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연결했던 이동통신,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가?

3월 초에 막을 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이하 MWC)의 부대 행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행사가 하나 있다. 바로 글로벌 모바일 어워드(Global Mobile Award)다. 해마다 모바일을 통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 가치 있는 기술이나 제품에 주는 상으로 6개의 대분류로 나뉘어 있는 여러 개의 수상 항목에서 해마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기업이나 단말 제조사들의 이름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해에는 LTE 이동 통신 기술의 보급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우리나라의 두 이통사가 상을 나눠 갖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국내 단말 제조사만 몇 개의 상을 수상했을 뿐 우리나라 이동통신 업체들의 이름을 수상자 목록에서 찾아볼 수 없다. 상이야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수상하지 못한 것을 탓할 일은 절대 아니다. 다만 이동통신사가 받을 수 있는 통신 기술 관련 수상 항목뿐만 아니라 좀더 삶과 연결된 상이 있다는 점에서 이 상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모바일 어워드의 수상 목록에는 모바일과 삶을 연결하는 혁신적인 활동을 했거나 소비자를 위해 좀더 노력이 돋보인 업체에게 맨 처음 상을 준다. 카테고리 1과 2에서 주어지는 상들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모바일 어워드 카테고리 1의 수상 항목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미심장하다. 의료와 교육, 자동차, 전자상거래, 사물인터넷 플랫폼의 혁신을 일으킨 업체들에게 주는 상들이 여기에 몰려 있다. 비록 세부 수상 항목이 해마다 바뀌지만, ‘CATEGORY 1: THE CONNECTED LIFE AWARDS’라는 대분류는 아직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점에서 단순히 기술적 특징을 전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통신으로 연결된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만든 상이라도 그 줄기는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구축해 온 이동통신 기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기술이 충분치 않으면 어떤 삶도 제대로 누리지 못할 수 있음은 이견이 없어서다. 단지 핵심 가치는 그 기술 자체에 두는 것이 아니라 기술로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더 나은 ‘삶’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의미를 바꾸진 못한다. 이동통신 서비스를 펼쳐온 지난 30년의 우리나라 이동통신 산업이 바꾼 삶의 풍경을 들여다 보더라도 이와 다른 맥락이라 말할 수는 없다. 비록 기계와 기계가 연결되는 세상이 오고 있어도 어디까지나 그것 역시 이동통신 사용자가 건강하고 풍부한 지식과 쉽고 안전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이동통신은 그냥 기술로만 말할 수 없는 삶을 관통하는 또다른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요즘 우리의 이동통신 시장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이동통신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삶의 그 무언가를 연결해왔던 기술이라는 관점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부터 고통스러운 삶의 또 다른 원인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다. 과거보다 수십, 수백 배 빨라진 오늘날의 초고속 이동통신기술은 더 많은 것을 빠르게 이룰 수 있도록 기술적인 진화를 맞이한 것은 틀림 없음에도 그런 노력을 기울인 이동통신사를 향한 시선은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이동통신의 가치에 집중할 수 없는 이유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적어도 팍팍한 우리의 삶을 더 무겁게 만드는 원인으로 이동통신 요금이 지목된 이상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다음을 말하긴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단통법이 시행된 이후 이동통신 사업자나 이용자의 관점은 돈으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통신의 가치를 돌아보려는 노력과 설득 대신 당장 몇 푼의 돈이나 휴대폰 같은 물질이 이동통신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동통신 사업자의 모든 마케팅도 좀더 싼 요금, 좀더 좋은 휴대폰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꼼수만 가득 내놓는다. 그렇기에 거실에 둘러 앉은 가족과 함께 보는 이통사들의 TV광고는 그저 씁쓸한 것인지도 모른다. 휴대폰을 공짜로 준다는 이통사의 포인트 정책에 얼굴 한번 보지 않았던 친척을 찾고, 갑자기 부모님을 모시려고 나서기도 하고, 특정 이통사를 쓰는 남편을 좋다고 말하는 우리나라 이동통신 광고를 보며 그런 생각이 어찌 들지 않을까? 이동통신 사업자들 스스로 더 큰 이익, 또는 단통법 시대의 생존을 위해 이동통신의 가치를 물질로 대신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서 보던 TV 광고는 이러지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단순한 관점이라 해도 삶을 연결하는 이동통신의 가치를 절묘하게 담은 의미있는 광고가 적지 않았다. 지나치게 품질이 좋으니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휴대폰을 꺼두라고 했을 때도, 처음 아빠라 말하기 시작했던 갓난 아기의 목소리를 전달했을 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이동통신이 아니라 이동 통신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확하게 메시지를 담았고 우리는 공감했던 것이다. 적어도 물질의 삶보다 마음의 삶이 있는 그런 광고가 있던 것이다.
 
그런 광고를 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분명 다른 시대다. 뭔가 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자극적인 카피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야만 살아남는다고 여기는 세상에서 옛날 것을 논하는 것을 고리타분한 이야기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1990년대 복고 음악이 유행하는 것은 단순히 추억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지금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면 옛 이동통신 광고를 지금 다시 그리워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물질에 종속된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이동통신도 한낱 물질주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식의 이야기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찾아서 지켜주는 오래된 가치에 다시 집중하는 그날이 되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아무리 기계와 기계끼리 대화하는 시대로 바뀐다 한들 그 중심에 사람의 마음과 삶을 뺀 물질만 좇는 이동통신은 너무 공허하지 않는가?

덧붙임 #

* 이 글은 지난 3월 말 스마트초이스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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