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2016년은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가상현실은 올해 입에 올릴 IT 키워드의 한자리를 일찌감치 예약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비교적 초기 시장이다 보니 가상현실을 볼 수 있는 하드웨어나 관련 장비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초기 투자비용을 따지는 등 여러 문제점을 두루 살피고 있지만, 하드웨어를 보급하고 있는 오늘날 가상현실 시장에서 이미 소프트웨어가 가상현실의 가장 중요한 재료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고 가상현실 소프트웨어가 단순히 코드화된 그 상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상현실의 본질적 개념을 이해한 소프트웨어는 코드의 집합체가 아니라 그것이 그려내는 세계를 보는 것이다.
가상현실은 말 그대로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을 가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다른 말로 바꾸면 ‘새로운 세계’이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은 우리가 볼 수 없던 디지털 세계를 무한으로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할 수 있고, 그 세계와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는 PC나 스마트폰, 그 밖의 디스플레이가 있는 컴퓨팅 장치에서 다루고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 평면적인 디스플레이의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작업했던 경험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제품 매장의 가상현실을 봤던 이들은 단순히 콘텐츠를 보는 도구 정도로 여길 때도 있지만 가상현실은 그것을 훨씬 뛰어 넘는 큰 세계를 접할 수 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자. 프로그램을 띄운 뒤 마우스로 붓 도구를 선택해 그림을 그렸던 이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진짜 붓 같은 도구로 손을 휘저으며 그림을 그릴 것이다. 때론 우리가 하지 못했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될 수도 있다.
소셜 네트워크, 금융, 광고, 전자 상거래, 의료 등 평면적인 프로그램에서 단계를 거치며 마우스나 터치로 조작했던 것들은 가상현실 안에서 마치 실제 세계처럼 소통하며 그 일을 하게 만든다. 가상현실은 우리가 컴퓨팅 세상을 대하는 경험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가상현실은 하드웨어의 약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HMD를 머리에 쓰는 것은 여전히 불편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가상현실 체험자 가운데 상당수가 그 불편함과 함께 가상현실의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하드웨어의 약점을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극복해 주고 있는 셈인데, 하드웨어가 진화할수록 소프트웨어가 발휘하게 될 힘은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상현실 소프트웨어에서 주의해야 할 게 있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그 생각이다. 종전 소프트웨어들은 뚜렷한 목표를 갖고 코드를 짰다. 또한 무엇이 효율적인가를 가르쳤다. 모든 것을 비용과 시간에 맞췄다. 세계를 창조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도 지향하는 목표는 분명하다. 하지만 기존의 소프트웨어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바로 공간이 있고,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목적에 맞게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세계관을 생각해야 한다.
가상현실용 소프트웨어는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른 세계다. 분명 그 소프트웨어는 가상현실 세계에서도 중요하지만, 지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는 보편적인 잣대를 가상현실에 적용할 수는 없다. 가상현실의 창의적인 세계관을 인정하고 한 걸음 내다보는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
가상현실을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로 올려놓기 위해선 소프트웨어 개발과 관련한 현실의 문제부터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러한 주장을 시기상조로 받아들인다. 아직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다. 항상 그런 이유에 설득 당하고 우리는 망설인다. 생각보다 미래가 빨리 온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늦게 알아차린다.
※ 이 글은 미래창조과학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운영 중인 소프트웨어중심사회(http://software.kr)가 소정의 원고료를 제공, 작성해 기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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