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월드와 불펌 블로거, 봉이 김선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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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월드(another world를 발음나는 대로 읽음), 또 다른 세계라는 이름의 게임입니다. 1990년대 초반 PC 게임 좋아하셨던 분들은 이 게임을 아실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레스터라는 과학자가 분자 가속 실험을 하던 도중 뜻하지 않게 외계 세계로 순간 이동한 뒤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과정을 푸는 게임이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았어도 어둡고 침울한 독특한 색채의 그래픽과 부드러운 캐릭터 움직임, 다채로운 퍼즐을 조합해 인기를 끌었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었습니다. 뭐 그냥 액션 게임으로 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15년도 더 된 어나더 월드를 다시 거들떠 보자거나 즐기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최근 불펌 블로거에 대한 쓴소리들을 읽다가 문득 어나더 월드가 떠올라서 끄적거리는 것입니다. 불펌 블로거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하지만 권리를 훔쳐 이득을 챙긴 제3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 어나더 월드가 배포된 채널은 PC통신이었습니다. 요즘은 저작권 문제 등으로 어떤 소프트웨어든 대놓고 유통하지 않지만(물론 어둠의 경로라고 칭하는 불법 유통 채널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당시는 권리 계약을 맺은 사실이 공개되지 않은 대부분의 소프트웨어가 버젓이 PC통신의 공용 자료실이나 동호회나 올라와 있었습니다.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누구든지 게임을 다운로드할 수 있던 것이었죠. 하지만 어떤 계약 당사자가 나타나 파일을 지우라고 공지 한번만 날리면 해당 파일은 금세 사라져 버립니다.


어나더 월드도 PC 통신을 통해 배포되던 중 권리를 획득한 업체가 나타나 해당 파일을 지울 것을 요구했습니다. 제3행성(3rd planet)이라는 업체였지요. 이 업체는 당시 게임을 다루던 잡지 같은 여러 오프라인 매체에도 공문을 보내 자신들이 게임 유통 계약을 맺었으니 앞으로 관련 정보를 다룰 때 이 같은 사실을 주지시켜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만든 패키지를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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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이 그 때 나온 패키지의 내용물입니다. 이것을 보니 실제 이 업체가 이 게임의 유통권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일단 게임디스켓과 설명서, 암호표 등 당시 표준적인 정품 패키지 내용물은 다 갖추고 있었으니까 그럴듯 해보였죠. 그 뒤로도 이 업체는 몇 개의 게임을 더 내놨습니다. 어떤 게임인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제법 이름난 게임이었지요. 당시 동서나 SKC가 유명 타이틀을 독점하다시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름도 없던 제3행성이 이처럼 인기 있는 게임을 유통한다는 것, 더구나 전주에 있는 지방 업체가 이러한 사업을 한다는 게 미심쩍기는 했어도 크게 의심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제3행성이 정식으로 유통 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다른 업체가 어나더 월드를 비롯해 다른 게임을 정식 계약하면서 제3행성의 불법 행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 버렸거든요. 물론 이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제3행성이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 생각하시겠지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황당하지만, 그 때에는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정품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어 가는 상황에서 불거진 사건이라 그나마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덕분에 소비자 피해는 줄일 수 있었지만, 정식 계약을 맺은 업체는 제3행성의 불법 유통으로 인해 많은 손해를 본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법적 소송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그 뒤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때의 상황에 지금의 불펌 블로그를 대입해 보면 얼추 비슷한 것 같습니다. 권리를 가진 이들은 제 이득을 얻지 못하는 반면, 일부(!) 불펌 블로그들은 그럴싸하게 자기 글로 포장하면서 이익을 챙기고 있으니까요. 당시 정식으로 계약했던 개발사와 국내 유통 업체가 입었던 피해처럼 어쩌면 불펌 블로그 때문에 정당하게 글을 올리고 있는 블로거들만 애꿎은 피해를 입는 게 아닐까 합니다.


수백년 전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걸 두고 대단한 상재라고들 말하지만, 그런다고 사기극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그런 사기꾼을 두고 ‘공공의 적’이 아니라 한다면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겠지요. 때문에 민노씨가 무단 펌질한 컨텐츠를 마구잡이로 포스팅해서 장사하겠다는 이들을 ‘블로그의 적‘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 공감합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21 Comments

  1.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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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그렇고.. 위 자료사진….그리고 동서 SKC라는 단어..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들입니다. 캬~!

    •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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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ㅎ.. 정말 추억의 이름들이죠. 가끔 들으면 추억이 떠오르는.. 위 자료 사진을 남기려고 지금까지 패키지를 보관해 왔다죠? ^^

  2.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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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도 초반이면 저도 열겜하던 시절인데… 왜 저 게임은 기억이 안나는걸까요 orz… 역시 내공이 부족한 것인가봅니다;;

    봉이 김선달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상업성이 가미된 펌질 블로그의 경우라면 딱 맞는 표현이겠죠.

