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10 브리핑을 끝까지 지켜 본 이들이라면 아마도 맨 마지막에 나타난 제품 덕분에 2시간 넘는 행사에서 쌓인 피로를 한번에 날려버렸을 것이다. 비록 지루한 소개가 흥을 돋우지는 못했지만, 미래의 컴퓨팅을 현실에 가깝게 끌어낸 이 제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다. “우리 MS가 달라졌어요”를 한마디로 압축해서 보여준 제품은 다름 아닌 ‘홀로렌즈'(HoloLens)다.
홀로렌즈는 물체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을 기록해두었다가 3차원 상에서 재구성하는 홀로그램의 원리를 이용하는 장치다. 홀로그램은 이미 SF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 아이템이라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아이언맨에서 토니스타크가 모델링을 할 때 허공에 띄우는 입체 그래픽도 홀로그램 중 하나지만, 영화처럼 멋진 그래픽 기술을 일상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시기를 가늠하기 힘들었을 뿐이다. 그것을 실제로 만든 것이 홀로렌즈다. 이용자의 앞에 사물이 없더라도 홀로렌즈를 쓰면 그 공간에 사물이 있는 것처럼 보여주기 때문에 홀로그램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좀더 높이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홀로렌즈의 등장으로 홀로그램을 이용하는 상용 제품의 등장이 아주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용도가 아니라 생산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용 제품이다. 홀로렌즈가 윈도10을 운영체제로 쓰는 장치의 일부로 소개하고 이는 홀로그램을 구현할 수 있는 API를 담고 있는 윈도10의 기술 시연을 위해 준비한 제품이기는 하나, 허공에 투사되는 입체 시각 정보인 홀로그램을 보고 이를 이용해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실용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홀로렌즈가 홀로그램 컴퓨팅의 완성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홀로그램 컴퓨팅을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담았다는 것이다.
홀로렌즈도 HMD(Head Mount Display)처럼 생긴 장치를 머리에 써야 홀로그램을 볼 수 있다. 홀로그램은 이용자가 쓰고 있는 앞쪽 반투명 렌즈에 맺히지만 홀로렌즈에선 그것이 실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용자는 자기 목소리나 두 손을 이용해 메뉴를 다루거나 입체 모델을 조작할 수 있다. 아마도 아이언맨처럼 3D 입체 모델을 만들거나 아마도 게임을 즐길 수도 있을 지도 모르지만, 비좁은 모니터에 갇혀서 하기 힘든 입체 작업을 모니터 밖으로 꺼내 좀더 편한 환경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MS의 홀로렌즈 컴퓨팅은 1차적으로 종전의 작업 공간을 모니터 밖으로 확장하지만, 기존 공간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활용한다. 그러니까 홀로렌즈의 홀로그램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 안에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있는 공간을 모두 작업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거실, 사무실, 자동차 등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 홀로렌즈와 결합해 그 상태로 때론 작업 공간으로, 때론 놀이 공간으로 활용한다. 물론 어떤 응용 프로그램을 다루느냐의 차이는 있을 뿐이다.
이처럼 공간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활용하느냐가 홀로렌즈와 가상 현실 장치의 차이점으로 꼽을 수 있다. 현실 공간에 그대로 투영하는 홀로렌즈는 오큘러스 리프트 같은 VR에서 마주하는 가상 현실과 공간의 속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오큘러스 VR이나 기어VR 같은 가상 현실 하드웨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공간을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 안으로 이용자를 밀어 넣는다. 물론 그 안에서 놀이를 하거나 다른 무언가를 즐기거나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지만, 이용자가 지금 있는 것과 다른 공간을 구축하기 때문에 현재 공간은 완전히 지워진다. 마치 현실 세계와 다른 매트릭스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오큘러스의 가상 현실과 홀로렌즈는 머리에 쓰는 장치의 성격 때문에 비슷한 느낌이 들지는 몰라도, 그 장치들이 투시하는 공간의 측면에서 보면 두 장치가 지향하는 개념은 전혀 다르다. 그 차이를 요약하면 아마도 가상 현실은 ‘공간의 창조’, 홀로그램은 ‘공간의 재구축’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다른 세계를 지향하는 가상 현실과 현실 세계를 그대로 보는 것은 결코 같은 느낌을 들게 하진 않는다. 때문에 둘 중 어느 하나의 가치만 강조할 이유는 없다. 현실과 가상의 두 세계를 진화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제품이 나올 수록 우리는 더 많은 기회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덧붙임
이 글은 에코노베이션 블로그에 기고한 글로 원본과 일부 내용이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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