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타는 PC의 구세주가 아니다

얼마 전에 모 PC 업체 홍보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뜸 묻더군요.
“PC를 살릴 방법이 없을까요?”


살아 있는 생명체도 아닌 PC가 죽었으니 살리자는 얘기로 듣지는 않으셨을거라 믿습니다. ^^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PC 시장이 한 업체의 홍보 담당자로 하여금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든 것입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PC시장은 아슬아슬하긴 해도 두자릿수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한자릿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제 두자릿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PC부품은 더 좋아졌고 디자인은 세련되었으면서 업체들의 사후관리는 더 좋아졌습니다. 그럼에도 탄력은 커녕 마치 고무줄로 끌어 당기듯 성장 그래프의 곡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 오고 있으니 답답할만도 합니다.

잘될 때는 다 좋아보이고, 안될 때는 모든 게 안좋아 보이는 법입니다. 지금이 후자처럼 모든 게 안좋게 보이기 시작한 때라는 것입니다. 업체들이야 쉬쉬하며 일부러 입을 막거나 요즘 잘 나가는 노트북으로 썩 좋지 않은 PC쪽 분위기를 덮으려고 합니다. 그 담당자도 “노트북은 이벤트만 해도 기본은 한다”고 말할 정도니 어찌보면 시장이 역전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PC 업체들의 착각입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노트북이 아닙니다. 노트북이 PC 시장을 치고 들어와서가 아니라 PC 시장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연초부터 어느 PC 업체 하나는 올해 안에 삼보나 현주처럼 큰 일이 날 거라는 소문도 돕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그런 소리가 들리니 걱정부터 앞섭니다.


무엇이 이처럼 PC 시장을 어렵게 만들었을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이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소비자가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당연히 소비자가 왜 PC를 선택하지 않는지 따라가봐야 겠지요. 노트북을 선택하는 게 하나의 이유일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그다지 큰 이유도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용자가 생활 패턴이나 컴퓨팅 환경을 분석해 만든 PC가 한 대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


PC 업체들은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같은 외적 요소의 의존도가 너무 높습니다. 좀더 빠른 CPU, 안정된 메인보드 칩셋, 강력해진 그래픽 카드, 널널한 하드디스크, 차세대 광학 드라이브 등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운영체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언제 출시하는지가 PC 업체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지금도  비스타 무료 업그레이드를 미끼로 팔려는 업체가 대부분입니다. 운영체제가 킬러 엡이 되었던 옛 모습들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고성능 PC가 필요한 특수 직종을 빼고 일반 이용자 입장에서는 더 이상 빠른 하드웨어도, 더 화려한 운영체제도 필요 없습니다. 게임은 콘솔에 밀려 더 이상 PC의 킬러 앱 역할을 못한지 수년 째 되고 있습니다. 영화는 저사양 PC나 DivX 플레이어면 족합니다. 게임만 하거나 인터넷만 하거나 그래픽이나 워드 작업만 한다면 이전에 있는 것들로 충분하기 때문에 새 PC를 사야 할 이유마저 없어진지 오래됐습니다. 이들에게 비스타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미 윈도 XP만으로도 등 따시고 배까지 부른 상황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PC를 사야할 이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어떤 증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소비자 이용 패턴을 겨냥해서 나왔던 PC들은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거실에 쓰는 미디어센터 PC입니다. 한계는 있었지만, 그래도 PC를 리모컨으로 다루는 미디어 센터 PC는 2006년에 성장이 두드러졌습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미디어 센터는 TV와의 결합에서 끝났습니다. 지금은 이용 패턴이 더 확장된 터라 PC 업체 대응이 더 빨라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드웨어와 운영체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소프트웨어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PC 업체가 하드웨어만 팔겠다는 틀을 깨라는 겁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나라는 지금 UCC 열풍입니다. UCC를 위해서 준비된 PC. 제가 생각해도 타이틀이 괜찮네요. ^^;; 동영상 UCC를 만들 수 있는 PC 어떻습니까? 기본 하드웨어 위에 동영상 캡처가 되는 고화질 PC 카메라 정도는 포함하는 걸로 끝내지 말고 이 영상을 캡처하고 편집하고 인터넷용으로 변환해 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PC 말입니다. 당연히 원-투-쓰리로 작업을 끝내는 초간편 툴이어야 합니다. 무조건 쉽게 만들 수 있게 말입니다.
(어느 분께서 휴대폰으로 찍는게 더 쉽다고 생각하고 계시겠지만, 이 예제의 초점은 편집용 툴과 같은 소프트웨어입니다.)


동영상 UCC말고, 블로그를 만드는 일은 어떨까요? 초간단 블로그 툴을 넣어 PC에서 작업한 동영상이나 사진, 글을 포털이든 설치형이든 올리면 편하지 않을까요?  녹화한 HD 방송을 DVD 타이틀로 백업하는 것은요? 아니면 DivX로 압축해 보관하는 것은? 음악 작곡도 될까요? 내가 만든 음악을 MP3 CD로 굽거나 DVD 배경 음악으로 담는 것도 좋겠죠?


위의 예제에 맞거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윈도를 넣은 상용 PC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소프트웨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맥을 벤치마크 해볼까요? 아이라이프 말입니다. 아이라이프는 동영상과 사진, 음악 같은 컨텐츠를 제작, 편집하고 인터넷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멋들어진 DVD 타이틀로 만들어 냅니다. 멋지지 않나요? 가끔 맥을 리뷰할 때마다 아이라이프가 너무나도 부럽습니다. 제 개인 경제가 조금만 더 넉넉해 지면 아이라이프가 들어 있는 맥 미니 정도는 하나쯤 사고 싶습니다. (참고로 아이라이프 ’06은 인텔 맥에는 기본 포함. 별도 구매 9만9천 원.)


지금 PC에는 아이라이프 같은 도구가 필요합니다. 비스타가 아니고요. 비스타를 넣는다고 PC가 새삼스러워지나요? 예뻐지기는 하겠죠. 하지만 브랜드만 다를 뿐 거기서 거기입니다. 게임이나 운영체제, 고성능 하드웨어 등 외적 킬러 앱들에 의존했던 그동안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면 PC에 대한 구매력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PC의 경쟁력이라는 것이 값, AS, 디자인이라면 이 중에 한 두가지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용자가 PC를 편하고 즐겁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킬러 앱을 스스로 찾거나 만들어내십시오. 모든 업체에 바라지 않습니다. 한두 업체만이라도 그런 시도가 있기를 바라고 가능성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PC의 형태도 지금과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나라 아파트나 주택의 거실 구조를 분석해 TV 아래에 두고 쓸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하거나, 모니터 일체형이나 TV 임베디드도 고려해볼만한 일입니다. IPTV 같은 기간 서비스에서 PC의 활용도를 높이도록 발빠른 연구와 협업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개인용 컴퓨터의 개념에서 패밀리 컴퓨터 또는 임베디드 컴퓨터 같은 컨셉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위기는 오고 있지만, 아직 큰 위기가 안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위기가 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해야 할 때입니다. 2006년 3분기 1위 타이틀을 hp에 빼앗긴 델도 지금 히히덕 거리는 상황이 아닙니다. 직접 마케팅을 포기하고 총판 체제 도입도 거론되는 상황입니다만, 하드웨어를 싸게 보급하는 델 같은 영업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값싼 PC 시장도 포화된 마당에 개성 없는 하드웨어는 더 이상 이슈거리를 낳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하시면 될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이용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PC 이용 환경을 다시금 철저하게 분석해 보십시오. PC 전문지 기자가 신나게 기사를 쓸 수 있는 그런 제품을 기대하겠습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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