그가 안전하게 돌아갈까? 그리고 제로보드 게..

  10. 2009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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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8일 저녁 강남 토즈점에는 NHN의 새로운 설치형 블로그툴 텍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일련의 블로거들이 자리했다. 텍스타일(TEXTYLE)은 이제는 NHN이 이끌고 있는 제로보드XE의 XE 엔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설치형 블로그 툴로 텍스트큐브와 같은 오픈 소스 프로젝트로 규모를 키워갈 것으로 보인다. 간담회는 텍스타일의 개발진 중 한명인 이남우님의 진행으로 텍스타일의 탄생 배경부터 실제 텍스타일의 모습을 시연하고 나아가고자..

  11. 2011년 3월 2일
    Reply

    차라리 글갑스크랩 도구로 스크랩만 글들은 ‘출처 변경 불가’와 ‘내용 수정 불가’를 적용해버렸으면 좋겠는데요… 하아~……

  12. 2012년 11월 17일
    Reply

    텍스타일은 기본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을 위한 툴 같습니다.
    개인용과 서비스용으로 나누어 설치할 수 있는 텍스트큐브와는 달리
    서비스용으로 사용하기 적합한 형식의 프로그램 입니다.

    문제는 지금 텍스타일의 판올림이 몹시 더딥니다.
    최신XE에 최신 텍스타일을 설치해보니 아얘 호환이 안됩니다.
    개발우선순위에서 몹시 밀려났다고 하네요. 여러가지 부족한
    프로그램 주제에 한참동안 판올림도 하지 않다니요;;

    • 칫솔
      2012년 11월 20일
      Reply

      요즘 국내 저작툴의 업데이트가 많이 느립니다. 설치형 텍큐도 느리고요. 역시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도구들도 발전할 동력이 없는 게 아닐런지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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