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랍 속에서 잠은 자는 제품이 제법 있다. 립모션(Leap Motion)도 꽤 오랫동안 잠에 빠진 제품 중 하나다. 립 모션은 손의 제스처를 인식하는 액세서리다. 이 장치를 PC와 연결한 뒤 화면 앞에 내려 두고 그 위의 허공에서 손을 움직이면 장치의 센서가 손을 움직임을 알아채 화면에 띄운 응용 프로그램 조작한다. 굳이 마우스를 쓰지 않아도 데스크톱을 조작할 수 있고 게임도 즐길 수 있다.
립모션의 좋은 점은 비록 작은 장치이긴 하나 그 위에서 움직이는 손가락 마디 마디를 알아채는 능력이 좋다는 점이다. 단순히 손이 움직이는 방향이나 속도, 거리만 재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의 움직임, 특히 마디 마다 움직임까지 알아채 비교적 정확한 제어를 할 수 있는 점이다. 이를 이용해 게임이나 응용 프로그램을 좀더 세세하게 다룰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좋은 재주를 살라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립모션의 손가락 추적 능력은 좋긴 하나 그 위에서 손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하는 행위 자체가 편하지는 않다. 고정된 모니터에 맞춰 센서가 인식할 수 있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오랫 동안 쓰기는 녹록치 않다. 손으로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다곤 해도 립 모션을 잘 다루려면 팔은 항상 수평을 유지해야 하는 탓에 팔이 아파 오래 쓸 수 없는 것이다. 립모션을 서랍 속에서 잠재울 수밖에 없는 것도 그 이유다.
이러한 립모션의 문제점은 데스크톱이라는 제한된 이용 환경 안에서 해결하기 어렵다. 잠시나마 재미를 위해서 립모션을 쓸 수 있지만, 여러 분야에서 꾸준이 활용하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환경에는 돌파구가 있을까? 지금 당장 그렇다고 확답하긴 어렵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새로운 답을 찾으려는 립모션의 여러 시도 가운데 가능성을 보이는 분야가 있어서다.
데스크톱을 벗어난 립모션이 찾은 길은 가상 현실을 위한 컨트롤러다. 오큘러스 리프트용 거치대를 팔고 있는 립 모션은 가상 현실에서 립모션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립모션 블로그에 따르면 지난 해 삼성 개발자 포럼에서 가상 현실과 립모션의 접목을 시도했고, 오큘러스 리프트와 립모션의 작동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이 영상에서 오큘러스 앞에 설치한 립모션은 그 앞에 있는 손의 손가락과 그 마디를 모두 알아채고 있다. 가상현실을 위한 다이브(Dive) 장치를 머리에 쓰면 바깥 세계를 볼 수 없도록 완전히 차단되는 탓에 두 손을 이용하기 어려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가상 현실에 투영된 손이 가상 현실 바깥이 아니라 가상 현실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지만, 가상 현실에 필요한 컨트롤러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립 모션이 당장 가상 현실을 위한 기본 컨트롤러로 쓰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가상 현실을 보기 위한 장치도 비싼 데 립모션을 따로 사서 붙이는 것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응용 프로그램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으니 꼭 필요한 것이라 말할 수도 없다. 아마도 당분간 서랍 밖으로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가상 현실 안에서 효율적인 컨트롤러를 고민하고 있다면 립모션 같은 접근 방식을 유심히 볼 필요는 있다. 가상 현실은 그냥 구경만 하는 세상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두 손을 가상 세계 안으로 넣을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홀로렌즈에 키넥트와 같은 행동 인식 카메라 시스템을 넣어 손을 이용하는 컨트롤러를 보여줬듯 가상 현실 환경에서 눈을 대신해 립모션과 같은 센서를 붙이는 것은 효율적일 수 있는 것이다. 립 모션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립 모션의 기술이 가상 현실과 만나 또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더 이상 서랍 속에서 잠재울 일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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