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증 모를 처방전만 날리는 노트북 배터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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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사고 소식이 많이 들리지 않아 천만다행이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자동 변속기를 갖춘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자동차 운전자들의 깊은 우려를 낳았다. 좀더 편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동 변속기가 시동을 거는 순간 갑자기 앞으로 튕겨나가는 급발진 사고가 신문과 방송을 통해 끊임없이 보도됨으로써 자동 변속기를 가진 운전자들은 ‘혹시 내 차도?’라는 불안감 속에서 살았었다.


최근에 자동차 급발진 사고 때보다 더 많은 이들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자동차가 아니라 우리의 업무와 일상에서 쓰고 있는 노트북 배터리가 폭발하고 녹아 내리는 사고 소식이 연이어 전해진 것이다. 지난해 인터넷에 공개된 배터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삼성 노트북 화재 동영상이 국산 노트북의 안전성에 불을 붙인 데 이어 올해 들어서자마자 LG와 삼성 등 국내 대기업 노트북이 배터리 사고가 나면서 이용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연속적으로 터진 노트북 배터리 사고는 자동 변속기 사고를 당하면서 자동차 소유자들이 갖게된 의구심과 똑같이 노트북 이용자들도 ‘혹시 내 노트북은 괜찮을까?’라는 미심쩍은 생각을 지우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배터리 발화 사고 이후 책임 당사자들에 대한 비난과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블로그와 여러 미디어를 통해 노트북 제조사인 LG와 삼성 뿐만 아니라 배터리 제조 업체인 LG 화학과 삼성 SDI를 향한 의혹의 눈초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폭발 원인 규명, 문제 제조사의 배터리 리콜, 피해 보상 방안, 향후 방지 대책 같은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배터리 발화 사고는 자칫 목숨이나 재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 이므로 당연한 요구다. 허나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지는 미지수라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지금은 원인 분석이 제대로 나올 이유보다 나오지 않을 이유가 더 많다. 배터리 발화 사고의 원인 제공자일지 모르는 사고 업체들이 문제의 제품을 직접 조사한다는 점도 그 중 하나다. 이번 사고 노트북들은 모두 제조사에서 회수해 간 상태다. 해당 업체는 회수한 노트북의 발화 원인을 찾기 위해 노트북과 잔재들을 모두 가져가 분석 중이지만, 조사 방법이나 조사에 참여하는 외부인과 외부 기관, 조사 기간,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른 대응 방안 등 조사 절차와 관련된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고 있다. 즉, 알아서 조사하고 결과를 알려줄 테니 무작정 기다리라는 것이다.


검은 장막을 내린 채 자기들끼리 하는 조사는 마치 음주 운전 사고를 낸 가해자가 경찰 대신 사고 차량을 끌고 가 피해 조사를 하고 보험처리까지 마친 뒤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술냄새도 안나고, 음주 측정기도 안불고, 피해 차량까지 가져가버린 상황에서 “이 사고는 음주 운전자 탓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과거 자동차 변속기 사고 때도 봐왔던 처리 방식이 아니던가. 자동차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밝히겠다고 나섰던 자동차 업체들은 하나 같이 시간을 질질 끌다가 “급발진 사고는 변속기가 아닌 운전자 과실”이라는 똑같은 결론을 내리고 피해 보상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들은 시시비비를 가리기 자동차 업체들과 힘겨운 법정 다툼을 시작했지만, 사고의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게 미뤘던 당시에는 소송을 제기했던 원고 중에 이긴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결국 급발진 사고를 비롯한 많은 제품 관련 사고가 빈발해짐에 따라 제조, 유통, 판매에 관여한 업체에 사고의 책임을 돌리는 제조물 보호법이 2000년에 제정되어 2002년부터 발효되면서 소비자의 피해 구제에 나섰지만, 이 법은 제조물에 결함이 있다는 객관적 요건을 갖춰야 적용된다는 게 문제다.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홈페이지의 주요질문모음에는 “제조물 책임법에서는 제품의 결함이 존재하고 그 제품의 결함으로 손해를 입었다는 것만 입증하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책임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즉 계량화된 방법을 통해 해당 제품의 결함이 인정되어야 업체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제품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더라도 정상적인 설계를 토대로 법 규정에 따라 제조를 했고, 이를 토대로 안전에 대한 설명을 표시했다면 결함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M_제조물 책임법|닫기|제정 2000.1.12 법률 제06109호]    
  제1조 (목적) 이 법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한 제조업자 등의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함으로써 피해자의 보호를 도모하고 국민생활의 안전향상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제조물”이라 함은 다른 동산이나 부동산의 일부를 구성하는 경우를 포함한 제조 또는 가공된 동산을 말한다.
2. “결함”이라 함은 당해 제조물에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제조·설계 또는 표시상의 결함이나 기타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가. “제조상의 결함”이라 함은 제조업자의 제조물에 대한 제조·가공상의 주의의무의 이행여부에 불구하고 제조물이 원래 의도한 설계와 다르게 제조·가공됨으로써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
나. “설계상의 결함”이라 함은 제조업자가 합리적인 대체설계를 채용하였더라면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대체설계를 채용하지 아니하여 당해 제조물이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
다. “표시상의 결함”이라 함은 제조업자가 합리적인 설명·지시·경고 기타의 표시를 하였더라면 당해 제조물에 의하여 발생될 수 있는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한다.
3. “제조업자”라 함은 다음 각목의 자를 말한다.
가. 제조물의 제조·가공 또는 수입을 업으로 하는 자
나. 제조물에 성명·상호·상표 기타 식별가능한 기호 등을 사용하여 자신을 가목의 자로 표시한 자 또는 가목의 자로 오인시킬 수 있는 표시를 한 자
 
