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이미 가상 현실을 위한 360도 컨텐츠를 유통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외부의 컨텐츠를 유통하는 것에만 생각을 멈춘 것이 아니다. 이 유통 플랫폼이 성장할 수 있도록 컨텐츠 제작 분야에도 눈을 돌리고 있는데, 이 전략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다른 이가 만들어낼 때까지 페이스북은 인내심을 발휘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페이스북 개발자 컨퍼런스 ‘F8’에서 페이스북이 360컨텐츠 생태계의 구축에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공개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날 공개한 것은 하드웨어도 있고, 소프트웨어도 있다. 어쩌면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솔루션에 더 가깝고, 이 전략의 최종 단계는 생태계다. 더 질 좋고 안정적인 360 컨텐츠 생태계를 위해 하드웨어, 카메라 제어 프로그램, 영상 결합 및 렌더링 소프트웨어의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 부분에 필요한 것을 채우다 보니 솔루션을 내놨지만, 페이스북은 이를 홀로 갖겠다는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
일단 페이스북은 360 카메라 같은 하드웨어가 갖춰야 할 조건부터 되돌아봤다. 360 컨텐츠를 위한 카메라는 단 모든 순간이 동기화되어야만 하고, 모든 카메라가 글로벌 셔터를 통해 왜곡 없는 동일한 프레임을 저장해야 하며, 수십 시간을 촬영할 때에도 카메라가 과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충격 같은 외부 영향에도 견뎌야 하고 각 부품들을 손쉽게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덧붙였다.
그래서 페이스북은 이 기준에 맞는 360도 촬영용 카메라를 만들었다. 페이스북 ‘서라운드 360’카메라는 단순하게 말하면 360도 영상을 녹화할 수 있는 카메라다. 광각 카메라 2개를 이용하는 값싼 360 카메라와 달리 전문가 시장을 겨냥해 17개의 광각 카메라를 담았다는 게 다를 뿐이다. 포인트 그레이에서 공급하는 것으로 보이는 카메라는 185도의 각도의 F1.8-F16 밝기의 렌즈를 가졌고, 각 카메라별로 2K 영상을 최대 60프레임으로 저장한다. 또한 강한 외부 충격에 버틸 수 있도록 본체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이 하드웨어가 앞서 말한 360도 영상 캡처를 위한 페이스북의 기본 조건을 충족하는 카메라라는 것이다. 물론 값은 비싸다. 무려 3만 달러(원화 환산 약 3천450만원)에 이른다. 월급 정도는 바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면 접으라는 소리다. 아무나 사는 카메라가 아니다. 페이스북도 아무에게나 팔겠다는 말은 안한다. 이 카메라가 겨냥한 시장은 분명하다. 준전문가 이상이다.
이러한 시장을 겨냥하는 제품을 내놓은 페이스북이 단순히 서라운드 360 카메라만 발표하는 것으로 끝냈을 리 없다. 서라운드 360을 제어하는 카메라 컨트롤과 함께 촬영한 영상을 곧바로 결합하는 소프트웨어도 내놓았다. 360 서라운드에 들어 있는 리눅스 기반의 카메라 컨트롤은 각 카메라로 수신한 비가공 영상을 캡처할 때 저장 장치의 병목 현상으로 프레임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8개의 SSD를 레이드 5로 구성했다. 이를 통해 초당 17Gb(레이드 0로 묶을 경우 초당 30Gb)의 비가공 영상을 최대 2시간까지 캡처한다. 또한 HTML 브라우저에서 작동하는 간단한 웹 인터페이스로 만들어 각 카메라의 프레임과 노출, 셔터 속도, 이미지 센서 이득 등을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솔루션의 마지막은 스티칭 소프트웨어다. 360 카메라를 구성하는 수많은 카메라로 수신한 장면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은 매우 번거롭고 오랜 시간을 소비하는 연산 작업을 요한다. 아직 가공하지 않은 비가공 영상에서 RGB 영상으로 변환할 때 색, 감마, 비네팅 등 각종 값을 조정하고 동시간에 캡처한 영상을 하나로 360도로 볼 수 있는 파노라마 형태로 이어 붙이는 작업을 돕는 소프트웨어도 함께 내놓은 터라 360 컨텐츠의 후반 작업 시간을 줄이고 더 나은 품질의 컨텐츠를 만들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페이스북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까지 제대로 된 360도 컨텐츠 솔루션을 준비했다는 점은 분명해진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이날 의외의 발표를 한다. 360도 컨텐츠 생태계의 육성을 위해 서라운드 360 하드웨어 설계와 편집 프로그램 코드를 모두 오픈소스로 여름께 깃허브에 공개한다는 것이다. 하드웨어 설계와 코드가 공개되면 누구나 개선된 하드웨어를 내놓을 수 있고, 프로그램의 미비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 비록 서라운드 360과 그 솔루션이 대중적인 시장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해도 오픈소스로 개방해 더 많은 개발자와 컨텐츠 제작자가 참여하는 더 큰 생태계로 가꾸기 위한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직 360 컨텐츠 시장이 초기라서 페이스북의 이 결정이 당장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성과가 나타나려면 몇 번의 F8 행사를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은 유사 솔루션의 등장을 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360 컨텐츠 생태계에서 유통 플랫폼이라는 한 축을 담당하기로 마음을 먹은 페이스북에게 그 솔루션 자체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의 참여를 위한 기회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충분할 것이다. 360도 컨텐츠 생태계를 위해 자기 역할을 알고 희생하는 것을 페이스북도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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