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돌지 못하는 톱니바퀴, 인텔과 구글

앞서 구글이 차기 크롬 OS를 ARM 아키텍처의 장치에서도 쓸 수 있도록 작업 중이라는 이야기를 정리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 하나 있다. 구글과 인텔, 그 두 공룡의 궁합 말이다. 지금까지 구글은 인텔과 신규 비즈니스에서 손을 맞잡고 일을 해 왔다. 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두 생태계의 공룡이 만난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틀림 없지만, 그렇다고 그 둘이 손을 맞잡은 소비재 부문을 보면 그다지 긍정적인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틀림 없어 보인다. 구글과 인텔이 협력하고 있는 다음의 세 가지 소비재 부문의 상황은 대략 이렇다.


구글TV


2010년 5월 20일 구글 I/O에서 공식 발표된 구글 TV는 웹브라우저를 이용한 인터넷 검색과 TV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있도록 고안된 셋톱, 또는 인터넷 TV를 위한 스마트TV 플랫폼이다.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방송 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응용 프로그램 등 다양한 컨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고, 케이블 TV와 위성 방송 셋톱까지 구글 TV에서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구글TV, 소니 인터넷TV
구글TV 플랫폼을 처음 적용한 소니 인터넷TV. IFA 2009에서 처음 선보였다.
첫 구글 TV 플랫폼을 채택한 제조 업체는 소니와 로지텍. 소니는 블루레이 플레이어 기능을 포함한 셋톱과 인터넷 TV를, 로지텍은 셋톱만 선보였다. 이들 제품에 쓰인 프로세서는 모두 인텔 아톰 기반의 CE4100 SoC. CE4100은 인텔이 가정용 컴퓨팅 장치를 위해 만든 저전력 x86 프로세서로 구글TV 플랫폼은 이 프로세서에 맞게 최적화했다. 구글은 구글 TV 플랫폼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운영체제 업데이트나 SageTV 같은 서비스를 인수했다.


그런데 인텔 SoC를 쓴 1세대 구글TV에 대한 반응은 좋은 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기가옴에 따르면 첫 구글 TV인 레뷰와 소니의 판매량은 최근까지 100만 대에 이르지 못했고, 자이로직은 60~90만 대 정도의 구글TV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구글은 지난 CES를 기점으로 인텔 뿐만 아니라 ARM에서도 새로운 세대의 구글TV 플랫폼을 쓸 수 있다고 발표했고, 이에 소니 뿐만 아니라 LG와 비지오가 구글TV 진영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1세대 인텔 SoC를 넣은 레뷰를 생산했던 로지텍은 추가 제조를 포기, 단종을 선언하면서 99달러에 떨이 판매를 단행했다.


크롬북


크롬북은 간단하게 말해 구글 크롬OS를 얹은 노트북형 장치를 일컫는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다르게 크롬북은 노트북과 같은 작업 환경을 지향하면서도 앱을 다운로드하는 편의성을 강화하고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문서와 일정, 메일, 시스템 보안 등을 관리할 수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구현한 크롬OS를 얹은 것이 특징이다. 크롬북의 발표는 구글TV를 발표한 1년 뒤의 2011년 5월 구글 I/O였고, 그에 앞서 CR-48이라는 크롬북 시제품을 공개한 바 있다. 상용 제품은 삼성과 에이서가 만들었다.


삼성 크롬북
삼성 시리즈5 크롬북. 도대체 몇 대나 팔렸는지 알 수가 없다.
크롬북은 인텔 아톰 프로세서를 넣은 넷북 기반의 장치다. 크롬OS가 ARM에서도 작동하지만, 초기에는 ARM 아키텍처가 배제된 채 인텔 프로세서만 작동했고 최근 이를 지원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어 다시금 관심을 끌고 있다. 구글 TV에 이어 크롬북까지 ARM으로 나오면 인텔에게는 상당히 치명타를 안겨줄 일일 수 있다.


일단 인텔과 함께 내놓은 크롬북은 소비재 시장에서 외견상 성공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지난 해 11월까지 에이서가 5천 대의 크롬북을 판매했다는 대만 디지타임즈의 기사를 인용 보도했다. 이에 반해 삼성의 시리즈 5 크롬북은 얼마나 팔렸는지 집계 조차 되지 않았다. 아직 1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일 수 있으나 소비재 시장에서는 그다지 큰 반응은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대량 납품에는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지디넷에 따르면 2만7천 대의 크롬북이 일부 미국 학교에 설치될 것이라고 전한 소식이 있는데, 이러한 방향으로 가다보면 소비재 시장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구글과 인텔, 누구의 잘못이랄 것도 없이 소비재 시장에 대한 첫 단추를 잘못 꿴 듯하다.


모바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MWC에 전시된 인텔 레퍼런스 스마트폰. 얼마나 많은 제조사가 만들지 알 수 없다.
인텔이 스마트폰, 스마트패드(태블릿) 같은 모바일 부문에서 구글과 본격적인 협력을 하기로 한 것은 그리 오래 된 이야기는 아니다. 구글이 인텔 아키텍처에서 안드로이드를 쓸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는 것은 고작 몇 달 전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CES 때 인텔 레퍼런스 스마트폰을 공개했고, 레노버를 비롯한 몇몇 PC 제조사가 스마트폰을 만들 계획을 공개했지만, 이것이 성공할 지는 실패할지 지금 단언하기는 힘들다. 다만 ARM을 대신해 인텔 아키텍처가 자리를 잡기에는 이 시장이 너무 확고해서 탈이다. 인텔 독점의 운영체제가 아닌 만큼 그 틈새를 뚫어야 할 책임은 인텔이 갖고 있다.


잘 돌지 못하는 인텔과 구글의 톱니바퀴


마이크로소프트가 ARM을 지원한다는 소식이 나오던 전후로 구글이라는 새로운 파트너를 얻었던 인텔이지만, 지금까지 협력의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다. 구글과 단독 파트너십을 맺었던 구글TV와 크롬북은 성벽을 올려보기도 전에 ARM 진영에도 문을 열어야 했고, 모바일 부분은 구글에서 문을 열었지만 이미 ARM이 시장을 꽉 움켜쥐고 있다. 이상하게 인텔에게만 불리한 게임처럼 진행되는 느낌이다. 구글TV나 크롬북은 어디까지나 구글의 잘못이 없는 게 아닌 데도 인텔만 점점 불리한 상황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인텔과 구글, 어느 쪽이 문제든 분명 둘의 관계는 톱니가 잘 맞물리지 않은 보이는 것은 그냥 착각일까? 지금까지 결과만 보면 그것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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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sol Written by:

2 Comments

  1. 2012년 4월 2일
    Reply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정말 좋은 내용의 글이네요~

    • 칫솔
      2012년 4월 2일
      Reply

      운이 좋은 사람만 볼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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