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며칠 전에 했던 기자 간담회에서 알파고와 모든 대국을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데미스 하사비스의 설명을 듣고 보니 5대 0까지 안나올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여전히 자신은 있습니다. 인간끼리 두는 대국이라면 더 긴장하겠지만, 기계와 대국이라 사람에게 느껴지는 그런 긴장감과 다릅니다.
단지 긴장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기술적으로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지만, 알파고가 수를 읽는 이해의 차이 때문입니다. 인간이 1천 수를 읽는다면 알파고는 이전보다 오히려 생각의 폭을 상당히 줄였네요. 그래서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 본 것입니다. 저는 인간의 직관력을 컴퓨터가 따라오긴 힘들다고 봤거든요. 단지 조금 전 설명을 듣다 보니 그 직관이란 게 어느 정도 모방이 가능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어쩌면 그 직관의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어 조금은 긴장해야 할 것 같네요.
어쩌면 이번 대국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판을 졌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요. 단지 인공 지능 역사의 한획을 그을 뿐이죠. 인간은 인간적인 실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대 0으로 이기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인간적인 실수가 나오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 기사이기에 인간적인 실수를 줄이려 노력하지만, 그 인간적인 실수가 나오면 질 수도 있는 것이죠.
흥미로운 것은 제가 질 경우 바둑계 전체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데요. 언젠가 인간이 인공 지능과 바둑 대결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는 큰 문제가 아니에요. 인공 지능이 인간을 이겨도 어쩔 수 없는 것이죠. 단지 바둑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바둑의 아름다움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두는 것은 아니니까요. 때문에 이번 게임은 인간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네, 최선을 다해 이기기 위해 나름 대로 훈련도 하고 있습니다. 알파고를 상대로 한 가상 훈련도 매일 1~2시간 정도 하고 있어요.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과 비슷하죠. 프로 기사의 머릿속에 바둑을 두는 상황을 추가하는 거에요. 바둑판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알파고와 바둑을 둘 그곳의 풍경을 그려 넣고 대국 훈련을 치르는 것이죠.
물론 지난 10월에 열린 알파고 대국도 보긴 했습니다만 그것은 지금 무의미해요. 그 때는 알파고의 수준이 아마 최고수 정도였고, 프로로 보기는 무리였거든요. 지금은 판단하기 어렵네요. 얼마나 수준이 올라 왔을지 기대를 하기 때문에, 저도 가상 훈련을 통해 단련하는 중입니다.
혹시 제가 변칙적인 수를 잘 둔다는 이유 때문에 알파고에게 그런 수를 쓰지 않을지 기대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그게 제 마음 대로 변칙적인 경기를 할 수도 없습니다. 바둑은 변칙적인 수를 두고 싶어서 두는 게 아니거든요. 억지로 만들어갈 것 같진 않습니다. 느낌으로 어느 정도 변칙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좀더 긴장하면서 준비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컴퓨터가 인간에 도전하는 것은 10년 정도 더 뒤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굉장히 놀랐어요. 이 대국 요청이 왔을 때 승락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호기심이 컸거든요. 때문에 그냥 보는 것은 성에 차지 않을 것 같고, 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 숱한 대국을 해온 것과 확실히 낯선 느낌이네요. 새로운 기분이라 좋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둘 때는 기개를 읽는 것이 중요한 데, 이 대국에서는 그런 것을 읽을 수 없어요. 그냥 저 혼자 두는 것일 수도 있죠. 가상 훈련에서 이 느낌을 극복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무튼 첫판을 진다는 생각은 안하는데요. 첫판을 지더라도 심리적 영향은 없을 거에요. 첫 판을 지고 심리적으로 무너진 판 후이 2단과 다른 점이 바로 경험의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사실 바둑에서 상대의 감정은 비율로 따지기 힘들 만큼 매우 중요하지만 이 대국에는 그 부분이 없어요. 인공 지능은 감정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만큼 알파고와 대국은 대단한 경험이에요. 다시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겠죠. 반드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내일 재미있고 아름다운 바둑을 두겠습니다.
* 이 글은 8일 오전 포시즌 호텔에서 진행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기자 간담회에서 이세돌 프로가 말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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