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도 의문이었지만, 지난 몇 주 동안 손목에 차고 다녔던 페블을 왜 많은 이들이 극찬을 하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잘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제품이 기능적으로 특별히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해 블랙 프라이데이를 전후로 200달러에서 150달러로 가격을 내린 덕분에 구매 부담이 상당히 적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것이 할 수 있는 기능과 성능은 명확하다. 아마 비슷한 시계를 찾는 이들에게 페블은 좀더 수월하게 접근할 만한 제품이라는 것은 틀림 없다.
하지만 그런 이유 만으로 페블을 더 나은 제품으로 결론내리는 것에 반대한다. 다른 제품을 제대로 써보지 않은 몇몇 사람들로부터 페블이 본받을 만한 제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만듦새와 다른 것-크기는 알맞을 지 몰라도 난 이것이 정말 장난감처럼 보인다-도 하나의 이유지만, 적어도 우리의 환경에서 페블을 칭찬하는 것은 좀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호불호가 다른 만듦새에 대한 이야기는 건너뛰고, 일단 페블은 우리나라에서 쓸 수 있도록 준비된 제품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글이 표시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팔 제품이 아니어서 한글이 빠진 것은 이해하지만, 한글이 나오지 않는 제품에 박수를 쳐줄만큼 여유가 많은 편은 아니다. 언어 문제는 페블을 비롯한 스마트 장치의 알림을 표시하는 모든 컴패니언 장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적어도 한글을 쓰는 우리나라에서 페블은 잘 준비된 제품이라고 보긴 힘들다.
그나마 개인 개발자인 ‘입큰하마’님이 페블 한글 펌웨어를 공유한 덕분에 그 비판을 조금은 줄일 수 있게 됐다. 아마도 페블 이용자들이라면 입큰하마님께 무한한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게다. 또한 페블용 앱을 설치해 한글을 표시하는 방법도 공개되었다. 그러나 한글을 보기 위해 개인 개발자가 시스템 펌웨어를 손봐야 하고 편법을 써야 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최신 펌웨어가 나와도 한글이 가능한 펌웨어가 나올 때까지 함부로 업그레이드할 수도 없다.
한글 문제와 관련한 고비를 넘기면 설정은 어렵진 않다. 물론 페블 관리 앱도 한글과 거리가 먼 상황이긴 하나 충분히 넘길 수는 있을 듯하다. 단지 접근성을 설정해야만 페이스북 메신저 같은 안드로이드 서드파티 앱의 알림을 받을 수 있는데, 이때 스마트폰의 일부 기능이 자동으로 꺼지는 일이 있다. 한꺼번에 꺼진 설정들을 이용자가 다시 켜야 하는 문제는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 단점 중 하나다.
페블의 최대 장점은 알림이라고 한다. 그것은 맞다. 알림은 잘 들어온다. 들어와도 너무 잘 들어온다. 그렇다고 페블의 알림만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미 페블 만큼 알림이 잘 들어오는 장치들은 많아졌다. 오히려 알림과 관련된 몇 가지 기능을 따져보면 오히려 페블은 조금 눈치가 둔할 지도 모른다.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광고 메일이나 업데이트 메일의 알림까지 페블은 긁어다 알려준다. 보통 스팸 앱이 설치된 스마트폰은 스팸 전화가 오면 아주 잠깐 벨소리나 진동을 울린 뒤 자동으로 꺼지는데, 이때 페블은 스마트폰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 자신만의 알림을 계속 알린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 점은 지나간 알림을 볼 수 없는 점이다.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사라진 알림은 페블이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확인해야 한다. 물론 더 강력한 알림 기능을 가진 페블 앱을 깔아 모자란 기능을 구현할 수 있지만, 부분적인 오작동을 일으키는 탓에 안심하고 쓸 수도 없다.
그래도 구글 플레이에서 찾을 수 있는 페블 관련 앱을 보고 있으면 왜 페블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쏟는지 알 수는 있다. 페블이 너무 기본에만 충실하다보니 부족한 점은 공개된 API를 통해 다른 개발자들이 채울 수 있는 여건 자체가 다른 스마트 시계보다 낫다. 페블 펌웨어에 따라 관련 앱만 내려받을 수 있게 정리해 놓은 앱이 따로 있고 2천 개 이상의 시계 디자인을 페블 앱을 통해서 내려받을 수 있다. 시계에서 쓸 수 있는 앱의 다양성 측면에서 페블은 비슷한 제품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페블의 하드웨어적로 그런 관심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어렵다. 페블 앱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무작정 많은 시계와 페블 앱을 설치할 수 없어서다. 쓰지 않을 앱은 지우고 꼭 쓸 앱만 넣어야 하는 한계는 다음 세대의 제품을 기다리게 하는 이유다.
일주일 이상 가는 배터리, 언제나 시계를 볼 수 있는 e-페이퍼 디스플레이,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은 버튼 구조 등 익히 알려진 좋은 점에 대해선 덧붙일 말이 없을 만큼 모두 공감한다. 컬러가 표시되지 않고 밀도가 떨어지는 화면처럼 일부 부품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소리를 무시하고 본 페블은 이미 하드웨어적인 색깔 만큼은 확실히 다져가는 제품으로 여겨진다. 나는 페블이 그 특색을 더 강화하길 바란다. 단지 다른 제품들이 페블을 따라하는 없었으면 한다. 페블처럼 가벼운 환경을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 보지 않으니 말이다. 덜어낸 만큼 나머지를 채울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이용자의 부담은 늘어날 수도 있으니까. 특히 스마트폰의 컴패니언 장치는 특정 스마트폰과 더욱 더 밀착될 필요가 있지만, 페블의 길은 그런 밀착성과 조금 거리를 둔다. 그러니 다른 길을 걷는 제품의 경쟁력이 없다는 편견을 버리고 볼 필요는 있다. 페블도 다르고 그 제품들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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