  제3조 (제조물책임) ①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당해 제조물에 대해서만 발생한 손해를 제외한다)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②제조물의 제조업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제조물을 영리목적으로 판매·대여 등의 방법에 의하여 공급한 자는 제조물의 제조업자 또는 제조물을 자신에게 공급한 자를 알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기간내에 그 제조업자 또는 공급한 자를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에게 고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제4조 (면책사유) ①제3조의 규정에 의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자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실을 입증한 경우에는 이 법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한다.
1. 제조업자가 당해 제조물을 공급하지 아니한 사실
2. 제조업자가 당해 제조물을 공급한 때의 과학·기술수준으로는 결함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
3. 제조물의 결함이 제조업자가 당해 제조물을 공급할 당시의 법령이 정하는 기준을 준수함으로써 발생한 사실
4. 원재료 또는 부품의 경우에는 당해 원재료 또는 부품을 사용한 제조물 제조업자의 설계 또는 제작에 관한 지시로 인하여 결함이 발생하였다는 사실
②제3조의 규정에 의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자가 제조물을 공급한 후에 당해 제조물에 결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그 결함에 의한 손해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아니한 때에는 제1항제2호 내지 제4호의 규정에 의한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
 
  제5조 (연대책임) 동일한 손해에 대하여 배상할 책임이 있는 자가 2인 이상인 경우에는 연대하여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제6조 (면책특약의 제한) 이 법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특약은 무효로 한다. 다만, 자신의 영업에 이용하기 위하여 제조물을 공급받은 자가 자신의 영업용 재산에 대하여 발생한 손해에 관하여 그와 같은 특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7조 (소멸시효 등) ①이 법에 의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제3조의 규정에 의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자를 안 날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②이 법에 의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제조업자가 손해를 발생시킨 제조물을 공급한 날부터 10년 이내에 이를 행사하여야 한다. 다만, 신체에 누적되어 사람의 건강을 해하는 물질에 의하여 발생한 손해 또는 일정한 잠복기간이 경과한 후에 증상이 나타나는 손해에 대하여는 그 손해가 발생한 날부터 기산한다.
 
  제8조 (민법의 적용) 제조물의 결함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의 규정에 의한다.
 
          부칙  <제6109호,2000.1.12>
①(시행일) 이 법은 2002년 7월 1일부터 시행한다.
②(적용례) 이 법은 이 법 시행후 제조업자가 최초로 공급한 제조물부터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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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노트북 업체든 배터리 업체든 스스로 조사한 결과 제품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제품 결함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기업 이미지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손해 배상에 따른 금전적 손실 등을 감안했을 때 기업으로서는 결함이 아님을 입증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월 LG전자와 LG 화학이 한국 전기 연구원에 의뢰해 배터리 폭발 원인에 관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는데, 제품의 결함보다 노트북이 밖으로 빼내는 열을 가둬 놓은 상황에서 배터리가 과열돼 발화했다는 작동 환경 문제를 거론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배터리가 과열될 때까지 작동했던 설계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동일 모델의 배터리와 노트북의 샘플링을 뽑아 비교 실험도 하지 않았다. 즉 배터리 내부에서 과전압에 의해 일어난 것인지, 대기 상태의 전원을 관리하지 못한 노트북 또는 그 부품의 문제인지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눈가리고 아웅’이었던 셈이다.