    •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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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취향이 달랐나 봅니다. 전 돈벌이를 겸했기 때문에 꽤 잡식성으로 즐겼던 터라 거의 마구잡이로 게임을 했거든요. 좀 어렵기도 했고요. 그나저나 세월이 지나도 그 시대의 봉이 김선달은 계속 존재하나 봅니다. 앞으로도 어디에는 또 나타날 듯..

  3.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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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게임 패키지 본적 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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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키지를 보신 적이 있으시군요.. 이와 관련한 패키지를 좀더 찾아봐야겠어요.

  4.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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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문화는 지양하고 링크문화가 빨리 자리잡혀야지요. 링크 또한 기록으로 남는데다 상대방에게 트래픽까지 선사해주는 아주 유용한 방법인데 펌글을 즐기는 블로거들이 많은 것을 보면 블로거들의 인식이 아직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_^

    •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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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게요. 그런데 링크의 활용 방법을 엉뚱하게 적용하는 분들이 좀 계시더군요. 이미지 링크만 걸어야 하는데, 이를 긁어다 붙여서 오히려 스팸성 트래픽만 양산하시는… -.ㅡㅋ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링크에 대한 의식을 바로 잡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5.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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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부족한 글에 적극적인 공감과 더불어 의미있는 글로 ‘논의 확장’을 위한 포스팅까지 해주시니 정말 반갑고 고맙습니다.
    제 글도 트랙백 보냅니다.

    : )

    •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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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노씨 글에 비하면 큰 의미까지야 있겠습니까. 단지 시대가 바뀌고 분야가 달라져도 잘못이 반복되는 일들을 보면서 바로잡히지 않는 그 까닭이 왠지 궁금할 뿐입니다. ^^ 늦은 시각 댓글과 트랙백 고맙습니다. 아.. 아거님과 즐거운 저녁 보내시길~~

  6.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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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트라님의 글( 스팸블로그가 싫어요 )을 이제야 읽고, 좀 열받아서 쓴다. 물론 이런 일이 어제 오늘은 아니다. 그런데 도저히 열받아서 참을 수가 없다. 생각나는데로 막 쓰는건데.. 이런 글..

  7.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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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리고 오늘(금요일) 아거님 귀국 축하 블로거 모임이 있을 예정입니다.
    칫솔님께서도 참석해주시면 참 반갑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 닉네임에 해당관련글의 링크 걸어놓겠습니다.
    혹여라도 마음과 시간이 허락하시면 뵙기를 기대합니다.

    민노씨 드림.

    이 글은 비밀글입니다.

    • 200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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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ㅎ 사실 저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마음은 이미 그쪽에 갔는데 시간이 절 잡네요. 2차를 위해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만큼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_._)

  8. 2007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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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나오는 유니크 아이템들을 볼 때마다.. 감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집에 설마 저런 유니크가 잔뜩 쌓여있는건 아닌지..-_-..

    • 2007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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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니크.. 인가요? 잔뜩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ㅎㅎ 그나저나 다음에는 뭘 보여드려야 할까요? 팰콘 4.0 오리지널 패키지(문제의 비행 교본 패키지) 정도면 어떠실지.. ^^;

  9. 즐겨보는 드라마가 하는 날이라 긴장과 즐거움 속에 TV 시청을 끝마치고 돌아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 들렀다. 블로거뉴스 실시간 인기글 목록에 내가 아는 듯한 글 ..

  10.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네트웍의 속도가 늦고 웹하드도 없을 때이기 때문에 Windows 2000 베타판의 배포 사이트를 운영한 적이 있다. 지금이야 네트웍 속도도 빠르고 웹하드도 많기 때문..

  11. 2008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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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한 기회로 이글을 읽게되었습니다. 정말 놀랍네요. 제가 이 패키지을 소장하고 있거든요. ^^ 제가 알기론 고블린1도 발매을 했습니다. 저도 처음에 발매가 안됐는지 알았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제가 구하게 됐거든요. 주소가 꽤나 엄해서 이때는 지방에서도 게임사업을 했구나~ 했는데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니…ㅎㅎ 잼있네요. 링크해갈께요~

    • 칫솔
      2008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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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 패키지를 갖고 계시군요. 반갑네요. 친숙한 이름이라 반갑고요. 저도 지방 게임 업체라 해서 좀 놀랐다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문제였지만 말이죠. ^^

  12. 캐딜락
    2010년 1월 10일
    Reply

    처음 게임을 접하였을때 얼마나 어려웟는지.. 그래픽은 지금봐도 훌륭하지만.. 얼마 못가서 죽은 장면만 기억나네요.. 소리도 죽였는데 ㅎㅎ 부럽슴니닷!

    • 칫솔
      2010년 1월 12일
      Reply

      당시 PC 스피커가 아니라 PCM 음원을 쓴 몇 안되는 게임이었죠. 멋진 게임이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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