1월 사고 때는 외부 기관을 이용했던 LG는 지난 2월21일에 발생한 2차 사고에서는 외부 기관의 조사를 맡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월 조사 때 단발성 사고라고 발표까지 했는데, 재차 사고가 나니 할말을 잃은 모양이다. 서둘러 안전성을 강화한 배터리로 교체하겠다는 땜빌 처방까지 내놓은 것을 보면 다급하긴 한 모양이다. 허나 결함을 인정하는 리콜 대신 단순 교체를 통해 비난 여론을 무마하는 모습이 곱게 보일리는 없다. 배터리만 바꿔준다는 의미는 ‘노트북은 문제되지 않는 단순히 배터리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니까 말이다. 2월24일 발화 사고의 노트북 업체인 삼성전자는 애초부터 자체 조사를 진행중이다. 노트북 업체가 어떤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놓을지는 모르지만,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것과 다름 없는 자체 조사라는 것만으로도 원인 규명을 위한 첫 단추는 잘못 끼워진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배터리 발화 문제에 부랴부랴 정부가 나선다고 발표했다.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 표준원이 나서서 국제 기준보다 강화된 안전 기준을 적용하고 강제 조사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한다는 것이다. 리튬계 배터리 생산업체와 소비자 단체, 시험기관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안전기준 강화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시행은 하반기부터라 이번 사고는 넘어갈 모양이다. 결국 현재 시점에서 찾을 수 있는 정부의 해결책은 없는 셈이다.


강화된 기준에 맞춰 안전성을 확보하고 사고 이후 강제 조사로 원인을 밝혀내기로 한 점은 환영할 일이지만, 최근의 사고에 대한 원인을 모른 채 앞으로 개선할 것 같은 사후약방문을 붙이는 식으로 해결될 일은 분명 아니다. 강화된 안전 기준을 따르지 않는 현재의 노트북을 쓰고 있는 이들이 갖는 불안감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테니까. 더구나 원인을 알아야 좀더 정확한 대책을 세울텐데, 무조건 주의해서 쓰라고만 하니 그저 문제 없는 제품을 쓰고 싶은 노트북 이용자들은 미칠 노릇이다. 업무, 학업, 인터넷 등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다뤘을 뿐인 이용자들이 왜 폭발의 원인을 몰라 전전긍긍해야 하나? 어떤 병인지 정확한 진단이 나오기도 전에 응급 처방전부터 날리고 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처방을 하려면 이번 노트북 배터리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있는 해당 업체가 좀더 양심적인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잘못된 처방에 따른 이같은 사고의 악순환은 계속될테니까 말이다.

(시간이 모든 걸 잊도록 만들지만, 오늘 이 글은 잊지 말아야 할 기록의 한 조각으로 남기고 싶다.)


[#M_리튬계 배터리 사용상 주의사항-기술표준원 자료|닫기|1. 개인휴대용기기를 전열기 등 열원 곁이나 여름철 자동차 내부와 같이 고온이 되는 장소에 방치하지 않는다. 리튬계 배터리가 과열되면 폭발이나 화재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개인휴대용기기를 물이나 음료수 등에 젖지 않도록 하고, 만일 젖었을 경우에는 즉시 A/S센터에 맡긴다. 비정상적인 전류·전압으로 과충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반드시 지정된 충전기와 AC 어댑터를 사용한다. 비정상적인 전류·전압으로 과충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리튬계 배터리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거나 망치로 두드리거나 송곳으로 찌르는 등 충격을 가하지 않도록 한다. 충격이 가해질 경우 안전장치가 파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배터리에서 누액이 생기거나 악취가 날 때에는 발화 가능성이 있으므로 즉시 A/S 센터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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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

1. 리튬 이온의 상태에 대한 좀더 자세한 설명은 MagnetT님의 ‘노트북, 안전하게 사용하자 – 리튬이온(Li-on)배터리의 모든것‘ 을 참고하길 바랍니다.

2. 노트북 배터리 사고가 일어나면 해당 업체에 앞서 기술표준원 제품 안전관리 포털 시스템에 신고하길 바랍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7 Comments

  1. 2008년 3월 2일
    Reply

    선배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ㅎㅎ

    • 2008년 3월 3일
      Reply

      한마디로 ‘즐’ 한답니다~ ^^

  2. 2008년 3월 2일
    Reply

    음…..기업이 하는것보단 아예 정부에서 진행하는게 더 좋을것 같아요….ㅡ.ㅡ……쩝…

    • 2008년 3월 3일
      Reply

      정부가 하더라도 얼마나 명확한 테스트를 하느냐가 관건이지요.

  3. 2008년 3월 3일
    Reply

    어제 문구점에서 노트북에 까는 쿨링팬을 봤는데..
    그런게 폭발하는게 더욱 무섭죠..(응?)

    P.S 맨 위에 사진은 삼성 노트북인가요?

    • 2008년 3월 3일
      Reply

      네.. S사 노트북이죠. ^^ 아무튼 불조심하자고요~

  4. 2008년 3월 10일
    Reply

    혹시 내 노트북도..? 연달아 발생하는 노트북 배터리 폭발 노트북 배터리, 여기서도 폭발 저기서도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노트북 배터리 폭발 사고, 당신의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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